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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아줌마 May 26. 2023

문제는 마님 체질이야!



어린 시절부터 나의 고민은 의지가 약하다는 것이었다. 남들은 부지런한 새처럼 일찍 일어나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한다는데 나는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해도 사흘을 넘기기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자책도 따라붙었다.


게다가 나의 어머니는 한 번 마음 먹은 일은 어떻게든 해내고 마는 강한 기질의 소유자셨다. 어머니가 보시기에 나의 실패는 오직 정신력의 실패였다.


‘하기로 했으면 해야지, 왜 못해. 다 정신력이다.’


어머니의 반복되는 평가는 나의 자책에 기름을 부었고, 덕분에 나는 ‘의지가 약하고 게으른 사람’이라는 확고한 자아 정체성(?)을 가진 채 성인이 되었다.


하지만 운동은 안 하면 그만이지만, 욕심이 나는 일, 사회가 요구하는 일까지 안 할 수는 없다. 게다가 나는 홍수가 나도 출근하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 살고 있었다. 의지가 약한 사람은 늘 죄인이라도 된 듯 ‘의지가 약함’을 사과하고 변명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존감이 높아지려야 높아질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약이라도 먹어보자는 생각에 찾아 간 한의원에서 처음으로 반전의 이야기를 들었다.


원장님의 말씀에 의하면 나는 타고나기를 ‘약하게’ 타고났다. 에너지를 만드는 몸통보다 에너지를 써야 하는 사지四肢가 길어서 늘 에너지가 모자랄 뿐 아니라 소화 기능까지 약해서 힘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신체 구조를 타고났다는 것이다.


그 말씀이 내게는 복음 같았다. 길에 나가서 큰 소리로 ‘저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 아니에요. 체력이 약할 뿐이에요.’ 외치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실제로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의기양양하게 그 사실을 전했다!)


덧붙여 한의사 선생님은 일하며 살 수 있는 체질이 아니니, 가능하면 마님처럼 일하지 말고 놀면서 살아야 행복하고 건강할 수 있다는 조언도 잊지 않으셨다.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마님 체질’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일을 안 하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원인을 알면 바른 해결책도 찾을 수 있는 법이다. 이후 나는 이것저것 욕심 내는 대신 ‘필요한 일’에만 에너지를 집중하는 전략적 선택을 하며 살고 있다. 덕분에 체력의 문제를 덜 겪게 되었고, 자존감은 그만큼 높아졌다.


무엇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제대로 분별할 줄 안다는 것’이다. 빛과 어둠, 가까운 것과 먼 것을 분간할 수 있어야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몸과 마음의 차이, 나와 타인의 차이, 마음 안에서도 내적인 힘과 외적인 힘을 분간할 줄 알아야 자신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인간을 평균으로 환원하는 근대적 인간관 아래에서 개인이 점점 불행해져 온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알고 보면 ‘인간은 모두 같다’는 생각은 매우 폭력적이다.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폭력이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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