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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Jul 05. 2016

미래에서 온 책

독일에 발을 담그자

오늘은 2016년 7월 5일
미래에서 온 책을 읽기 시작한다.

몇 년간 꼼지락거렸던 독일, 독일.
슬며시,
발가락 하나 담가 볼까
어찌된 일인지 초판 인쇄일이 미래의 날짜다.


뮌헨 _Munich


처음에 뮌헨(Munich)에 간 건 뮌헨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에서 쫓겨나다시피 행선지를 구하다가 프랑스 니스행 기차에 이미 올라탔었다. 스물한 살의 나를 찾아 기차 저 끝에서 이 끝까지 달리며 이름을 외쳐 불러 준 '은인 아저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니스행 밤기차에서 내리지 않았을 거다. 본인의 VIP 티켓으로 기꺼이 내 좌석 하나를 더 얻어 주셨다. 자유로웠던 나는 어디로 가도 괜찮았지만, 아직은 너무 멀리 가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은인 아저씨'를 따라 탄 열차가 뮌헨으로 향했다.


아침에 도착한 뮌헨 중앙역에서 은인 아저씨는 소시지 하나를 사 주시고 일을 하러 떠나셨다. 그래서 독일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소시지다. 엄청나게 맛있었다. 소시지 하나를 든든하게 먹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잘 있다고, 생사를 알렸던 것 같다. 뮌헨 역사의 공중전화 부스, 아빠 목소리가 아직도 선하다.


예나 _Jena


독일은 이상하게도 의도치 않게 들르곤 했다. 독일을 목적지로 잡았던 적은 없었다. 예나(Jena)에 갈 때에도 '독일의 작고 예쁜 대학 도시'를 검색하지 않았다. 세미나에서 발표를 맡았고, 교수님이 결정한 세미나가 예나에서 열렸다. '가는 김에' 베를린도 보고 오자 싶어 학교 동생과 함께 조금 일찍 여행을 시작했다. 하루가 꼬박 걸려 유스호스텔에 도착했을 때, 한국에서 놀려 먹고 온 한 오빠의 카톡으로 핸드폰이 진동을 했던 것과 잠시 후 깔깔대는 내 웃음소리로 건물이 진동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 오빠에게, 예쁜 내 친구 A 가 오빠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농담을 하고 비행기를 탔던 것이다. 그 오빠는 내가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날아오는 내내 나에게 전화도 걸고 카톡도 보내면서, 내가 한 이야기가 정말 사실인지, 그게 무슨 말인지, 하며 밤을 지새웠다더라.


예나와 쾰른 _Jena & Köln 


세미나가 끝난 후에 벨기에로 옮기면서 기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쾰른(Köln)에 내려 대성당도 가고 카니발 구경까지 했다. 쾰른으로 향하던 기차 안 - 내 방만큼 넓었던 화장실 문을 실수로 열어버린 끔찍한 기억을 아직 잊지 못한다. 변기 옆 그 작은 버튼이 문 여는 버튼일 줄이야.


시간이 정해져 있는 줄 모르고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먼저 올라갔다. 여유롭게 구경하다가 맞은편 호엔슈반가우 성에는 입장권을 들고도 입장하지 못했다. 좌절감에 몸을 떨면서 포르겐제 저수지 입구의 벤치에 앉았을 때 잔잔히 나를 위로하던 공기가 있었다. 나에게 독일은 그 공기로 기억된다. 힐링(healing)의 공기 말이다.


다시, 독일 _Germany


결혼을 전후해서 언제부터인가 독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신랑이 가끔 유학 이야기를 꺼낼 때 손사래를 치다가도, 그것이 독일이라고 이야기하면 잠시 괜찮겠다고 끄덕인다. 영국이나 스페인처럼 꼭 가고 싶다고 일기장에 여러 번 써보지도 않은 나라인데, 만약에 한 번 살아볼 만한 도시를 선택하라면 독일이 좋을 것 같다. 길 잃은 지하철에서 나를 안내해 줬던 훈남과, 조용히 눈 내리던 예나의 골목길과, 벤치에 앉아 엽서를 끄적이며 위로받던 잔잔한 호수와, 앙겔라 메르켈과, 소시지가 떠오르면서 괜찮겠다.. 괜찮겠다.. 정말 괜찮겠다...라고 말하게 된다.


앞으로 정말 독일에서 살게 될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생애 처음으로 '의도적인 독일 여행'을 슬며시 계획해 본다. 왠지 모르게 나를 끌어당기던 나라, 그곳에 발 끝을 한 번 담가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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