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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UM Aug 05. 2019

<기생충>, 봉준호가 바라보는 세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그대로 펼쳐놓은 것



기괴하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마더'의 모성애

1. <마더>에서 엄마는 본의 아니게 진태와 미나의 정사씬을 훔쳐본다. 어두컴컴한 장롱에 갇혀 타인의 은밀한 행위를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그 순간 성적 긴장감과 묘한 수치심이 스크린 너머로 범람한다. <기생충>에서 이 감정선은 극대화된다. '기택'은 '엄마'와 달리 혼자가 아니다. 옆에 자식 새끼가 둘이나 딸려 있다. 셋은 똑같이 비좁고 어두운 그 공간에 몸을 욱여 넣고 쥐죽은 듯 숨어 있다. '착하다'던 그들은 기택에 대해 '냄새'를 운운하며 선을 넘는 발언을 내뱉는다. 하지만 이 발언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부부 간의 사적인 대화이기 때문이다. 다만 들어선 안 될 사람들이 듣는다. 당사자와 함께 그 자식들까지 귀를 열고 듣고 있다. 둘이 몸을 섞는 순간까지 그 셋의 귀는 계속 해서 열려 있다. 그 상황에서의 부모로서 느끼는 수치심, 비참함, 절망감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2. 기택은 기우에게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어쩌면 부모가 자식에게 하기엔 영 떨떠름한 말을 조언하듯 건넨다. 기택이 그렇게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좌절된 기택의 계획'들이 있었을까.



3. 기택네 네 식구는 모두 똑부러지지만 그 중에서 가장 능력자는 '기정'이다. 기정의 위조 문서가 없었더라면 아무리 기우가 패기("아버지 저는 이게 위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를 부렸더라도 '박사장네 입성'은 어려웠을 거다. '더 케어'의 전화 상담원 역시 기정이 자처한다. 기택, 기우, 충숙은 모두 기존의 것이 부재함에 따라 그 자리를 꿰찼지만 기정은 그렇지 않다. 빈자리가 아닌 없던 자리를 만들어서 꿰찬다.


3-1. 기정은 기택네 가족 중 유일하게 박사장네 집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기우는 욕조에 있던 기정의 모습을 상기하며 '우리'와 달리 기정은 이곳에 정말 '잘 어울린다' 말한다. 이어 만약을 가정하며 불가능을 상상하는 기우에게 기정은 똑부러지게 일침한다. 어떤 방이 제일 좋은지는 일단 '살게 되고 나서' 생각하겠다고.


3-2. 묘한 웃음을 지으며 '이럴 때 민혁이라면 어땠을까?' 묻는 기우에게 '민혁오빠는 애초에 이런 일이 안 생겼을 것'이라 소리치는 것 역시 기정이다.


3-3. 문제는 그렇게 현실적이었던 기정만이 유일하게 불가능한 가능성마저 송두리 빼앗긴다는 것. 넷 중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유능했던 인물이 죽는다는 점에서 이 죽음은 더 비극적이다. 기정 없는 기택네의 삶은 분명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4. 기택은 그래도 반지하라며, 지하보단 반지하가 낫다 여긴다. 하지만 기택이 과연 그 반지하에서 충숙과 성욕을 풀었을까. 잘 상상되지 않는다. 웃긴 건 기택이 본인보다 아래라 믿었던 지하의 근세는 충실히 성욕도 풀고 있다는 거다. 과연 누가 더 아래인가.




5. 끝없이 아래로 내리 꽂는 계단 앞에서 기우는 머뭇거린다. 그동안은 모르지 않았을까. 내가 얼마나 아래에 있었는지, 그래도 반은 지상이라 자위하던 그 공간이, 그리고 그런 생각이 얼마나 하찮았는지. 윗 공기를 맛 보고 나니 그제서야 보이는 거다. 분명 한참을 내려왔는데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그 계단이 까마득했겠지. 뒤이어 공포감에 휩싸였겠지. 내가 이렇게나 아래에 있었구나. 그런 기우의 발을 어마어마한 폭우가 떠민다. 너의 자리는 저기라고. 너는 내려가야만 한다고. 자연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6. 기우는 절대로 그 집을 사지 못할 것(봉피셜 547년 걸림)이다. 평생 고생해도 그 집 앞마당도 못 살 걸. 소통할 수 없는 편지는 그래서 슬프다.



7. 봉준호의 영화는 헛된 희망따위 주지 않는다. 타자화된 대상에게 어쭙잖은 희망을 주는 것, 그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례한가. 그저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그것들을 스크린에 펼칠 뿐이다. <기생충>은 이러한 그의 장점이 신랄하게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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