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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UM Jun 18. 2018

<여교사>, 분명한 선악은 지루해.

감독님 어찌 이러실 수 있어요.

나 좀 잘 봐줘. 언니라고 불러도 돼.

 혜영의 눈치를 보는 동료 교사들에게 "쟤가 무서워요?"라고 쏘아붙이던 여자는 종국에는 모든 학생들이 지켜보는 허허벌판에서 누군지 기억도 안 난다던 혜영에게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라고 한다. 교직에는 꿈도 없는 본인보다 나이도 어리고, 예쁘고, 빽도 있는 그녀에게 자기는 아직 이 학교를 떠나기 싫다며 '잘 봐달라' 애원한다. 무릎을 꿇는다. 괜찮다는 상대 앞에서 이 이상 비참할 수 없을 것처럼 '엉엉' 운다.

 효주는 가진 게 없다. 가장 예쁘던 청춘을 다 바쳤던 남자친구는 밥 한 끼 스스로 해 먹지 못한다. 그는 기껏 차려준 밥상 앞에서 국이 없다 핀잔한다. 그는 너무나도 피곤한 효주와 어물쩡 섹스를 하려 한다. 미래의 ㅁ도 없으면서 입만 살아서 더 한심하다. 지 발로 나갈 땐 언제고, 자기가 '너무 늦었다'며 다시 기어 와서 자기보다 어린 남자와 있는 구여친에게 '미친년, 씨발년' 소리를 서슴없이 한다.개새끼

 효주는 가진 게 없다. 급작스레 자리를 비운 정교사의 담임 업무는 거절 한 번 못하고 수락해야만 하고, 정교사에게 시키기는 뭐한 수행평가 채점은 급하게 끝내야만 한다. 일하는 동안 임해선 안 된다는 추가 계약서를 군말 없이 작성해야 ,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정교사 채용 소식엔 전전긍긍한다. 학생에겐 '진짜 선생도 아닌 게'라는 소리를 면전에서 듣는다. 물론 그 학생은 반성은커녕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효주를 지나간다.

 효주는 무기력하다. 화장은 늘 똑같고, 색만 바꿔 입는 블라우스와 슬랙스룩은 관객인 내가 다 지겹다. 효주가 하는 수업 역시 기계적이고 단조롭다.

 영화의 초반부는 순진무구한, 악의가 없어서 더 끔찍한 이사장 딸의 '선'을 가진 것 없는 기간제에게 들이밀며 효주가 겪는 계급 차이, 그 안의 열등감과 절망, 비참함, 수치스러움을 펼친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자리를 위협하는 뉴페이스가 왔는데 심지어 나보다 어려. 예뻐. 어리고 예쁜 것도 짜증 나는데 심지어 이사장 딸이야. 아니 더 끔찍한 건 난 기억도 안 나는데 자꾸 '선배'라며 친한 척하는 거야. 얘 너무 꼴 보기 싫은데 웬 걸. 우리 반 남자애랑 체육관에서 '여교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했네? 야 너 딱 걸렸다. 넌 이제 내 손 안에 있어.


넌 이제 내 손 안에 있어!


 자기가 다 이겼다고 생각한 게임에서 효주는 처참하게 패배한다. 질투에서 시작 행위의 틈에 사랑이 섞였고, 틈을 비집고 들어온 그 감정이 일방이 아닌 쌍방이라 생각했기에 더 헌신했다. 문제는 손에 모든 것이 들어왔다고 생각한 순간 이유모를 스산함에 손을 펴보니 손바닥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움츠려 봐도 잡히는 게 없다. 오히려 그 손엔 자기 스스로에 대한 더한 비참함과 배신감, 분노, 증오가 얼룩진 피만 가득했다.

 이 영화의 문제는 이 모든 걸 너무 촌스럽게 보여준다는 거다. 촌스럽고, 뻔하고, 유치해서 조악하다. 31살이나 먹은 혜영은 '자기가 너무 어려서 몰랐다'는 철없는 소리만 다. 얘는 30년 동안 뭘 한 걸까. 하긴 남고에 볼륨감 넘치는 타이트한 민소매 상의에 나풀나풀 플레어 원피스를 입는 것부터가 생각이 없는 거긴 하다.

 자신의 신체 일부를 찍은 남학생에게 '이번 한 번만 봐주는고양!'하며 오히려 도와주려던 효주를 꽉 막힌 오지라퍼로 후려치는 모습만 봐도 너무 어리다.

 문제는 혜영이 진짜 순수해서 그런 거면 또 모르겠는데 순수에 닿아 있는 인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재하 같은 젊은 애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잠자리 할 때나 좋은 상대라고, 적당히 우쭈쭈 하며 놀아주면 된다고 말하는 혜영을 누가 온실 속의 순수한 화초로 볼 수 있을까.

 더불어 초반에 너무 전면에 내세워 보는 사람 오그라들게 하던 기간제의 비참한 처우가 후반부에선 핏덩이 남고생 두고 두 여자가 벌이는 신경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감정싸움으로 변질되는 것 그렇다.


 효주 주변에는 잿빛만 그득그득, 혜영 주변에는 따사로운 볕만 그득그득한 것도 너무 적나라해서 당황스럽다. 심지어 옷 색깔, 화장 스타일도 극과 극이다. 맙소사. 화장 한 번 안 하고, 치마 한 번 안 입고, 머리는 매일 질끈 묶던 효주가 재하랑 몸을 섞은 뒤 치마를 입고, 머리를 풀고, 화장을 하는 것도 너무 뻔해서 촌스럽다.

 격정의 순간에서 '야 나 이제 시작할 거니까 잔뜩 기대해라잉!' 식의 격정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도 좀 유치한 것 같다(=유치하다).

 근데 심지어 효주를 끝까지 몰고 가. 관객 여러분? 제가 지금부터 비참의 끝이 뭔지 보여줄게요 하며, 교사로서도 여자로서도 아니 그전에 한 인간으로서도 견디기 힘든 나락으로 계속해서 몰고 간다. 감독님 너 설마 그렇게까지 할 건 아니지? 생각하는데 진짜 그렇게 한다.

 두 인물을 모든 면에서 양극단에 두고 계속 휘몰아치니 긴장도 없다.

 김하늘이 인생 연기를 펼쳤다는 평이 많던데, 나에겐 김하늘의 연기도 특별할 것 없었다. 김도진과 헤어진 서이수가 학교를 옮기며 과목도 바꾼 것 같았다. 이희준은 <최악의 하루>에 이어 경악스러울 정도로 병신 같은 모습을 2연타로 보여주니 그냥 원래 그런 사람처럼 보인다(어흑). 갑자기 운동장으로 찾아와 네가 일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고, '학교 식당'에서 밥 먹자고 할 때는 진짜 믿을 수 없어 육성으로 터졌다. 심지어 효주가 준 돈, 던져버릴 줄 알았는데 던지지도 않아. 화내면서 돈 겁나 꼭 쥐고 있어(돈 최고, 돈 만세).

 이 영화에서 마음에 들었던 건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효주의 군더더기 없는 슬랙스 핏(그래서 맨날 슬랙스만 입나?)이었고, 다른 하나는 끓는 물을 부어버리는 효주의 행위와 그때 효주의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재하 학원도 보내고, 양복도 사주고, 비싼 발레 공연도 보여준 거 보면 효주는 재하를 진심으로 사랑한 거다. 이건 선생이 제자에게 베푸는 호의일 수 없다.


 


ps. 저 김태용 감독님 좋아합니다.

<거인>은 진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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