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는 긍정형들의 비밀
밝고 쾌활한 긍정적 성격은 누구나 선망하는 성격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10점 만점에 5점 이상처럼 사람의 긍정적인 성격을 수치로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상대에게 느껴지는 긍정의 정도 차이를 통해 우리는 "걘 긍정적이어서 같이 있으면 기분 좋아" 내지는 "쟤는 매사 왜 저렇게 부정적이래?"와 같은 상반된 평을 내놓는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긍정적인 성격만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때론 세상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처럼 주변 사람들을 낯설게 때로는 외롭게 만드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의 20살, 그러니깐 이제 막 어른으로 넘어가려던 시기에 나는 꽤 부정적이고 힘든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외면했고 행여나 그 부정적인 현실이 내 꼬리표가 될까 노심초사했다. 그 순간 부정적인 내 현실을 마법같이 바꿔버릴 주문이 필요했다.
스스로에게 건 주문은 효과가 있었다. 먹은 나이만으로도 예뻐 보이는 20살, 웃는 얼굴이 나름 매력적이었던 나는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었다.
사람들은 20살의 미숙한 행동들을 의도치 않은 엉뚱함 그리고 순수함으로 바라봐주었고 무슨 일에든 파이팅 넘치는 내 모습을 보고 '너 참 밝다'라고 말해줬다. 20살의 내 모습들은 20대 전체를 그러하게 만들어줬고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사람으로 통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나를 타고 태어난 긍정형으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좋은 면을 찾아내 칭찬해 주었고, 새로운 일을 도모할 때마다 함께하는 사람들을 응원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사람들 앞에서 항상 웃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나는 노력하는 긍정형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을 발견해 적절한 시기에 칭찬할 수 있게끔 끊임없이 생각해야 했고, 새로 도전하는 일에 긴장되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함께하는 사람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웃고 싶지 않은 상황에도 웃었다.
이런 노력들이 한순간 부끄러워질 때도 있었다. 대학 동기 B는 긍정적인 친구로 나는 그녀가 타고 태어난 긍정형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봤다. B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상황도 그 친구의 말장난으로 분위기는 즐겁게 바뀌었고, 매사 자신감이 넘치는 그녀를 사람들은 좋아했다. 주변 사람들은 나와 B가 함께 다닐 때마다 둘 다 긍정적이어서 보기 좋다 말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나와 B의 긍정적인 성격은 그 시작이 다르다는 것을.
어느 날, B는 늘 그러했던 것처럼 나에게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그날따라 그 농담이 기분 좋게 들리지 않았던 나는 B에게 크게 화를 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타고 태어난 긍정형들에게 갖고 있었던 노력하는 긍정형의 열등감을. 그 일이 있은 후 서먹해진 우리는 마침 각자의 사정이 생겨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요즘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로 사랑받는 김은숙 작가가 몇 해 전에 쓴 ‘신사의 품격’이라는 드라마를 좋아했다. 드라마 속 수많은 장면들 중 마음에 잊히지 않는 장면과 대사가 있는데, 여자 주인공 이수(김하늘)는 남자 주인공 도진(장동건)에게 이런 말을 한다.
김도진 씨 자신감이나 여유로움 같은 게 다 그런데서 나오는 거 같아요. 나도 자신 있고 여유 있지만 나랑은 다르죠. 나는 노력해서 만들었고, 김도진 씨는 타고났으니깐. 노력한 사람은 타고난 사람을 한 눈에 알아보죠.
좀 더 좌절하기 위해서...
그리 행복한 어린 시절은 아니었어요. 자랑할만한 집안도 아니구.
이 장면을 보고 작가가 드라마 인물을 만드는 데 있어 노력형 사람과 타고난 사람의 특징 그리고 그 성격이 형성된 배경까지 철저하게 생각하고 만들었음에 놀라웠다.
노력해서 긍정적인 성격을 갖게 된 사람들이 타고 태어난 긍정적인 사람들을 한 눈에 알아본다는 것은 노력하는 긍정형들만 아는 비밀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력하는 긍정형들은 이런 걸 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는다. )
우리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 중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할 때가 많다. 항상 밝고 자신감 넘치며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왜 저렇지 못할까' 라며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성격의 사람들 중 (타고 태어난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노력하는 긍정형으로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긍정형들의 웃음 뒤에는 역시나 불안함과 떨림이 함께 있다.
다만 현실을 마법같이 바꿔버릴 '긍정'이라는 주문을 걸고 있는 것뿐이다.
나를 힘들게 했던 20살의 부정적 현실은 이미 지나갔지만 난 여전히 노력하는 긍정형으로 살아간다. 노력해서 얻은 긍정적 성격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자신감 있게 살 수 있고 매사 여유가 넘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선천적으로 긍정적이게 타고 태어났다면 절대 눈치챌 수 없었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가졌다.
노력하는 긍정형으로 시간을 보낸 지 오래되다 보니 이제 누군가의 장점을 찾는 일도, 남들에게 잘할 수 있다고 응원하는 일도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웃는 일도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한다.
여전히 타고난 선천적 긍정형들의 여유로움이 부럽긴 하지만, 그 또한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그들을 향한 내 열등감도 점점 잦아들거라 기대해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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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꾸준히 노력하는 긍정적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