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고기반찬을 좋아한다.
소화기능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철분이 부족할 때면 어지러움증을 달래느라 일부러 고기를 찾아 먹는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사슴고기와 양고기를 더했다.
'고기'라는 말은 죄의식을 없애준다.
채식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음식은 늘 채소들이다.
그러면서도 채식주의자는 되기 싫으며, 고기반찬을 모른 채 할 수 없다.
이중적이라 말할 필요는 없다. 그냥 보통사람들과 같으니까.
보통사람.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왠지 까탈스러울 것 같은 편견이 있다.
그냥 아무거나 먹으면 모든 사람이 편할 것 같은데, 건강에 그리 좋을 것 같지도 않은 채식주의를 선택하는 이유는 ,
'개인이 선택한 외부의 특별한 대우를 누리기 위한 자신만의 의도적 장치'가 아닌가 하는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것은 아마 내가 살고 있는 환경과, 다른 문화를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서 받은 영향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본 채식주의자들의 대부분은 그들만의 법칙 같은 것이 있었다.
요가를 한다.
명상을 한다.
몸에 나는 털을 제거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미를 추구한다.
친환경적이다.
말을 천천히 한다.
책을 읽는다.
모든 이를 평등한 시선으로 대하는 듯한다.
잘 씻지 않는다.
본인이 하고 있는 일과, 삶의 철학이 일치해야 한다.
나는 대부분의 법칙(?)을 존중한다.
대부분을 닮고 싶기도 하다.
보통 마음가짐을 가지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반사람들의 습관들을 다 없애도 자신을 리셋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리셋은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을 읽기 전 '채식주의자'가 충격적이고, 다소 거리감 있게 읽힌다는 독후이야기를 접했다.
나는 그 반대였다.
읽기를 할 때는 작가의 전문가적인 표현능력에 매료가 되었다.
푹 빠졌었고, 한참 동안 멍한 날들을 보내야 했다.
꿈과 현실을 왔다 갔다 했고, 책과 현실을 왔다 갔다 했다.
채식주의자를 읽은 지 두 달이 다되어가지만, 아직도 이 책은 나를 끌어들인다.
등장인물들의 본능과 욕망들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내 저 밑바닥에 있는 것들을 꺼내어 놓았다.
처음 부모가 되었을 때, 갓난아기를 기를 때 '인간의 밑바닥'이 드러나는 순간들이라 했다.
내가 모르는 나의 어떤 그곳을 내 행위를 통해 볼 수 있는 시간. 내 언어를 통해 드러나는 시간.
이 책은 그 기간을 극대화해놓은 것 같다.
우리는. 나는 누구일까.
숨기고싶은 나의 어떤 그곳들을 펼쳐서 늘어놓은 것만 같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