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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아줌마 Mar 15. 2024

2-6. 관조觀照, 나를 지키는 힘


고대로부터 '관조觀照'의 전통이 이어져 왔다.


'관조는 밝게 비추어 본다는 뜻으로, 성품의 진체(眞體, 참나)를 알아낼 수 있는 중요한 수행 방법으로 여겨져 왔다. 싼스끄리뜨어로는 위빠사나(vipāsyanā)라고 한다.'


어려운 말이 가득하지만 쉽게 요약하면 '관조'는 진짜 내가 어떤 모습인지 보는 것이다. 앞에서 이어온 표현으로 바꾸면, '내가 육체뿐 아니라 감성체, 지성체 등 다양한 존재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을 직접 보아 알라는 뜻이다.


심체(心體)는 눈에 보이지 않는 데다, 과거에는 그것을 표현할 개념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에 관한 가르침도 곧잘 '말로 전할 수 없는 진리'라거나 '유有도 무無도 아닌 자리'라거나 하는 모호한 언어들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 정신분석까지 활용할 수 있는 우리는 그 세계를 그렇게 모호하고 신비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구체적인 언어로 전달하여 실용적인 지혜로 활용할 수 있다.




'관조하는 것'이 중요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덕목은 그것이 '나의 변화를 관찰하여 나를 지키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내 마음에 일어나는 것들은 '나의 것'일 수도 있고, '타인의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이 나의 것이고, 무엇이 타인의 것인지를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육체적 건강을 지키는 원리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싶다면, 먼저 음식물을 살피고 조절해야 한다. 너무 많이 먹는지, 너무 적게 먹는지, 어느 정도 먹어야 몸이 편안한지, 무엇을 먹으면 탈이 나고 무엇을 먹으면 활기가 솟는지 살피고 조절해야 한다. 아무리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도 내 몸에 무리가 되는 음식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먹는다면 결국 병이 날 수밖에 없다. 또, 그로 인해 시간이 갈수록 몸과 삶이 쇠약해질 수밖에 없다. 즉 '평균적 인간의 조건이 아니라 '유일한 개별자'로서의 나를 존중하며 내 몸의 상태를 세심히 살펴야 건강할 수 있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서 마음이 편안하고 건강한지, 어떤 상황이 되면 마음이 동요하는지, 어떻게 쉬었을 때 힘이 차오르는지를 스스로 관찰하고 살펴야 건강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노력이 '관조'의 진정한 의미다. 관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을 살피고 돌보는 일'인 것이다. (물론 관조에는 더 다양한 의미가 있지만 이에 관해서는 차차 알아보게 될 것이다).


최근 나를 등한시하고 타인의 욕망을 좇으면 불행해진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자기 정체성'으로 관심을 돌리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이 말을 오해하여, 타인과 사회를 거부하고 오직 '나의 욕망'을 따르는 것이 행복이라 잘못 인식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를 중시하라는 말은 '나'를 분리시키라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에 단 하나 존재하는 고유한 존재로서의 '나'의 개별적 특징을 이해하고 돌보라는 뜻이다. 내가 무엇을 먹어야 건강한 사람인지, 무엇을 해야 행복한 사람인지 관심을 두어 살피라는 뜻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기질을 타고나기 때문에 행복에 이르는 길도 모두 다르다. 누구는 조직에 속해야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조직 밖에 홀로 존재해야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예를 들어, 내가 큰 조직과 안정감 속에 있어야 행복한 사람이라고 해 보자. 그러면 나는 최선을 다해 입시도 치르고 취직도 준비해야 한다. (반대로 조직 밖에서 행복한 사람이라면, 다수의 길에서 벗어날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목표를 향해 가다 보면 자신의 한계와 만나게 된다. 체력이 약하다거나, 의지가 약하다거나 하는 자기만의 고유한 문제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진지하게 찾아보아야 한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공부도 하고 실천도 해보면서 한계를 극복하다 보면 사회적 성취는 이루지 못해도 자신에 대해서는 더 잘 알게된다. 또, 문제를 하나하나 인식하고 해결할수록 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도 기르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해탈의 과정이고, 우리가 생을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육체적 에너지를 소모해 얻은 경험으로 영혼의 힘을 키우고, 그렇게 커진 영혼의 힘으로 다시 생을 이어가는 순환. 그 과정을 통해 더 자유롭고 행복한 영혼이 되는 여정이 수많은 생을 거쳐 영혼이 다다르고자 하는 목표인 것이다. 그래서 델피의 신전에도 '너 자신을 알라'는 단 한 마디의 가르침이 새겨져 있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존엄한 것은 우주에 나와 같은 존재가 오직 나 하나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핸드폰 속에서도 오직 내 핸드폰만을 울리게 하는 고유주파수가 존재하듯이,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우주가 나에게 존재의 유일한 주파수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섞이지 않고 '나'의 고유성을 이어갈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그래서 내게 허락된 우주의 한 부분을 아름답고 조화롭게 만드는 일은 나뿐 아니라 우주 전체의 안녕에 기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신이 바라시는 것도 그 전체 대역이 아름답고 조화롭게 울려 퍼지는 우주를 보시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유신론자라면 내 힘이 미치는 영역을 아름답게 만들고, 그 영역을 조금씩 확대해 가는 것보다 더 큰 경배의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최근 인도철학과 뉴에이지의 영향으로 현실 세계 대신 초월을 강조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관조도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들여다보는 활동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마음에 잡념이 가득한 상태로 가만히 앉아 있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수행에도 단계가 있고 단계에 따라 적절한 수련법, 그리고 이유가 있다. 가만히 앉아서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 경지는 '내 문제'는 물론 타인의 영향까지 가볍게 다룰 정도가 되신 붇다나 예수님 수준에서나 가능한 경지다(예수님과 부처님도 깨달음을 얻으시기 전에 악마와 마귀의 유혹을 이겨내는 마지막 시험을 거치셨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석가모니께서도 붇다가 되기 위해 '천하의 풀과 나무를 모두 베어 헤아려도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생'을 거치며 마음의 힘을 기르셨다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 마음에는 힘이 있어서 관조의 대상에 더 힘을 실어주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마음의 잡념을 들여다보는 것은 오히려 잡념을 부추기는 꼴이 되고, 심할 경우 정신 분열에까지 이를 수 있다. 앞에서 명상을 하지 말라고 권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실 본질을 알고 보면, 명상을 하는 것보다 수시로 내 몸과 마음의 변화를 살피는 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의 차이를 살피는 것이 훨씬 좋은 수행법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신우일신(一新又一新), 날마다 새로워지고 나아지라'는 가르침이 전해오고, 이 가르침에 근거해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쓰게 하는 훌륭한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매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 보는 것, 그를 통해 '나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좋은 관조의 방법은 없다(물론 굳이 일기를 쓰지 않아도 매 순간 저절로 되는 경지가 되면 더 좋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같은 존재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만약 그것이 진리라면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누구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까지와 다른 무엇을 해야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경계하는 것이 좋다. 누구나 좋음을 아는 것들, 그것이 진정으로  나의 존재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 관조의 사례에 관한 더 읽을 거리 :https://brunch.co.kr/@wisdomforall/81

https://brunch.co.kr/@wisdomforall/40


# 여기까지가 연재의 1부에 해당할 듯합니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의식'의 문제를 다룰 계획입니다. 하지만 제가 1년간 여가를 모두 읽기와 글쓰기에 쓰느라 제 자신의 힘이 많이 소진되었어요. ^^;; 그래서 만 일 년이 된 지금, 휴식기를 가지려고 합니다.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많이 준비해서 다시 오겠습니다. 그간 연재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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