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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책이름 Sep 10. 2020

고소했고 구수했던 사랑에 대하여

밤에 읽는 책 │『할머니의 요리책』

- 야야, 니 배 안고프나?

- 니 그걸로 밥 되겠나?

- 더 무라, 많이 더 무라.(더 먹어라)

- 저 부엌에 할매가 밥 한 솥 해놨다.

- 그래 애벼가지고(야위어서) 되겠나, 밥 먹자.


할머니 집에 가면 가장 많이 듣는 말입니다. 얼굴을 볼 때마다 밥 얘기를 하는 할머니. 결국 할머니 집에 있으면 살이 오통통 쪄서 돌아옵니다. 이상하게 할머니의 음식은 맛있습니다. 어딘가 고소하고 또 어딘가 구수합니다. 조물조물 무친 나물은 아삭아삭 기분 좋게 씹히고, 따듯한 미역국은 지친 속을 데우기도 합니다. 이상하게 이 맛은 따라 할 수 없습니다. 


엄마는 할머니의 삼계탕을 먹으며 늘 말합니다.

- 엄마, 나는 이 맛을 못 내겠다!


그리곤 집에 돌아오며 이렇게 말씀하시죠.

- 엄마 돌아가시면 이 맛도 영영 사라지겠지?


어딘가 시큰한 마음이 담긴 말을 하시면서요.




<할머니의 요리책>은 최윤건 할머니의 레시피를 손녀 박린이 정리한 책입니다.


몇 해 전 겨울, 할머니께서 몸이 아프시기 시작하면서 부엌에서 요리하기 어려워지셨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요리책>은 서툰 글씨로 서툴지만 반듯하게 요리법을 적은 책입니다. 이제는 맛볼 수 없는 할머니의 요리와 그 추억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요.


한 접시의 위로는 신기합니다. 어떤 음식은 수많은 얼굴을 가집니다.

그건 할머니의 사랑이기도 하고, 추억이기도 하고, 위로이기도 합니다.


손녀의 마음을 데운 할머니의 요리법을

할머니의 글씨로, 손녀의 글과 그림으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할머니의 요리책>은 독립 출판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책인데요, 많은 사랑을 받는다는 건, 다 이유가 있는가 봅니다. 누군가의 기억을 읽으며 나의 기억을 걷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책을 좋아합니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것 같으니까요. 완전히 다른 기억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삶이란 모두 다 다른 모양이지만, 어쩌면, 같은 결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최윤건 할머니와 박린 손녀가 만들어 낸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저의 할머니를 떠올립니다. 할머니가 차려주셨던 밥상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홀로 뭉클함과 그리움을 느낍니다.


책을 읽으며 할머니께 전화를 오래 걸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할머니가 해주시던 나물 반찬, 정말 좋아했는데. 맛있었는데. 따듯했는데. 오늘 밤엔 오랜만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보아야겠습니다. 할머니는 전화를 받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시겠죠. ‘야야, 니 밥은 뭇나? 배고프면 와라~!’ 하고요.




이상하게 할머니가 발음하시는 '밥'은

왠지 '사랑한다'라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따듯한 한 그릇의 위로가 필요한 당신께.

오늘 밤, 이 책을 추천합니다 :)







밤에 읽는 책

마음이 쓸쓸한 어느 밤,

침대에 앉아 읽기 좋은 따듯한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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