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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리 Aug 23. 2023

성공인 실패

<불효녀 일기>

뉘집 딸래미가 엄마 염색을 기가 막히게 해준 건지,

그게 복남 씨 마음을 어떻게 간질였는지는 모르겠지만,

10년도 더 된 어느 날, 대뜸 내게 염색을 시켰다.


“기술도 없는 내가? 왜?”


상청개구리인지라 입을 댓 발 내밀고는, 염색을 시작했다.

일단 윗머리의 반을 갈랐다.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머리카락을 조금 떼어 빗어 왼손 위에 펼치고 염색약을 펴바른 후 반대편으로 넘겼다. 반대편 옆머리도 똑같이. 뒷통수는 세로로 2등분 하고 2/3를 비틀어 꼬아 하늘 쪽으로 향하게 한 뒤 집게로 고정시키고 빈 데 없이 바른다. 놓친 곳이 없나 확인 작업까지 하니 약 40분이 걸렸다. 그리고 15분 더 방치했다.


노력은 가상했으나, 그 염색약은 간편하게 바르고 10~15분 뒤에 헹궈야 하는 제품이었다.

복남 씨의 머리는 어떤 부분은 연필심같이 새까맣게, 어떤 부분은 투명한 갈색이 되었다.

환불하고 싶은 표정으로 거울을 보는 복남 씨의 뒤통수에 대고 되려 으르렁거렸다.


“그러니까 왜 날 시켜! 돈을 들여! 괜히 기술이 아니야!”

-


얼마 전, 아빠가 복남 씨 염색을 부탁했다.

알아서 해드리곤 했는데, 이번엔 그 시기가 길어졌나 보다.


아이를 학원에 넣어놓고 와서 세팅을 시작했다.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그 방향으로 식탁 의자를 배치했다. 어두운 티셔츠로 바꿔 입고, 염색약, 빗과 비닐가운을 꺼내서 편하게 닿는 식탁 끄트머리에 두었다. 염색약을 흔들어 보니 신통치 않았지만 그래도 세 덩이는 나오겠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복남 씨를 의자에 앉힌 뒤 가운을 두르고 귀에 캡을 씌웠다. 머리끈을 빼니 파마기 없이 어깨를 넘긴 머리카락이 내려왔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복남 씨의 시간이 이렇게나 됐나.


“좀 잘라 줄까?”


절래절래. 커트는 절대 나에게 맡기지 않는다. 마지막까지도 ‘미’는 놓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장갑을 끼고 염색약을 눌렀다.


치이이..이...익?

거품이 손바닥의 1/3 정도만 채우며 내려 앉았다. 다시 흔들어서 눌러도 손가락만큼 간신히 나왔다.


“어... 엄마? 약이 모자라네? 미안, 확인을 못했어. 일단 하고, 조만간 다시 하자.”


지금 멈추고 약을 사와서 해도 얼룩덜룩해질 뿐이다. 실패다, 이미.

일단 가자! 전체는 무리다. 급한 불만 끄자. 제일 잘 보이는 정수리와 앞머리만이라도!

가르고 말 것도 없이 양손에 나눠서 치덕치덕 문대고 빗으로 살짝 빗어주었다.


15분 이상은 방치해야 한다. 약이 적으니 더더군다나!

기다리는 동안 운동을 하자며, 복남 씨를 일으켜 식탁 10바퀴를 돌고 소파에 앉혀 다리 운동을 시켰다.

시계를 보니 첫째 학원 마칠 시간이 가까워졌다! 마음이 급해져 욕실로 등을 떠밀었다.


“거울 보고 실망하지 마. 실패야, 실패. 알았지?”


“이게 염색한 거야?”


거울을 보자마자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복남 씨가.

엄밀히 말하면 웃음 반,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 거 반이었지만, 이 정도면 복남 씨에겐 박장대소다.


"엄마 웃었어? 웃었으면 됐어. 다음에 다시 해줄게에!!"


나도 같이 웃어버렸다.


10년이 지났어도, 내 염색 실력은 기술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복남 씨를 웃기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래, 이 정도면 성공인 실패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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