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ipino Food Expedition
지금 나는 출장으로 마닐라에 와 있다.
출장을 준비하는 내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것은 물론 ‘현지 음식’이었다. 필리핀 현지 음식에 뭐가 있는지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어쨌든 현지 밥집에서 매일 다른 새로운 음식을 먹어 보겠다는 생각만 하면 흥분으로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마닐라 도착 후 일주일간 필리핀 현지 음식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출장 업무 사무실이 위치한 휘황찬란한 쇼핑몰에서 멀리 갈 시간이 없어 매일 쇼핑몰 내 음식점을 이용했는데, 그러다 보니 현지인들이 먹는 일반 필리핀 밥집이 아니라, 햄버거, 샐러드 등 동양에서 ‘서양 음식’이라 할만한 음식을 하는 곳이라든지, 퓨전 일식, 중국 딤섬 등 고급지고 비싼 다른 나라 음식만 먹었다.
출발 전부터 나와 함께 필리핀 현지 음식 탐험을 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던 동료와 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쇼핑몰을 벗어나 식사를 할 수 있는 주말만 기다렸다.
드디어 주말!
이번 주말에는 마닐라에서 100킬로미터 거리의 작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 후배를 만나러 갔다.
후배가 뭘 먹고 싶냐고 묻길래, “현지 음식!”이라고 했더니, ‘레촌’을 먹으러 가잔다.
레촌(Lechon)은 새끼돼지를 통으로 구운 스페인 요리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곳들에서 현지 음식으로 여겨질 만큼 사랑받는 음식이다. 어른 돼지도 아닌 새끼돼지를 숯불에 구웠으니, 이건 뭐 맛이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지. 바삭한 껍질과 살살 녹는 살코기의 완벽한 조화는 내 미천한 표현력으로 담아내기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돼지요리와 함께 ‘불랄로(Bulalo)’도 주문했다. 사진으로 보고 ‘어, 갈비탕이랑 똑같네’ 했는데, 먹어보니 맛도 갈비탕이다. 비가 대차게 내리는 날씨에 아주 딱 어울리는 메뉴였다.
후배 덕분에 고대하던 필리핀 현지 음식을 마침내 먹어봤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음식점 또한 필리핀 사람들 중 돈 있는 사람들만 갈 것 같은 고급스러운 음식점이었다는 점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한국으로 여행을 온 외국인이 ‘local food’를 먹어보고 싶다고 하니 고급진 한정식집으로 데리고 간 것 같달까.
오천 원짜리 백반을 파는 허름한 시장통 밥집, 곱창볶음을 곁들여 소주를 마시는 포장마차, 수많은 종류의 길거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광장시장 같은 곳들이 진짜 한국음식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들일 진데, 이곳 마닐라에도 그런 곳들이 있지 않을까.
다음 주말에는 시장통을 찾아봐야겠다.
아 그런데, 발룻(Balut)은 아직 조금 힘들 것 같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