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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ya Sep 21. 2017

내가 너보다  중요한가

  40년이 훌쩍 지난 귀환이었다. 마음속에 자리했던 고향 같은 곳. 언젠가는 한번 찾아보리라 소망했지만 이렇게 이런 일로 가고 싶지는 않았었다.

  거의 연락도 없이 지내던 어릴 때 친구가 한 달 전에 전화를 했다. 우리가 손수 나무를 심고 가꾸던 그 학교가 후배들을 위한 기금 모금 행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신설 학교라 한 학년 두 반 학생을 모두 합쳐야 채 백 명이 되지도 않았고 그나마 가정형편으로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아이들도 여럿이었으니 졸업생은 그보다 더 적을 것이다. 나 또한 아버지의 전근으로 중도에 전학을 갔으니 엄밀히 따지면 그 학교 졸업생이 아니라 참석할 자격조차 되지 못했다. 이제 자식들로부터 벗어나 옛 친구들이 그리워서 라고 말들이야 했지만 그나마 대도시에서 돈깨나 만지고 산다는 소문에 기금 모금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았다. 

하필이면 집안에 결혼식이 있어 부득불 참석을 못 할 것 같아 차일피일 연락을 미루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던 참이었는데 어제 아침 친정 엄마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야야 니 김 약국집 준이 알제? 가가 죽었다고 연락이 왔네”라고 시작된 이야기는 대략 이러했다. 김 약사는 벌써 오래전에 병으로 죽었고 그 후 준이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 근처로 이사를 갔다. 

준이는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을 나와서 s그룹에서 일하다 몇 년 전에 다시 어릴 때 살던 곳으로 이사를 갔다는 것이었다. 준이 동생 현희가 친정 엄마 집 근처에 살고 있어서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 집 식구들은 왜 하나같이 그래 죽는지 모르겠다는 엄마의 말에 준이 역시 자연스러운 죽음은 아니구나 싶었다.  

   

  흙길을 그나마 하루에 세 번밖에  운행하지 않던 버스가 지금은 8차선으로 쭉 뻗은 대로를 매끄럽게 잘도 간다. 오른쪽으로 동해 바다를 끼고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멋진 광경을 펼치면서. 

이 조그마한 마을에도 개발의 붐은 가진 자들의 욕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관광지가 되다 보니 길도 넓어지고 유명 대형마트와 숙박시설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나마 제일 번화한 곳이었던 신작로는 옛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보상을 많이 받으려는 상인들의 욕심에 신작로를 중심으로 줄 지은 가게들만이 좁은 길 그대로 외로이 고립된 섬 마냥 서 있었다. 100미터가 채 되지 않는 가게 행렬이지만 관광지로서의 화려함을 치장하느라 오두막에 기와지붕을 얹은 것처럼 커다란 간판들만 눈에 들어왔다. 


어릴 때의 신작로는 그야말로 마법의 거리였었다.

마을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나오던 성진 상회를 중심으로 약국 철물점 사진관 신발가게 경찰서 술도가 그리고 실비식당이 있었다. 아침마다 막 들어온 배에서 나온 생선을 사러 심부름 가던 곳, 막내 동생 간식인 풀빵을 사러 가던 곳, 왕자표 하얀 고무신이 얌전히 자리하던 곳, 그리고 왼 종일 바라봐도 지겹지 않던 알록달록 사탕이 그득하던 그곳엔 편의점과 핸드폰 가게, 줄줄이 이은 식당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 병원이 아닌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도 희한한 일인데 물어서 찾아간 준이가 운영하던 정비소 옆 살림집에서는 옛날 우리네 할아버지 때나 했을 풍습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마당 한 켠 커다란 솥에는 펄펄 국이 끓고 동네 청년들과 어른들이 황망이 들고 나며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 아이의 인품이 어떠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빈소에 절을 하고 일어섰을 때 상주 석에 혼자 서 있는 아낙의 무표정한 얼굴이 또한 그의 생을 짐작케 했다. 

    

  담장을 끼고 이웃해 살았던 준이와 나는 감추고 싶은 것을 서로에게 들켜버려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는 어색하고도 담담한 사이로 지냈었다. 준이는 한 살 아래 영민한 아이였다. 김 약국집 아들. 이웃하던 몇 동네 통틀어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아버지의 아들답게 그 아이는 모든 면에서 출중했었다. 


여름날이면 준이와 동생 현희 나와 내 동생 우리 네 명은 마당 평상에 누워 끝말 이어가기를 하고 지루해질 때면 귀신 이야기 같은 것을 돌아가며 했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그 시절엔 사방이 귀신의 집처럼 느껴져 귀신이라는 말만으로도 으스스 한기가 들곤 했었다.

 밤마다 듣고 했던 모든 이야기를 새로 엮고 짜서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였지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어갔었다. 그러다 지루하면 준이는 별 이야기를 했었다. 평상에 누우면 쏟아질 듯 흐르는 은하수와 손만 뻗으면 잡힐 듯한 별들이 여름밤 우리들의 친구였기에 그러했을 것이었다. 북두칠성의 큰 곰자리와 작은 곰자리, 직녀와 견우별, 백조자리 전갈자리 궁수자리를 비롯해 카시오페아 등등 그 많은 별자리들을 찾아내어 관련된 이야기들을 참 맛깔나게도 했었다.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던 별자리 이야기들은 전부 준이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였다.


  유독 배앓이를 많이 했던 나는 그날도 밤중에 변소를 가야 했다. 숨죽여 우는 여자의 울음소리에 무섬증이 일어 둘러보았을 때 돌담 너머로 먼저 준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를 가만히 지켜보고 서 있던 아이. 눈길을 따라간 곳엔 준이 엄마가 쪼그려 앉아 울고 있었다. 어둠 속이라 그 아이의 표정을 볼 순 없었지만 평상시의 모습이 아닌 무섭고 서늘한 준이가 있었다. 

    

  준이 아빠 김 약사는 참 잘생긴 아저씨였다. 의사가 되는 학교를 나왔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병원이 아니라 약국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병원이 없던 동네였던지라 수술 같은 큰 병은 몰라도 사소한 병쯤은 그가 직접 치료해 동네 사람들은 그를 의사 선생님으로 불렀다. 그 당시엔 병원에서도 약을 팔던 시절이라 진짜 의사였는지 아니면 약을 팔다 보니 간단한 치료쯤은 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잦은 싸움으로 준이 엄마는 우리 집에서 자주 밤을 보내게 되었고 어느 날 밤 나직이 주고받는 아줌마들끼리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심술 맞은 큐피드가 무슨 일에 틀어졌는지는 모르지만 하지 말았어야 할 짓을 한 것이었다. 김 약사와 그의 고종사촌 여동생에게 사랑의 금 화살을 쏘아버린 것이었다. 그들 또한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많은 갈등을 겪었겠지만 서로를 간절히 원하는 그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는가 보았다. 

늦게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집안 어른들이 급기야 여동생을 비밀리에 시집을 보내버린 후 김 약사의 방황은 몇 년을 이어갔고 가까스로 준이 엄마와의 강제결혼으로 이곳에 정착한 후 잠잠한 생활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살을 맞대고 사는 아내야 왜 모르겠는가? 마음이 떠나버린 빈껍데기와의 삶이 어떠한지.


  아내에게도 자식들에게도 냉랭한 아버지를 둔 준이는 어머니의 외로움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던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이 이곳을 떠나고 몇 년 후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역시 여기를 떠난 준이는 외가 집에서 대학을 다녔다 한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똑똑한 아이였던지라 어렵지 않게 그 유명한 대학을 나왔으리라.  

   

  정비소 빈터에 놓아둔 탁자에는 벌써 동창들 몇몇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보다 한 해 선배이기에 아는 얼굴은 없었지만 시골에서는 아래위 다섯 살 정도는 막 먹는다더니 누군가 아는 체를 했다. 상가 집이라기보다 며칠 뒤에 있을 동창회가 앞당겨 열리고 있는 분위기였다. 미망인을 불러오고 인사를 시킨다.

 미망인에 대한 격식은 아예 없었다. 불리어 온 사람도 불러온 사람도 동네 마실 나온 분위기요, 피붙이에게나 가능하게 스스럼이 없었다. 소개한 사람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 미망인이 나와 동창인 경숙이란 것을 알았다.


너무나 의외의 예상치 못한 그들의 관계로 잠시 얼떨떨했었나 보았다. 나의 놀람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이 친구 하나가 말을 이어나갔다. 서울에 있는 백화점에서 경숙이가 일을 하고 있을 때 우연히 준이를 만났고 얼마 전에 여기로 돌아와 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되짚어 생각해 보면 그들이 결혼할 즈음에 경숙이와 한번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어떤 일과 겹치기도 했고 먼 곳이라 가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때 경숙이는 신랑이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었다. 그냥 일하다 만난 사람이라고만 했었다.


  옛날의 준이 그대로였다면 참 좋은 남편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이 전혀 남아있지 않는 경숙이의 편안한 표정이 그러했을 것이란 내 생각을 확인시켜 주는 듯했다. 

고장 난 차 수리를 위해 출장 갔다 돌아오던 길에 일어난 급작스런 사고였다지만 경숙이는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 이제는 편안할 것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둘 사이엔 아이가 없었다. 준이였다면 그것도 그러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흘을 그곳에 머물렀다. 장지에도 갔다 오고 삼우 재도 보내고 동창회에도 참석했다. 그 사흘 내내 나는 준이를 보내러 간 것이 아니라 어릴 때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시간들처럼 모든 일을 함께 한 것 같았다. 어릴 때 보던 그 별들은 쳐다보지 않았다. 내가 그 별자리들을 하나하나 찾아간다면 어느새 준이가 그 별들 중 하나에서 미소 짓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준이 아버지의 가슴 아픈 사랑이 참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긴 시간 동안 아들은 가슴속에 아픔을 담아 괴로워하고 아내의 삶 또한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내 하나의 사랑이 남의 삶보다 더 중요할까 자꾸만 물어보게 된다.

 준이 아빠는 언제나 술이 취하면 ‘트자 ㄹ이야 트자 ㄹ이야’를 웅얼거리곤 했다.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인지, 처자식이 발목을 잡아 자신의 삶을 망쳤다는 것인지 모를 그 말만을 중얼거렸지만 정작 그 소리는 듣고 있던 아내와 자식의 마음을 비틀어 꼬아 가족 모두의 삶을 ‘ㅌ자 ㄹ’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고나 있었을까? 


준이가 그렇게 탐독하던 그 많던 별자리 이야기들이 대부분 아쉬운 인연들을 전설로 갖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아이가 진정 가고 싶었던 곳은 그런 곳이 아니었을 텐데 나는 왜 자꾸 그곳 어딘가에 준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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