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iya Aug 10. 2017

목욕 가는 여자들

 시집간 딸이란 얼마나 허깨비 같은지.

 명절 끝에 친정과 시댁 중간쯤에 있는 목욕탕에서 몰래 친정엄마와 만났다. 80이 된 엄마는 60 언저리 딸의 때를 밀고 있었다. 오십견이 왔는지 팔을 움직일 수 없어 손이 안 가는 부분만 해주면 된다고 말을 하는 하는데도 “너가 힘이 들지 나는 괜찮다” 하시며 등뿐만 아니라 온 몸의 때를 미는 것이었다. 서로 밀어주겠다고 실랑이를 하면서도 엄마의 커다란 가슴과 배 살이 내 몸에 닿는 감촉이 좋고 엄마도 딸의 몸을 씻기면서 어린 자식을 키우던 행복했던 옛날을 생각하리라 여기며 못 이기는 척 몸을 맡겼다.


  시간이 없어서 해보지 못했던 우유 마사지도 하고 헤어트리트먼트도 머리에 듬뿍 바르고 찜질방에 누워 얘기도 했다. 어릴 때의 우리 자식들 얘기에서 아버지 험담까지 곁들여진 꿀 같은 모녀간의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엄마는 연신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너 가봐야 안하나? 시어른 알면 야단맞을 텐데 얼른얼른하고 가자. 두 시간도 안 되었건만 재촉을 했다. 


  남편과 나는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보니 한동네 사람이었다. 도시 사람들이란 옆집 사람도 알 수 없는 게 다반사라 수년을 한동네에 살았건만 스치지도 않았나 보았다. 결혼 후 양가 어른들이 이사를 해서 더 가까워졌고 걸어서 10분 거리에 살고 계신다. 

 명절에 한 번만 이동하면 된다는 장점도 있지만 따로 친정에 찾아갈 수가 없다는 단점도 있다. 제사도 없는 집이지만 맏며느리로서 최선을 다해 본분을 지킨다고 결혼 30년간 외할아버지 장례식 때 친정에서 자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물론 직장 생활로 따로 시간을 낼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명절에 내려오면 친정에 가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다. 바로 옆에 두고도 정해진 날에 가야 한다는 건 만화책을 옆에 두고 학교 공부를 해야 할 때와 같다. 할 일 다 하고 무료하게 티브이를 봐야 할 때 어른들이 화투 치는 걸 보고 있을 때 이렇게 있을 것이라면 달려가서 엄마 얼굴 한 번 보고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남편과 아이들을 대동하고 가는 공식적인 방문이 있기에 말도 못 꺼내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뭐 대단한 시집살이를 했을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다. 친가에 내려오자마자 친구들 만난다고 나가서 밤새우고 들어오는 남편도 너무 낯선데 버럭버럭 화를 잘 내는 시어머니가 무섭고 낯설어서 언제나 경직되어 있었던 것 같다.


  정작 친정엄마랑 목욕 갔다 오겠다 한들 반대하실 어른도 아닐뿐더러 도리어 맛있는 것 사 드리고 오라고 하실 양반인데도 움츠러든 마음이 차라리 몰래하는 게 편하다는 쪽으로 마음을 정하게 한지도 모르겠다. 누구를 탓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환경에서 자라 갑자기 이쪽 문화에 적응하고 살기가 그렇게 호락하지는 않더라는 얘기다.

   어른께 말씀드리고 왔다고 누차 얘기를 해도 느낌으로 친정엄마는 아는가 보았다. 서둘러 옷을 입다 보니 엄마가 주스에 빨대를 꽂아 내 입에 넣어주셨다. 한 입이라도 더 먹이려고 연신 들이밀며 “쭉쭉 빨아라 이거라도 먹어야지, 힘들어서 저녁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하시면서. 두 사람 때를 혼자서 다 민 것은 정작 엄마인데 말이다.


  목욕탕 문 앞에서 손 흔들며 뛰어가는 딸을 하염없이 지켜보고 서 있는 엄마의 모습에 속이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친정도 시댁도 차이를 못 느끼는 두리뭉실한 아줌마가 되었지만 딸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도 한참이나 저렇게 서 있다가 돌아서 갈 노인네를 어떻게 할지. 나는 왜 이렇게 살아가는지...

매거진의 이전글 촌스러운 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