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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책이름 Nov 02. 2020

'그래서' 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출할 때 1.8리터짜리 생수 두 병을 언제나 지니고 다녔다.침이나오지 않아 늘 물을 마시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몸은 퉁퉁 부어올라 체중이 난데없이 10킬로나 불어났다.옷이 맞지 않는 것은 그렇다 쳐도 신발까지 들어가지 않아 커다란 슬리퍼를 사서 신고 다녔다.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했다.수치상으로 아직 아무 이상이 없었다.한의원에 가니 심장에 화기가 가득해 이미 신장이 많이 다친 것 같다고 했다. 어느 병원에서도 딱히 나를 치료해내지 못했다.

그렇게 의사들을 찾아 병원들을 돌다가 스위스 대체요법으로 진료하시는 분을 소개받았는데 그분이 내팔에서 직접 피를 뽑으셨다. 무심히 그분이 뽑는 피를 보고 있었는데 내 왼쪽 정맥에서 검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때 피를 뽑다 말고 그분이 움찔하셨다. 의사가 놀라는 것도 놀라왔지만 그 피의 색을 보고 나도 놀랐다. 

검은피……

가끔 체했을때 엄지 손가락을 따면 나오던 그렇게 검은 피. 검은 피는 경고였다. 설사 현재 신장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다고 해도 곧 신장이 망가질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내가 묻자 의사가 대답했다.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나는 웃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나요? 그런 약이 있나요? 선생님.” 

내가 비꼬며 말하자, 의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본인 생각에 고통은 내부의 것인가요? 외부의 것인가요?” 

나는 비명을 지르듯이 대답했다. 

“저는 잘못이 없어요. 모든 것이 외부로부터 왔어요."

당연하지. 난 착하고 올바른데 세상이 악하고 내게 못되게 굴었던 것이었으니까. 그때까지 나는 그랬다. 

그러자 의사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러면 돌파하세요.그러지 않으면…정말 큰일납니다.” 

내가 다시 물었다. 

“돌파를……하라구요?”

의사가대답했다.

“네, 돌파. 밀고 넘어가 버리세요.”


......


그무렵, 어떤 분이 내게 말씀하셨다. 

“한번 이렇게 해볼래요?”

밤새 울어서 비둘기처럼 부은 눈으로 내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대답했다. 

“그래서, 라고 하지 말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요?”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_
공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11p



이유없이 몸이 아프던 때가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곳에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서 병명을 진단받은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든 곳이 아픈 것 같은.


거기에 이유를 하나하나 대자면 두 손 두 발이 모자랄 정도였고, 이유가 없다고 하면 또 한 가지 이유도 댈 수 없는. 사람들은 그런 걸 보고 마음 속이 곪는 거라고들 하죠.


회사 사람부터, 친구, 가족, 길가는 사람에게서까지 이유를 찾다 찾다, 어느 순간 나 자신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나면 그 때부터는 답이 없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에 나 혼자 던져진 것 같고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아져요.


아무리 적당한 이유를 갖다 붙여도 해결되지 않아요.


아무리 열심히 이유를 찾아내도 

그 이유 뒤에 "그래서" 라고 말하는 순간 바뀌는 건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럴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말하면 

스스로를 전복하는 힘이 생깁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생각에도 힘이 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가지고,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행복하기도 하고,

지난 날에는 몰랐던 기쁨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끔 맨 몸으로 저 ‘진실한 아픔’을 온몸으로 껴안은 채 생의 한 모퉁이를 돌아야 한다. 

나는 이제는 안다. 고통만이. 아니 다시 말해 고통의 정직한 응시 혹은 직면만이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언덕길을 오를 연습을 하게 한다. 언덕길 올라 뭐하냐고? 혹시 1층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2층에서는 보이는 경험을 한 적이 있으신지, 3층에 가면 더 잘보이고 10층쯤 올라가면 더 보인다. 더 보인다는 것은 우리에게 그만큼 생각의 여유를 주고 여유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_
공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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