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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아줌마 Mar 14. 2023

인공지능이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이유


챗GPT의 등장 이후, 연일 인공지능이 화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정보기술을 보면 먼저 놀랍고 신기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러다가 인간의 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이내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사람을 대체하게 될까. 인공지능은 결국 마음도 갖게 될까?


인공지능이 논리를 정복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감정도 흉내 내는 것 같다. 하지만 공감 능력은, 창의력은 어떨까? 또 결국에는 인간을 대신해 실행을 판단하는 일까지 도맡게 될까?


이를 놓고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간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이러한 논의들이 매우 공허하거나 위험해 보인다. 인공지능이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를 논의하려면 먼저 인간의 마음과 역량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이러한 능력의 정확한 메커니즘을 모른다.



인공지능이 마음을 갖지 못한 이유



쉽게 마음이라 말하지만 마음은 감각, 감정, 생각, 의지 등 여러 작용을 포괄하는 말이다. 하지만 대개 마음을 말할 때 공통으로 언급되는 특징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마음이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세계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때, 과학자들은 우리의 뇌를 관찰해 어떤 세포가 활성화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생각의 구체적인 느낌은 알 수 없다. 그 내면의 풍경은 오직 경험하는 사람만의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과학은 마음을 ‘뇌’와 ‘의식’의 문제로 나누어 다룬다. 그리고 최근 뇌과학의 발전으로 감각 과정, 사고 과정 등 실행하는 마음의 기능에 관해서는 많은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왜 마음이 내면의 풍경을 갖는지에 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뇌과학은 반사된 빛이 어떻게 망막에 맺히고, 그 신호가 어떻게 뇌로 전달되며, 전달된 신호가 어떤 세포를 자극하는지 알고 있다. 카메라의 기능을 이해하듯이 눈과 그에 관련된 뇌 기능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시각을 온전히 이해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각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본 것을 어떻게 ‘의식’할 수 있는지 밝혀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런 문제다.


카메라도 외부의 풍경을 조리개 안으로 들여와 상(像)을 만든다. 그러나 카메라는 자신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에 반해 인간은 외부의 상을 내부로 가져올 뿐 아니라, ‘아! 아름답다!’는 느낌도 갖는다. 시각과 관련한 물리적 과정이 감각의 영역이라면 이 느낌은 주관적 의식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어떻게 물질이 정신의 고유한 특징, 다시 말해 ‘내면의 의식’을 만드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의 언어를 흉내 내고 최근에는 감정과 표정까지 흉내 내는 로봇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로봇은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의 작용 중, 특히 ‘의식’의 문제는 최근 분야를 막론하고 전 세계 지성의 최고 관심사라 할 수 있다. 철학에서 다루던 ‘의식’을 과학과 첨단 기술 분야에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 컴퓨터와 로봇을 만들기 위해 의식을 이해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로봇 개발 초기, 언어와 감각을 이해하는 데 집중되었던 노력은 그래서 이제 의식을 해명하는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감각과 달리 의식의 비밀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기계를 움직이는 것은 기계적인 과정으로 가능했지만, 기계가 의식을 갖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인류는 아직 모른다.


인류가 아직 마음의 비밀을 풀지 못한 것은 바로 이 의식, 다시 말해 주관적으로만 경험되는 내면세계 때문이다. 인류는 이 내적 경험이 펼쳐지는 무대가 뇌인지 아닌지조차 명확히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의식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David John Chalmers)는 이 문제를 아예 ‘난제(難題, Hard Problem)’라 부른다. 그는 ‘어떤 생물학적 발견이나 수학적 진보도 두 세계의 간극을 넘지는 못할 것’이라 주장하는데, 불행히도 그를 설득한 사람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마음이 신비로운 것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그 속삭임은 내 것이면서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때로 나를 설득하거나 저지하기도 한다. 하나인 듯 느껴지지만, 어느 순간엔 둘이 되어 대화도 나눈다. 그래서 한때는 모든 결정을 내리는 작은 인간인 호문쿨루스(homunculus)가 뇌 안에 살고 있다고 믿기도 했다. 물론 뇌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지금, 작은 인간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신비는 여전하다. 마음 안에서 말을 걸어오는 나, 의식에 떠오르는 다양한 느낌들, 그 내면 풍경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자료 출처 : 『의식 (현대과학의 최전선에서 탐구한 의식의 기원과 본질)』, 크리스토프 코흐,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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