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른 채 뉴질랜드에 이민을 왔습니다.

타락

by 미쉘

비즈니스를 오픈 후 남편은 엄청 바빴다. 남의 나라에서 첫 사업이니 당연했다. 그와 나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흐릿했다. 여기서 모든 것이란 변호사, 회계사와 관련된 법과 돈에 관한 것들을 말한다. 뉴질랜드는 작은 가게를 하나 하더라도 변호사를 통한 서류 작업이 필요하고, 투명한 세금정산을 위해 회계사가 필요하다.


오클랜드나 크라이처치와 같은 한국인 밀집지역에는 한국인 변호사, 회계사들이 많아서 영어 사용을 하지 않고도 한국인 교포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유료) 가게를 오픈 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들었지만, 우린 이곳에 살기로 한 이상 영어사용을 계속적으로 피해서는 안될 것이라 판단했다. 더불어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지역 사람들을 이용해야 손님을 확보하는 광고효과도 날 것이라 생각했다. 법과 돈에 관한 현실적인 문제를 놓고, 물과 기름 과도 같은 우리의 영어를 비즈니스에 사용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물과 기름을 잘 섞이게 하기 위해 비누를 추가하여 흐릿하게나마 섞이게 하였더니, 이제는 이것이 기름인지 물인지 혹은 비눗물인지 모르는 그런 상태와 같았다.


법과 돈문제를 대충 처리하고 나니 이젠 시청이 관할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다. 식당이지만 와인, 맥주와 같은 주류를 식사에 곁들이는 이곳 사람들에 맞춰 술을 팔기로 했고, 점심시간에는 모닝 티와 아프터 눈 티로 늘 커피를 달고 사는 이곳 사람들을 위해 에스프레소도 추가했다. 시청이 허가하는 술을 팔기 위한 라이센스를 공부해서 시험 통과 및 허가를 받아야 했고, 커피를 팔기 위해 안 되는 영어로 교육을 받아야 했다.


시청에서는 우리가 계약한 가게 자리에 식당을 해도 될지 술을 팔아도 될지, 공사상태는 설비기준에 맞는지 등을 살피느라 4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허비했다. 이곳의 느리고 답답한 시스템에 숨이 막혀 돌아가실 지경까지 이르도록 만들었다. 허가에 문제가 생겨서 가게를 오픈하지 못하는 일도 종종 있는 일이라며, 그래도 허가 나기 전까지는 가겟세를 안내도 되도록 계약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나라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스스로 하고 있을 때쯤 드디어 허가가 났다. 느린 시스템에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지만, 사실 노동자의 입장을 다 챙겨주며 일을 하다 보니 느려질 수밖에 없는 이곳의 시스템이다. 심사기간인 4개월 동안 책임자의 휴가, 주말, 칼퇴, 자녀 픽업시간 보장을 해주어야 하니 말이다. 책임자의 일을 그 누구도 대신하지 않으니 당연히 느려지는 것이고, 어찌 보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권리를 찾는 시간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인이 아니던가. 모든 일이 한시가 멀다 하고 착 착 처리되는 한국! 공공기관의 느려터진 일처리를 겪을 때면 내 나라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그럴 때마다, 온갖 안 좋은 소리를 해대며, 한국으로 가야 할 이유를 찾는 내 모습은 꼭 만화영화 스머프 속 투덜이 같았다. 주어진 현재에 최선을 다하여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하나 행복하지 않았던 나였다. 그 무엇도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 수입에 의존하는 뉴질랜드의 공산품, 그 품질에 비해 턱없이 비싼 가격의 시장 구조를 잘 알고 계셨던 시부모님은 한 달이 멀다 하고 생활필수품이 잔뜩 든 박스들을 우체국 해상 편으로 붙여주셨다. 양말부터 시작해서 옷, 칫솔, 된장, 고추장, 간장, 키친 타월까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그런 박스들이 끝을 모르고, 배달되었다. 박스 하나당 5만원 정도로 책정된 스템프가 찍혀 있었다. 박스들이 계속 배달되는 것을 보니 덜컥 겁이 났었다. ‘이 물질들과, 지원이 나를(우리를) 나약하게 만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을 방법은 없었다. 아무리 거절을 해도 한 달에 한번 꼴로 꼬박꼬박 박스가 배달되었다. 어쩐 나이드신 지인분은 나의 고민상담에, 부모는 원래 자식 주려고 돈을 벌어 모으는 것 이라며, 복받은 줄 알고, 냉큼 받고 감사한 마음만 가지면 된다고 충고해 주었다. 이민 2년 후, 딸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더 자주 박스를 받게 되었다. 그의 수입은 그 큰 집을 모시고 살 정도로 빠듯했지만, 한국에서 오는 박스들 덕분에 부족함 없이 넉넉하게 먹고살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을 가졌어야 했는데, 나는 이미 속세 앞에 무릎 꿇는 나약한 인간이 되었다. 대가 없는 지원에 처음에는 겁을 먹었고, 그 다음은 죄송한 마음이 들었고, 몇 년 후에는 박스에 들어갈 물품들을 당당히 요구하는 인간이 되어있었다. 심지어는 박스를 보내주지 않는 친정 부모님을 핀잔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의 부모는 뭔가를 계속적으로 주고 있고, 그래서 내 입장이 몹시 곤란하니, 형편이 어렵더라도 엄마도 뭣 좀 보내야 하는가 아닌가 하는 어리석음이었다. (그렇지만 말은 못 했다. 나는 착한 딸이므로…) 그야말로 나는 내 인격의 밑바닥에 까지 이르렀다. 사랑의 묘약이 눈에 뿌려져 엉뚱한 사람을 사랑했던 라이센더와 트미트리우스 처럼, 나약함과 욕심이 교묘히 섞인 묘약이 완전히 눈앞을 가렸다. 딸의 마음을 눈치라도 챈듯, 이제는 친정 엄마까지 합세하시어, 그것도 항공편으로 김치에, 각종 반찬을 잔뜩 해서 붙여주셨다. 이제 나는 화려한 진주목걸이 제대로 목에 건 배부른 돼지 마냥 잘도 받아쳐 먹는 욕심쟁이 배불뚝이가 되어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부모님의 사랑이었는데, 나는 왜 그런 식으로 삐딱선을 타고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게 되었을까?.


뿐만 아니었다. 나는 점점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모든 것은 그의 탓, 시댁 탓이 되어갔다. 그러면서도 모든 혜택을 받고 있는 나는 정당했고,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마다 시댁에 요구하는 일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되어갔다.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해서 이 나라에 적응하고, 아이만 잘 키우면 되었던 나는 그저 주는 거나 잘 받아먹고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면 그뿐이었다. 미래가 없는 사람들처럼 흥청망청 놀고, 먹고 돈을 썼다. 결혼 전 꼼꼼히 통장 잔액을 점검하고, 작지만 처음 든 적금을 깨어 친정부모님 소파도 바꿔드렸던 검소하고, 소박했던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이가 생긴 후로는 더 정당하고 더 당당했다. 그는 머슴처럼 일했고, 나는 왕비처럼 궁전에서 살았다. 감사한 마음 하나 없이, 공주 하나 키우기 바쁜 왕비였고, 얼마 후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