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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ya Aug 25. 2017

메리와 할머니

  할머니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메리가 생각나고 메리를 생각할 때면 또한 할머니 생각이 난다.

 하나는 사람이요 하나는 개이니 닮았을 리 만무하며 살아생전에 할머니가 그 개를 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메리조차 할머니의 존재를 알 턱이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와 무슨 특별히 남들과 다른 애정의 끈이 연결되어 있었느냐 하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저 할머니와 외손녀, 주인과 개 한 마리의 관계 이상은 전혀 아니었다. 

    

  할머니는 잔정이 많지 않으신 분이었다. 아홉이나 되는 할아버지 형제들에 당신 자식들이 일곱이나 되고, 거기에 모자라 외손녀인 나까지 한몫을 하려고 끼어들었으니 뭐가 그리 살뜰했겠는가? 

어린 시절,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데리고 단칸 셋방에서 살아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휴가차 들른 외삼촌이 보게 되었다. 입 하나 덜 자는 심산으로 나를 외가로 데리고 갔었다. 지친 여정으로 초췌한 내 모습을 보신 할머니는 그저 나를 끌어 당신의 무릎에 누이고 가만히 등을 쓸어 주셨다.

 일하는 사람들보다도 먼저 일어나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잠든 모습을 보인 적도 없었지만 힘들다 짜증내는 법도 아프다 누워계신 적도 없었다. 언제나 조용조용히 싫다 좋다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으셨다. 평생을 두통으로 고생했다는데 할머니가 입원하실 때까지 그것도 몰랐다.


  메리는 태어 난지 이레 만에 우리 집으로 왔다. 녀석의 할아버지가 군견이고 할머니는 사냥개 후손이었는데, 비록 아비가 동네 똥개였지만 품위와 기개를 지닌 그런 강아지였다. 동네의 다른 뭇 개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동거지들, 하지만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여린 눈빛, 자기 밥그릇의 밥조차 이웃 개들에게 양보하는 그런 개였다. 그 집의 짐승들은 식구를 닮는 다는데 이 집 식구들은 사람도 개도 어찌 이리 물러 터졌냐고 이웃집 아주머니가 혀를 차곤 했었다. 

  어느 날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교실에 두고 온 물건을 가지러 갔었다. 어둑어둑해진 텅 빈 교실이 무서워서 메리가 내 뒤를 따르는지도 모른 채 얼른 문을 닫고 나와 버렸다. 다음날 아침 나는 마루 밑에서 피를 흘리며 누워있는 메리를 보았다. 2층에서 유리를 뚫고 뛰어내린 것이다. 

아이들은 언제나 새로운 놀이 감이 끊이지 않는지라 녀석이 왜 피를 흘리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었다. 며칠을 시름시름 앓았지만 지나가다 한 번씩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내가 보여준 최고의 관심이었다.

  메리는 그렇게 8년을 우리와 함께 했다. 매년 7~8 마리의 새끼들을 안겨주면서 엄마의 든든한 목돈 저금통 역할을 충실히 해 내었다.

그때는 한 집에서 개를 5년 이상 키우면 주인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5살이 넘도록 복날을 그냥 넘길 수 있는 개들은 없었을 것이기에 그런 말을 했을듯싶다.

어느 날 학교 갔다 오는 길에 개장수 오토바이 뒤에 실려 가는 메리를 보았다. 우리 개 일리가 없다고 다시 보았을 때 메리는 있는 힘을 다해 짖어 대었다. 개장 안에 갇혀 발버둥 치며 멀어져 가던 그 슬픈 눈빛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을 차지한다. 전기밥솥을 마련하기 위해 오천 원에 개장수에게 팔려간 메리는 어떤 생각으로 최후를 맞았을까?   

  

  뇌종양으로 일 년여를 누워 계셔서인지 퀭한 눈빛 박박 밀어버린 머리에 듬성듬성 돋기 시작한 반백의 머리카락으로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셨다. 여전히 가난한 내 현실로는 할머니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해 질 녘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내게 살며시 쥐어주던 십 원짜리 동전만 자꾸 생각났었다. 그 돈 십 원으로 비스킷 산도 하나 사 먹고 나머지는 액자 뒤 내 비밀 주머니에 차곡차곡 모아 뒀었지. 언젠가는 이 돈을 엄마에게 가져다주리라. 그러면 다시는 엄마가 보고 싶어 울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던 그 시절만이 고장 난 레코드처럼 돌고 또  돌고 있었다.     

할머니의 장례식 날, 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소리 높여 울었다. 내 현실에 마음 아파서 그리고 너무나 명백한 내 잘못에 대한 마음의 위로를 받기 위하여.


  한 사람이 생을 살아가면서 참 많은 인연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아무런 조건도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상대가 몇이나 될까?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난 이 둘을 떠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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