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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리 Sep 05. 2023

여러분은 일하면서 언제 즐겁고 기쁘신가요?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중에서

“여러분은 일하면서 언제 즐겁고 기쁘신가요?”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_ 최인아)


책에서 튀어나온 질문에 잠시 머물게 됐다.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생각이 책으로 구현되고 그게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그걸로 행복하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거슬러올라가 보았다.


광고쟁이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꿈을 찾아야 할 기한이 임박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이 한 문과생의 마음을 건드렸다. 무언가의 장점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 그날부터 가고 싶은 과 항목에 광고홍보학과를 넣었다. 주제도 모르고. 

진입장벽이 높은 과였는데 수능을 그럭저럭 봤다. 그래서 노선이 변경됐지만 놓지 않았다. 광고쟁이의 꿈을. 그리고 3학년에 대망의 광고 첫 수업을 들었다. 


“광고는 세일즈 메시지다! 광고주 마음에 들어야 한다. 돈이 되는, 팔리는 메시지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죠? 왜 아무런 의미가 없죠? 나의 생각과 글은, 팔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나요? 광고를 본 사람이 아닌 광고주 마음에만 들어야 하나요? 광고주를 위해서만 써야 하나요? 너무 자본주의 논리 아닌가요?


그날로 꿈을 잃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꿈꿔야 할지,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동력을 잃고 안개 속에 갇힌 듯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내 삶에 있을까, 내 안에 있을까. 잘하는 것은 모르겠고 좋아하는 것부터 꼽아보자. 


책을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때 제로에 가까웠던 독서량을 따라잡기 위해, 과제를 하기 위해, 베스트셀러라니까, 재밌어 보이니까, 읽고 또 읽으며, 읽다 잠들었다. 속독가가 아니라 많은 양을 읽지는 못했지만, 책 자체가 좋았다. 

책? 책은 직업이 아닌데? 그럼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직업 탐색이 시작되었다.


교보문고를 좋아했다. 어떤 책이 마음에 닿는지, 신간은 뭐고 베스트셀러는 뭔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사람들도 좋아하는지, 방대한 책들을 다 읽는 상상을 하며 기웃거렸다. 좋은 책을 추천하는 서점원도 좋겠다!

그러다 어린이책이 만들고 싶어졌다. 성인의 책은 성인밖에 읽을 수 없지만 어린이책은 성인까지 모두 읽을 수 있다. 어린시절에 좋은 가치관을 접해서 마음밭을 가꿀 수도 있고 책의 본연의 의미, 즐거움이라는 가치를 누릴 수 있다. 쓸 자신은 없으니 출판사에 들어가 만드는 일을 돕자! 

가닥을 잡았지만 문은 좁았고 안내자는 없었다. 

그러다 유아교육, 교육학, 사회복지 대학교재를 만드는 출판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린이책을 만들고자 한 것과는 다른 루트지만, 만들며 아동에 대해 공부하자 마음 먹었고 유아교육, 사회복지의 역사와 의미, 교사가 갖추어야 할 것들을 읽으며 저변이 넓어졌다.


그렇게 발을 들인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날마다 즐겁지는 않다. 막막하거나 기한이 촉박할 땐 수명을 갈아넣어 일하게 된다. 편집과 교정, 두 가지를 다 하느라 모드 전환에도 애를 먹고 한 가지만 하는 이들에 미치지 못하는 실력에 초라해질 때도 있다. 보수도 만족스러운 직종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일을 아직 하고 있다. 

더 나은 책을 독자에게 제공하고, 그가 좋은 선생님이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아이들이 좋은 책을 만나는 것만큼 중요하니까.      

양지가 넓어지는 데 보탬이 됐다면 그럼 되었다, 이보다 더 뿌듯한 일이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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