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책이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책이름 Nov 10. 2020

평범한 듯 특별한 오늘의 기분은 카레

No curry no life

이미지 출처 : 『오늘의 기분은 카레』노래. 위즈덤하우스


“오늘 공기 좋다.” 


공기 좋다는 말.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일에 익숙해진 뒤로는 ‘좋은 공기’ 하면 산뜻한 공기를 먼저 떠올린다. 물론 기분을 담은 훈훈한 공기나 차분한 공기도 있다. 공기를 꾸미는 말은 끝이 없을 듯 다양하지만, 공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나는 카레를 먼저 떠올린다. 


몇 년 전 초겨울, 동료가 회사 근처에 새로운 식당이 생겼다고 알려줬다. 이때만 해도 누가 내게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보면, 내 선택은 ‘아무거나’였다. 딱히 좋아하는 게 없었다. 음식이든 뭐든 말이다. 그러니 회사 주변에 어떤 식당이 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점심마다 별생각 없이 배를 채웠다. 공기식당의 카레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큰길에서 안쪽 좁은 길로 향하면 ‘이런 곳에 가게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만한 곳에 공기식당이 있었다. 처음에는 카레보다는 정식을 먹었다. 공기식당에는 매일 다른 카레 한두 가지와 일본식 정식 메뉴 하나가 있었다. 카레 맛집이라고 해야 할지, 정식 맛집이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로 음식이 다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아무거나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줄었다. 카레를 먹을까 정식을 먹을까. 두 음식을 두고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별생각 없이 배를 채우던 시간이 조금은 중요해졌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공기식당에 간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을까. 계산대에 놓인 명함 한 장을 집었다. 


‘No Curry No Life.’ 


‘카레 없이는 못 산다니. 심오하네. 카레가 뭐라고.’ 공기식당 명함에 적힌 문구를 보며 생각했다. 후퇴 따위는 없어 보이는 자신감 넘치는 문구였다. 믿음이 생겼다. ‘카레를 더 먹어봐야지’ 하는 마음이 싹텄다. 공기식당 카레를 천천히 더 자주 찾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 『오늘의 기분은  카레』노래. 위즈덤하우스


처음엔 주로 버터치킨 커리를 만났다. 파란 띠를 두른 넓은 접시를 언덕처럼 봉긋 솟은 새하얀 밥이 2할, 연주황의 커리 소스가 8할을 메운다. 밥과 소스에서 모락모락 김이 오른다. 식당 한쪽 조그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처럼 천천히, 부드럽게 따듯한 공기가 식당을 채운다. 살짝 매콤한 맛을 달래주는 견과류 퓌레의 부드러움과 토마토의 감칠맛. 그동안 맛본 카레와는 사뭇 다른 향이 접시에 담겼다. 인도 커리 식당에서 느낀 맛과도 달랐다. 


공기식당 버터치킨 커리만의 매력에 서서히 물들었다. 

점점 카레라는 음식에 마음이 끌렸다. 버터치킨 커리 말고도 매일 다른 카레가 나왔다. 콩비지 찌개와 식감이 비슷한 담백한 채소 카레, 다진 고기가 들어간 소스를 졸여 국물이 없지만 카레라고 불리는 드라이 키마 카레, 달큰하고 칼칼한 맛이 신선한 채소와 어울리는 치킨그린 커리, 매콤함과 토마토의 감칠맛이 도드라지는 해물 커리, 사흘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 만들어지는 구라파(유럽풍) 카레 등. 조금씩 얼굴을 바꾸는 카레가 신기했다. 새로운 만남이 기다려졌다. 토마토치킨 커리, 일본식 포크 커리, 어니언포크 커리, 케라라치킨 커리(은은한 코코넛 향이 매력적인 남인도풍 치킨 커리다), 가츠 카레, 새우 커리, 고등어 커리, 단호박 커리, 레드핫포크 커리 등 지금도 새로운 카레가 속속 등장한다. 


(중략)


작고 확실한 행복을 찾았다. 카레가 좋다. 


- 『오늘의 기분은 카레』글 그림 노래/  23p _ 천천히 채우는 마음, 버터치킨 커리






어릴 때 엄마가 카레를 만드는 날이면 저에게는 항상 지정된 역할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감자와 당근 양파를 깍둑 썰어서 고기를 볶은 팬에 넣어 함께 달달 볶고 있으면 옆에 있다가 카레를 곱게 물에 개어서 팬에 넣기. 그리고 엄마가 다른 반찬을 만드는 동안 저는 카레 옆을 지키며 야채들이 팬 바닥에 눌러붓지 않게 나무 주걱으로 둥글게 둥글게 잘 저어주기.


카레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서 국 같던 카레가 점점 점성을 띄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갓 지은 따끈한 밥에 한 주걱 가득 퍼서 슥슥 비벼먹고 싶어져서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납니다.


한 달에 한 두 번은 먹은 것 같지만 카레를 해 먹는 날은 특별한 날이었답니다.


"엄마 오늘도 카레 해주면 안돼?"


"지난 주에 먹었는데 또 먹고 싶어? 우리 딸이 먹고 싶다고 하면 해줘야지 그럼 .

얼른 요 앞 슈퍼 가서 감자랑 당근 좀 사오렴"


엄마가 끓여주던 개나리처럼 샛노란 오뚜기 카레가 몸에 좋은 강황 카레로 바뀌고 자취방에서 혼자 고체 카레를 끓여먹기까지. 반찬이 없을 때도 해 먹고 그냥 카레가 먹고 싶은 날도 해 먹고 입맛이 없을 때도 해 먹던 카레. 카레를 떠올리면 왠지 카레가 끓으면서 나는 따뜻한 김과 집 안 가득 퍼지는 카레향에 텅 빈 마음이 가득 가득 차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카레 같은 존재가 있나요?


혹시 <오늘의 기분은 카레> 를 쓴 노래 작가처럼 매일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카레에, 

카레의 온기와 매력에 푹 빠져 계신가요?




카레는 하나의 음식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확실하게 좋아하는 무언가가 마음 한구석을 채웠을 때 삶의 작은 변화를 느꼈습니다. 누가 “뭐 먹을래?” 하고 물으면, 잠시 고민하다 “아무거나”라고 대답할 때와는 다른 기분입니다. 

_ 『오늘의 기분은 카레』



https://bit.ly/35gdmB4

_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