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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리 Sep 12. 2023

집에 가고 싶어

<불효녀 일기>

휴가를 다녀왔다.

그동안 복남 씨는 어떤 운동을 하고 있었을까, 하고는 있었을까, 누워서 TV만 보진 않았을까, 씻긴 했을까 염려됐다. 아니나 다를까 다녀왔다고 빼꼼 고개 내밀고 인사하니, 가기 전에 입고 있던 옷 그대로였다.


다음 날, 남편이 없는 시간에 복남 씨를 집으로 끌고 왔다.

식탁 10바퀴 돌고 간단히 하체운동을 시키고 다시 7바퀴를 돌고 있을 때였다. 아이들은 저쪽 방에서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놀았고 티비도 켜지 않아 고요했다. 문득 복남 씨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복남 씨, 지금 무슨 생각해?”

“집에 가고 싶어.”


느릿한 발음으로 전해지는 복남 씨의 진심 어린 답에 ‘풉’ 웃음이 새어나왔다.

집에 가고 싶다니, 웬 직장인에게서 들을 법한 이야기야. 여기도 집인데, 딸 네 집.




운동과 샤워를 마친 복남 씨가 집으로 간 뒤 생각에 잠겼다. 직장인들이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집에 가고 싶은 그 심정을 복남 씨는 우리 집에서 느끼고 있다. 복남 씨에게는 ‘식탁 돌기’가 하기 싫은 ‘일’에 속하는 걸까?

강요하고 있는 걸까? 큰 맘 먹고 결심하고 하겠다고 내 돈을 주고 나서도 막상 하기 싫은 게 PT인데, 끊지도 않은 PT를 강제로 시키고 있는 걸까?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다. 아파보지 않은 영역, 복남 씨의 침묵과 웅크림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복남 씨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막막해졌다.


‘불(fire)효’라며 하는 나의 노력이 ‘불(不)효’인 것은 아닐까. 내 마음 편하자고, 복남 씨 조금 더 건강하게 해 보겠다고, 빨리 같이 산책 나가자고, 육아휴직 중에 드라이브라도 한번 가보자고, 기간과 방식, 기대치를 내 멋대로 정해 놓고 따라오라고 으쌰으쌰 땡기고 있는 건 아닐까. 복남 씨는 이미 자신의 최선을 다 하고 있는데….


창 밖에 비바람에 흔들리는 고무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비바람에 쉼없이 흔들리면서도 초록 빛으로 매끈하게 반짝거렸고 이 와중에도 새순을 피워 내고 있었다. 폭염으로 따가웠던 이 여름에 말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줄기, 흔들리는 가지나 잎이 아니라 뿌리가 나무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땅속 깊숙이, 보이지 않아도,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게 굵고 단단하게 뻗어 줄기를 잡아주고 영양을 길어온 뿌리. 마른 날, 홍수가 난 날, 무더운 날, 추운 날, 해가 길고 짧은 모든 날을 버티게 해주는 뿌리. 그랬기에 비바람도 나무에게는 그저 자라는 날 중에 하나일 뿐인 것이다.


거목이었던 복남 씨는 뿌리 얕은 화초가 되어 버렸다. 비가 오는 날, 해가 타는 듯한 날에 견디며 성장하라고 등 떠밀며 바깥에 둘 수는 없다. 실내로 옮겨 물을 주고 해와 바깥 공기를 쐬어 주고, 부족한 것은 없는지 흙과 이파리를 들여다보고 만져봐야 한다. 뿌리가 단단해지고 굵고 길게 뻗도록 화분도 갈아주어야 한다. 왜 나무처럼 하지 못하느냐고 채근하지 말고 그의 속도에 맞게 자라도록 기다려야 한다.


오늘은 빼꼼히 인사만 하지 말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안고 기도하며 ‘사랑한다 축복한다’ 말해줘야지.

운동시키고 씻기는 것을 숙제처럼 해치우지 말고,

복남 씨 다리 근육에 집중하지 말고,

복남 씨 즐겨보는 TV를 같이 보고, 나의 하루를 재잘거려야지.


그래서 나랑 함께라면 한 걸음 더 걷고 싶게 해줘야지.

복남 씨 뿌리가 튼튼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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