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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자가 된 구직자의 마음

by 미쉘

3월 15일 졸업식을 했다.

학교 졸업식이 아닌 멘탈 세라피 퇴원식이라 여기는 나에게 졸업식 참석은 크나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취업을 하기 전에는 '졸업식'이란 단어에 시큰둥했었다.


내 안의 나를 꺼내준 디자인 학교에서의 날들은 공부를 넘어 내 삶과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다. 스스로 정한 한계를 몇 번이고 넘어왔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을 잘 견뎌내었다. 이 사실 만으로도 나는 이날을 축하해야 하며, 충분한 자격이 있다.


어쩌면 내 인생 최고의 날일지 모르는 이날의 축복을 '구직'이라는 단어의 틀에 갇혀 그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구직'은 현재 나에게 있어서의 한계였고, 그것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넘지 못할 산이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4년간의 그 의미 있었던 순간들을 모조리 무의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어디가 되었든, 무슨 일을 하든 구직자라는 타이틀에서 잠시 벗어났다.

졸업식에 가서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음에 안심을 했다.

(역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들과 시선들에 아직도 의식을 많이 하는 나를 보게 된다.)


졸업식날.

취업자가 된 구직자는 행복했다.

이날을 취업자로서 맞이 한 사실에, 마음 편한 졸업식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되었다.

나는 사람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먼저 다가갔다.

꽃다발을 들고 가족들과 사진을 찍고, 비 오는 날 졸업자 거리행진에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했다.


자신감이었다.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 바로 그 자신감.


하지만 어쩌면 이날은 자신감보다는 오만함이었을지 모른다.

취업에 대한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여러 번 반복하는 내 모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직 미 취업 상태였으므로 나는 그들을 배려하여, 하얀 치아를 적게 드러냈었어야 했다.


졸업식이 끝났고, 축제는 끝났다.

취업자는 여전히 구직자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버릇이 된 구직자 사이트를 매일매일 드나들고, 혹시 취업이 불발될까 노심초사하다가, 계약서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분명 이끌어가는 삶을 살기로 했는데, 이 형상은 이끌려가는 삶을 사는 형상이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평생 구직자일지 모른다.

내 인생에 주체자가 되지 않는 한평생 구직자라는 타이틀에 갇혀, 누군가 나를 데려가 주기를 노심초사하는 그런 구직자.. 지금의 내 모습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계약서를 덮고, 다이어리를 펼쳤다.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을 적어 내려갔다.

나의 장점, 분발해야 할 점, 회사에 들어가서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공부, 뷰티 마케팅 분야에 대한 리서치, 디지털 마케팅 트렌드 공부, 영어 연습, 스마트 룩 쇼핑......


자신의 비즈니스를 하고, 프리랜서를 하고, 창작을 하는 것만이 구직자의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구직을 할 때 조금은 더 파트너십을 마인드를 가져야 할 것 같다. 이력서와 커버레터로 나의 이력과 능력을 어필하고, 포트폴리오로 자신을 잘 드러낸다. 그것으로 구직자는 파트너를 구하는 광고를 내는 것이다. "내 능력 살사람!" 하고 말이다.

적절한 파트너가 나의 능력을 기대한다면 인터뷰 요청이 올 것이고, 그에 응한다면 최선을 다해 자신을 어필하는 것, 면접에 붙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잘 디자인하여 표현하는 자리인, 이름하여 셀프 브랜딩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 이후의 결정은 고용인의 손에 있긴 하지만, 이것은 게임과 같은 것. 상대에게 패를 보여 주었으니 그 패를 가질지 말지는 상대가 결정하는 것으로 그는 그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지, 그가 나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번 구직을 활동을 통해 낸 결론은 또 바뀔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능력을 좀 더 알아보는 파트너를 찾아가는 일이 구직이라면 지금처럼 그다지 괴롭지만은 않을 것 같다.



취업이 될 때까지 '구직자 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글을 빨리 마치게 되었다.

취업은 감사하나, 글감이 적어 아쉽다.

위에서도 말했듯. 나는 언제나 구직자 일 것이다. 나의 능력을 펼칠 곳, 나의 약점이 강점이 되는 곳, 좋은 파트너들이 있는 곳, 발전이 있는 곳을 찾아다닐 것이다. 어쩌면 첫 직장이 그곳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이 사회에서 마이너라는 열등감이 사라지는 날,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었으니 이제 되었다는 느낌이 오는 날, 아이들이 다 크고 큰 지출이 잦아드는 날, 책임들이 조금은 줄어드는 날 나는 나를 고용할 것이다. 그때 고용인은 적절한 능력자를 고용한 큰 행운을 얻었다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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