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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ya Sep 09. 2017

인연이 시작되는 곳

  여고시절 한창 인기 절정이던 류시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나의 인도병은. 신비로운 미지의 나라라는 것만으로도 십 대 소녀의 상상력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을 텐데 타지마할에 얽힌 왕과 왕비에 대한 애절하고도 지고지순한 이야기는 거의 환상에 가까운 믿음을 갖게 했다.

 

인도에만 가면 나의 사랑도 만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나중에서야 바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 나는 알라딘과 알리바바 같은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다 인도와 관련된 것인 줄 알았다. 중학교 때 지리 선생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한국지리도 세계지리도 배운 적이 없다고 항변을 하고 있지만 사실 지금도 주위 사람들에게서 공인된 길치라고 놀림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할 말이 없긴 하다. 


  그러한 인도를 가게 되었다. 무려 40년 가까이가 지나고 나서다. 하지만 역시나 바라던 인연은 없었다. 난 이미 결혼하여 남편도 아들딸도 있는데 무슨 기대를 했었는지. 그 책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관광객이 있다고 쓰여 있었지만 그날은 우리 일행을 제외하곤 서양인 몇몇만 띄엄띄엄 다닐 뿐이었다. 억지 인연을 만들려 한들 수가 받쳐주지 못했다. 친구들은 다음 생을 기약해야겠다며 궁전 기둥만 끌어안고 있는 사진을 찍어댔다.

     

  하지만 며칠 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흔히 갠지스 강이라 알려진 강가 강에서 하는 힌두 의식을 보러 우리 일행은 일몰 무렵에 서둘러 가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그 길 양쪽으로 우리의 남대문시장을 연상케 하는 호객 행위와 흥정하는 관광객들로 번잡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그때 열대여섯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다가왔다. 다짜고짜 mom, I was your son으로 시작해서 자기는 전생에 나의 아들이었고 오늘 당신을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뭔가를 팔려고 온 아이인 줄 알고 웃으면서 지나쳐 왔다. 하지만 아무런 물건도 들고 있지는 않았다. 그 아인 그 길을 쭉 걸으면서 길을 터 주었고 브라만 사제들이 의식을 거행하는 곳까지 데려다주었다. 빤히 쳐다보는 나를 보더니 내일 아침에 다시 자기를 보게 될 것이고 그러면 자기 말을 믿을 것이라면서 오던 길을 가 버렸다. 

그 행사 내내 내 귀엔 거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줄곧 ‘진짜일까? 아닐까?’ 가 맴돌고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내일 아침이면 다른 곳으로 떠날 예정이었고 다시 이곳을 찾을 일은 없을 테니 신경 쓸 일은 아니라 마음먹었다.


  다음날 새벽, 우리를 안내하고 간 그분이 느닷없이 다시 강가 강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미로 마을을 꼭 보여주고 싶다면서.

숙소를 출발하면서부터 두근거리던 가슴은 저 멀리에서 당당히 걸어오고 있는 그 아이를 보고 나서는 도리어 착 가라앉고 있었다.

“hi mom we met again.”

전날 입었던 옷도 아니었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떻게 이 어리버리한 아줌마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단 말인가.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동안 그 아이를 정말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며 초긴장 상태이었던 건 맞았지만 고개를 빼고 살펴보지는 않았었다.


그야말로 뻥~ 해서 서 있는 늙은 나에게 새파란 어린놈이  내 어깨 위에 손을 얹고 말을 이어갔다. -나는 전생에 당신의 아들이었어요 나는 여기에서 행복합니다. 당신만 행복하면 돼요. 내 걱정하지 말고 당신만 행복하세요- 대략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아마 내가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면 내가 들은 이야기는 위와 같았다. 그리고는 전날과 똑같이 안전하게 나를 일행에게 데려다주고는 손을 흔들면서 사라졌다. 

    

  내 이야기를 들은 식구들은 역시나 어벙한 사람은 국제적으로도 통한다면서 놀려대었다. 맹세컨대 난 결코 잃어버린 물건도 없었고 물건을 사라는 권유도 받지 않았다.

인연을 중시하는 인도인들의 사상으로 보자면 전생에 부모와 자식관계가 아니었던 사람은 있을 수 없기에 그 아이의 말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왠지 개운치 못한 기분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 아이의 말이 진짜이든 아니든 ‘당신만 행복하면 됩니다’라는 말이 가슴에 머문다. 생을 바꾸었는데도 찾아와 당신만 행복하면 된다고 말할 정도의 인연이었다면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모자관계였을 것 같은데 그렇게 절절한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는 게 사람이라면 지금의 인연만이라도 원 없이 한없이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음 생까지 이어 걱정하게 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하지만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우리네 범부의 일상이라 새로운 후회는 계속 쌓여만 가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관계의 고리를 벗어나 후회도 아쉬움도 남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나저나 인도의 내 아들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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