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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책이름 Oct 30. 2020

일에 꼭 마음까지 담아야 하나요?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근을 하면 쓰레기통은 항상 비워져있고 화장실 세면대는 물기 없이 깨끗하고 바닥은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이 깨끗한 걸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으신가요.

얼핏 사람들 눈에는 저절로 매일 리셋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 눈에 보이는 깨끗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 행하는 노동의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급여를 받고 일로 행하는 청소란 것은 인풋과 아웃풋이 정확하게 눈에 보이는 명확한 일이기도 합니다.


 


마침 게임 속에서 영업 사원이 고객 다섯 명을 만난다고 다섯 번 모두 판매가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청소노동자가 변기 다섯 개를 닦으면 변기 다섯 개가 모두 깨끗해진다. 이렇게 명확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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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28p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가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이 일이 꼭 필요한 일인가, 이 일을 한다고 뭐가 바뀌지?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특히 결과가 눈에 명확한 일이 아닐 경우엔 더 그렇죠.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회사에 속해서 하는 일은 대부분 어떤 거대한 프로젝트의 분업화된 부품 중 일부 같아서 이 일 하나만으로는 명확한 결과를 확인하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나무는 열심히 심고 있는데 도통 숲은 보이지가 않아요.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는 연세대 음대를 졸업하고 한양대 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한 연극배우로,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 작가로 등단해 극작가로, 요가 강사로도 활동한 최성연 작가가 50대에 들어서 일 년 동안 미화원으로 일하면서 그 경험을 기록한 책입니다. 


청소 노동자의 생활이 기대했던 대로 심플 라이프는 아니었지만, 이 일을 통해서 여행 경비로 쓰고자 한 돈의 일부를 모을 수 있었고 새로운 도전은 그 동안 본인이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고 하는데요.




직장인들이 예상하는 평균 퇴직 연령이 20대 49.5세, 30대 48.6세, 40대 이상 51.6세로 법정 퇴직 연령이 60세에 훨씬 못 미치는 시대. 평균 수명은 점점 늘어가는데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기대 연령은 점점 낮아지는 시대. 여러분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몇 살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스스로의 인생을 생각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때 일이란 것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 그래서 그런지 청소 노동자로 일해본 적도 없는데도 이 책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속 저자의 경험들이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노동은 노동일 뿐



단순한 일을 하며 노동의 가치와 보람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야무진 꿈이었다. ‘노동은 노동일 뿐’ 마음 주지 말고 정 주지 말아야 한다. 일을 하는 동안 나는 끊임없이 노동으로부터 나를 소외시킨다. 오늘도 나는 수질 오염을 걱정하면서 변기에 독한 세정제를 듬뿍 뿌린다. 변기에 말라붙은 똥 찌꺼기를 빨리 닦아내려면 그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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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39p


메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에 의하면 4단계가 자기존중의 욕구 그리고 최상위 단계가 자아 실현의 욕구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일을 통해 자아 실현을 꿈꾸고 또 좌절하는 것을 반복합니다. "노동은 노동일 뿐" 일하는 동안 끊임없이 노동으로부터 나를 소외시키는 경험은 직장인이라면 숱하게 경험하고 있지 않을까요. 가치관과 반대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함은 물론이고 일단 일 자체를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매일 아침 출근을 하고 있으니까요. 




천천히 일하면 안될까요?


산업 혁명 이후 노동의 속도는 생산량과 직결되어 높이 평가되어 왔다. 빠르게 일한다는 건 숙련되었다는 뜻이고 일 잘한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패러다임을 가져올 때도 되지 않았을까? 빠른 속도는 사람을 아프게 하고 세상을 병들게 한다. 


누군가를 배려할 때 우리는 결코 빨리하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길이 막혀 늦는다는 친구에게는 ‘서두르지 말고 조심해서 와’라고 말하고, 걸음마가 서툰 아기에게는 ‘천천히 가자’라고 말한다. 함께 밥상에 앉은 사람에게 건네는 ‘천천히 많이 먹어’라는 말에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천천히’는 가장 따뜻한 사랑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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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110p




손이 빠른 사람. 일 잘하는 사람에게 흔히들 칭찬처럼 하는 말인데요. 우리는 왜 빨리 빨리 일해야 할까요. 빨리 빨리 시간 내에 많이 일하는 것은 고용주 입장에서의 미덕 같은 것이겠죠. 정해진 시간 내 정해진 임금 내에서 더 많은 일을 해내는 것. 어쩔 땐 회사에서 요구하는 그 이상을 해내기 위해서 정말 머리 풀고 일해본 경험, 있지 않으신가요?

저성장 시대, 모든 게 포화상태, 제로 웨이스트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제로 웨이스트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건에만 해당할까요? 눈에 보이는 물건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의 것도 포함해서 빨리 빨리 많이 많이보다는 의미 있는 일을 함께 해 나가는 게 중요한 것 아닐까요(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공급해야 하는 차원에서 본다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지만요)





무슨 일에서든 뒤처지거나 못하는 사람을 탓하기는 쉬워도, 앞장서서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을 보고 뭐라 하기는 힘든 법이다. 하지만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뒤처지는 사람만큼이나 앞서는 사람도 동료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가 옳다고 결과가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하는 게 항상 선한 길도 아닌 것이다. ‘함께 잘하는 것’에 비하면 ‘혼자 잘하는 것’이 그나마 쉬운 것 아닐까? 함께 잘 살기 위한 지혜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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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126p





마음은 낮추지 않았지만 몸은 낮추었습니다.



단골 미장원에 가서 미화원으로 일하게 되었다고 하니, 원장 님이 말했다. “낮아지는 기회로 삼으세요.” 혹시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까? 내가 자발적으로 낮아졌다고 나를 격려 하고 응원한 걸까? 그건 오해다. 나는 낮아지고 싶지도 않았고 낮출 필요도 못 느꼈다. 실제로 나는 내 마음을 조금도 낮추지 않았다. 누구보다 청소를 잘 한다는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고, 뭐든 대충 지나치지 못하는 프로불편러의 까칠함도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다만 몸은 저절로 낮추게 되었다. 구석구석에 있는 먼지를 쓸어 내려면 몸을 낮춰야 했고, 변기를 닦으려면 무릎을 꿇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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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168p



일하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갖추어야 할 자세란 이런 게 아닐까요.


몸은 낮추되 마음은 낮추지 않을 것.

회사가 아닌 나 스스로가 나의 자부심이 될 것.





https://bit.ly/2Ghglz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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