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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ya Oct 11. 2017

짜장면이 먹고 싶다

 석촌 호수를 따라 걷다 보면 철퍼덕 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짜장의 면을 뽑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판에 두들기는 소리다. 수타면이라 하여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다 보니 도로에 면한 벽 전체를 유리로 만들어 시각과 청각을 만족시키는 호객 행위 이리라. 


  우리 아이들이 듣는다면 또 옛날 고리짝 얘기한다고 핀잔을 줄 것이 분명한, 짜장면에 얽힌 이야기들은 수도 없이 많다.  방송에도 여러 번 나왔겠지만 어릴 때 고팠던 음식이라 그런지 지금도 몸이 아프거나 배가 고프면 떠오르는 음식은 짜장면뿐이다. 50년 전에야 배불리 먹는 것이 힘들 때였고 거기다 돈을 주고 사 먹는 짜장면 같은 것을 어디 꿈이라도 꿀 수 있었어야 말이다.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해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우리 삼 남매를 데리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가끔씩 오는 버스에 시간도 많이 걸리는 길이다 보니 중간쯤인 버스 터미널인가에서 중국집으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가셨다. 먼지를 뒤집어쓴 아이 셋과 어른이 달랑 짜장면 두 그릇을 시키자 마뜩잖은 표정의 주인이 물 잔도 두 개 손 닦는 수건도 두 개만 가져왔다. 지금처럼 낱개로 포장된 종이 냅킨이 아니라 그때는 사방 20센티 크기의 노란색 물수건이었다. 


  어린 눈에 그것이 그렇게 좋아 보였던지 나와 동생은 서로 갖겠다고 실랑이를 했었다. 우리 자리 옆에서는 아저씨가 연방 탁탁 밀가루 반죽을 두드리며 국수 가락을 뽑아내고 그 동작과 소리에 정신이 빠져 있으면서도 수건을 뺏기지 않으려고 꼭 쥐고 놓지 않았었다. 그 후 그것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지도 않은 걸 보면 싱겁기 그지없지만 그때의 우리는 거의 죽기 살기로 대치했었던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한 그릇을 우리 자매에게 넘겨주고 나머지 한 그릇의 면을 휘휘 섞으면서 맛이 어떤가 보자며 한 젓가락을 먹고는 오빠에게 그릇을 넘기셨다. 


  세상에 그렇게 맛난 음식은 지금까지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라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나는 꼭 허름하고 나이 든 주방장이 있는 중국집을 찾아가곤 한다. 옛날 그 맛을 내는 진짜 장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허름하고 나이 든 주방장이 맛있는 짜장면을 만든다는 생각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구박을 받지만 내게는 논리고 뭐고 다 상관이 없다. 그냥 그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는 것도 처음 보았고 그렇게 맛난 음식도 처음이었기에 그 아저씨의 국수 가락과 노란 손수건이 어린아이의 머릿속에 생생히 박혀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 또한 그때의 짜장면이 흡족지 못했는지 우리 5남매를 키울 때 언제나 말씀하시곤 했다. “너들이 결혼해서 집에 올 때는 오른손엔 소고기 왼 손엔 짜장면을 들고 오너라. “ 

오천 원이면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을 백 그릇도 사 먹을 수 있는 처지가 되었지만 아버지는 소화를 시킬 수 없어서, 건강에 좋지 않다 해서 기껏해야 일 년에 열 번도 드시지 못하는 것 같다.


  가게 주인의 의도대로 탁 탁 두드리는 소리에 이끌려 나는 점심을 짜장면으로 먹기로 결정했다. ‘먹고 싶을 때 먹어라, 늙으면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소화도 못 시킨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오늘은 곱빼기를 시켜보련다. 비록 국수를 뽑는 사람이 새파란 젊은 녀석이라 참 맛을 낼 수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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