마약 김밥

슬로우푸드. 느린 여행.

by 이주아

1년 간의 미대륙 여행을 앞두고 있는 친구가 지금 내 집에서 두어 주간 함께 지내고 있다.


프랑스 남부에 있는 집을 떠나 기차를 타고 런던에 도착한 후, 한 걸음에 얼마씩 기부하는 자선 도보여행을 하겠다고 런던에서 리버풀까지 걸어왔다.

걷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단다.

하필이면 일 년 중 해가 제일 늦게 뜨고 제일 일찍 지는 데다 거의 매일 부슬비가 내리는 시기에 와서, 그야말로 X고생을 한거다.


걷기의 목적지로 리버풀을 선택한 이유는, 리버풀에서 캐나다 동부로 배를 타고 가기 위해서다. 배로 가는 데는 열흘 가량 소요될 예정이다.

비행기를 타면 6시간 만에 도착하는데 굳이 더 비싸고 오래 걸리는 배를 타는 이유가 뭐냐 물었더니, “한 번도 안 해봐서.”란다.


긴 것 같지만 지나고 나면 순식간처럼 느껴질 1년 동안, 시간이 걸려 미뤄뒀던 것들을 하겠다고 이렇게나 느리게 여행을 하고 있다.

한 달간 기부 도보여행.

열흘간 배 여행.

몇 달간 캐나다 동부-서부-알래스카 여행.

6개월간 미국 내 고난도 도보여행.

몇 달간 남미 여행.



느린 여행을 하고 있는 친구와 함께 먹겠다고, 지금 나는 매일 하나씩 슬로우푸드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오늘의 느린 음식은, 손이 많이 가고 오래 걸려서 혼자서는 거의 안 해 먹는 김밥.

몇 달 전부터 채식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친구를 위해, 초록색 재료가 네 가지나 들어간 치즈김밥을 만들었다.

햄도 없이 얼마나 맛있을까 싶어 김밥을 맛있게 하는 마법의 소스를 만들어 곁들이니, 건강한 마약김밥 탄생.



슬로우푸드를 만들고 먹으며 친구의 느린 여행 계획을 듣고 있노라니, 내 안 저 깊은 곳에서 낯설지 않은 감정이 슬쩍슬쩍 신호를 보낸다.


나도 같이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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