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RAUM Jun 11. 2018

나의 일

좋아하지만 때로는 숨기고 싶은 것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전혀 모르고 있던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외부에 내 직업을 오픈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라는 반문이 돌아왔을 때 내가 가장 먼저(또는 흔히, 주로) 하는 대답은 '선생님 같다'는 말이 듣기 싫다는 것이다. '선생님 같다'는 말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가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이 내가 삶에서 지향하는 바와 매우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개인의 가치관이나 경험에 기인할 것이다. 나로 한정했을 때 이 말은 주로 내가 '교사가 되어' 보고 겪은 동료 교사의 이미지 안에서 형성되었다. 이 이미지가 나에게 부정적인 뉘앙스를 선사한다는 건 어쩌면 나에겐 아주 큰 불행이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동종업계 사람들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는 이유는 다수의 직장인으로부터 '방학'이란 단어와 함께 매도되는 순간들이 싫다는 것이다. '너흰 방학 때도 쉬면서 돈 받잖아', '그래도 너희는 방학이 있잖아'라는 폭력적인 말 앞에서 이 업무가 가지는 버거움은 졸지에 당연히 감수해야만 하는 다소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기도 하고, 배부른 자가 부리는 투정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교사가 방학 있고, 방학 때도 월급 나온다는 걸 너는 몰랐니? 네가 교사되겠다는 거 내가 언제 빼앗았니?'라고 묻고 싶지만 애써 목 뒤로 삼킨다. '나는 애초에 1년의 모든 평일을 일로 보낼 수 없고, 야근이 일상인 삶을 상상할 수 없어. 내 것이 아닌 것을 위해 일할 수 없고, 변화가 없는 환경은 숨 막히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것도 성격상 못해. 나는 내 성향을 고려한 선택지 중 내가 가장 재밌어하고 동시에 잘할 자신이 있는 일을 선택한 거고, 마찬가지로 너는 너 나름의 이유로 그 일을 선택한 걸 텐데 왜 마치 나만 엄청난 특권을 누리는 것처럼 후려쳐?'라는 말 역시 목 뒤로 삼킨다.


 '수업 안 할 땐 뭐해?'라는 내 기준에서는 다소 어처구니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닌 질문을 받는 순간들도 껄끄럽다. 나는 철밥통 공무원이지만 이 일보다 더 재밌으면서 동시에 잘할 자신이 있는 일이 생기면 언제든 이 직업을 때려치울 수 있다는 말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보다 공허한 침묵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경우가 더 잦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고, 때로는 나를 분노케 하는 표현은 '여자가 하기 최고의 직업'이라는 말이다.


 악의가 없는 이 말을 들을 때면 대꾸할 힘조차 잃는다. 비꼬는 의도라면 "그 말의 저의가 뭐죠?"라고 쳐내기라도 하지, 악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진심으로 저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주로 나보다 연장자) 앞에서는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다. 나는 저 말이 싫다.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눈을 씻고 뒤져봐도 저 말 속엔 없다.


 다만 설령 선의로 한 말일지라도 묻고 싶다.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여자가 하기 최고의 직업'이라는 거냐고. 그 이유들 중 정말 오롯하게 '여자인 나'를 위한 게 있냐고. 오히려 현장에서 일하는 나는 내가 '남자'였더라면 좀 더 수월하게 일했겠단 생각이 더 자주 드는데 어떠냐고. 그 말은 좀 더 벗겨보면 '여자'가 아닌 '주부' 또는 '엄마'가 하기 좋은 직업이란 말 아니냐고.


 하지만 그런 말이 너무나도 맞아떨어지게 교무실엔 동료 '교사'가 아닌 공간만 공유하는 '주부'이자 '엄마'인 사람들이 있다. 아주 소수지만 수업이 없을 땐 놀고먹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이성이라는 게 있는 인간인데 저럴 수도 있구나 싶은 사람도 있다. 어디 가서 동료라고 얘기하기 수치스러운 사람도 있다.


 단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어느 직업군을 가도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단지 여전히 조금은 촌스러워서 '어디에나 있는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여기에서까지 있다는 게 못 견디겠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런 '못 견디겠음'의 짜증은 고스란히 '선생님 같다'라는 표현 아래 쌓여, 그 말이 나에게 주는 부정적인 인상만 공고히 한다.


 나는 아직까지 '교사로서' 저렇게 늙고 싶단 인상을 받은 선배교사가 없다. 나의 기준과 나의 직장 중 뭐가 유별난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일하는 공간이 시궁창이란 뜻은 아니다. 나의 동료 교사 모두가 나쁘다는 것도 물론 아니다.


  힘들게 들어온 만큼 기왕이면 이 일을 오래도록 즐겁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박차고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등 떠밀려 나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동시에 그게 언제든 이 일보다 재미있고, 잘할 자신이 있는 새로운 일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도 늘 품고 있다.


 내가 이 판에 발을 들였을 때 나를 너무나도 잘 아는 누군가는 '너가 몇 년이나 할지 궁금하다'고 했었다. 그때의 나 역시 그게 궁금했다. 지금도 궁금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은 나의 숨통을 조이는 것과 나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이 공존한다. 그 두 가지가 공존하기에 나는 이 일을 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이 일이 재밌다. 학부모의 폭언과, 동료 교사의 진상짓과, 학생의 치기어림과, 이유와 목적을 알 수 없는 쓸데없는 각종 잡무들이 쏟아져도 버틸 수 있다. 참 감사하게도 진심을 다해 나를 대하는 학부모와, 든든한 편이 되어주는 아이들과, 퇴근 후 서로의 웃음과 짜증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 교사와, 그 누구의 방해 없이 오롯하게 내가 가꿀 수 있는 나만의 수업과 나의 학급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작은 소망이 있다면 부정하던 것들이 나도 모르는 새에 나를 잠식해 그것들로 점철된 보잘것없는 일개 교사가 되지 않는 것, 그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