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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리 Aug 30. 2023

성적표는 거북이

일, 육아, 집안일.

과부하가 오고 있었다.


여름, 겨울은 특히 바빴다. 퇴근해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챙기다가 남편이 집에 오면 다시 출근해 10~12시나 아침 해를 보며 컴퓨터를 껐다.

몸도 삶도 엉켰다. 밥-빨래-청소는 도돌이표였고 정신은 조각 숨을 쉴 틈이 없었다. 닦아도 돌아서면 쌓이는 먼지처럼 마음에도 뭔가가 쌓였다.

그 여파는 가족들에게 전가되었다. “너희가 잘못했으니 엄마가 화내는 거야!” / “빨리 해!” 감정 조절 못하고 으르렁거렸고 재촉하고 소리 지르는, 되기 싫었던 모습들을 다 갖춘, ‘그런 엄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휴직은 더 나은 우리의 삶을 위해서 사수한 나의 방학이었다. ‘그런 엄마’로 살기 싫었고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첫 입학, 첫 학교생활, 첫 여름방학, 적어도 이 시간만은 일에 찌든 엄마 말고 ‘그냥 엄마’로,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마주앉아 계획도 세우고, 즐거운 일도 벌리며, 밀도 높은 시간들을 함께 채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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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를 등원시키고, 방학인 첫째와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이었다.


“엄마, 거북이 같아.”

“갑자기? 거북이? 어떤 의미야?”

“거북이는 다정하잖아. 요즘 엄마, 다정한 거 같아.”

“그렇게 느낀다면 다행이네? 요즘 덜 화내고 긍정형으로 말하려고 노력 중이야. 근데 예전에도 하고 있었어, 노력. 일하면서 너희 밥 챙겨먹이고, 너희에게 덜 화내려고, 너희를 더 즐겁게 해주려고, 그때도 노력은 하고 있었어.”

“그래? 몰랐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잖아. 그래서 원래 하던 걸 하는 게 아니라 다 처음이라 노력하고 있었던 거야. 지금부턴 알아주면 좋겠어. 엄마는 언제나 노력하고 있다는 걸.”

“응, 그럴게.”


너희에게 소리 지르고 화내고 혼내던 때, 그때도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고.

아침밥 천천히 먹으면 지각할까 봐 동동거렸고,

퇴근길에 뭐 해먹을지 5분 안에 고민을 끝내야 할 때는 머리 아팠고,

둘이 싸우고 울고불고 할 때는 뭐라고 말해 줘야 할지 어려웠고,

지친 몸을 이끌고 잘 준비를 하려고 하면 안 씻겠다고, 안 자겠다고 떼부리면 녹다운 된 거라고.

그런 순간에도 감정대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는 했었다고.

엄마도 엄마로서 자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고.

노력했으나 실패한 날도 있었고, 노력하다가 놔버린 날도, 노력하려는 의지가 없던 날도 있었던 거라고.

그러다 어느 날은 성공 비슷하게 하고, 또 어떤 날은 반만 성공하고, 그러다 기대보다 넘치게 성공해서 하하호호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한 날도 있었던 거라고.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요즘 생활통지표에는 수우미양가나 점수가 아닌 ‘잘함(◎), 보통(○), 노력 요함(△)’으로 평가된다. 잘한 점은 칭찬해 주시고 부족한 점은 관심을 갖고 자녀가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돌봐주고 지도해 달라는 멘트와 함께.      

방학이 7개월 지난 지금, 아이가 발행한 나의 성적표가 도착하였다. ‘다정한 거북이’

좋은 엄마는 아니지만 느리게라도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셀프로 칭찬해주고 응원해줘야겠다.


수고했다, 지혜야.

인내한 것,

성질대로 하지 않은 것,

더 나은 말을 고르려고 노력한 것,

어느 날은 그게 성공한 것,

수고했다, 정말.

얼마나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엄마가 다정하다는 한 조각을 품어주면

미안한 순간들을 곱씹지 말고, 적어도 그 하루는 성공했다고,

혼자 토닥여 보자.

그런 하루하루를 목표로 해 보자.

즐거운 방학생활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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