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른 채 뉴질랜드에 이민을 왔습니다.

알아차림

by 미쉘

둘째를 임신하자 그는 루이뷔통 지갑과 꽃을 사들고 와서는 두 번째 임신에 대한 감사와 축하를 했다. 칼국수 한 그릇과 영화 한 편으로 데이트를 즐겼던 우리 커플에게는 어이없는 장면이었다.


변해버린 그때의 나는 뉴질랜드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명품공세에 침을 질질 흘렸다. 연예할 때의 그는 한결같이 무뚝뚝한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데, 결혼 후 그는 뭣 좀 아는 스위트가이가 되었고, 나를 모시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잘해 주었다. 측은한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내가 아무리 변하기로 했었어도 명품까지는 아니었는데… 하지만 나는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생각하는 아내처럼 행동했다. 발로 뻥 차버리면 속 시원할 찌그러진 속이 텅텅 빈 깡통 같은 모습이었다. 본래 심성이 착한 그 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그를 변하게 했던 것 같다. 한국에 가고 싶다고, 내 인생 돌려내라고, 하루가 멀다 하고 징징 거리는 아이를 둘이나 낳은 그런 와이프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그때는 그가 그 모든 상황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못된 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를 바랐다. 너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한 내가 얼마나 힘든지, 내 자존심이 얼마나 구겨졌는지 그가 구석구석 알아주길 바랐다. 사실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이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들키면 안 되는 사람처럼, 들키면 모든 걸 빼앗겨 버릴까 걱정되는 사람처럼 더 더 못되져 가는 나였다.


둘째가 태어난 지 일 년.. 드디어 엄마 아빠가 뉴질랜드에 오셨다. 결혼해서 뉴질랜드에 온 지 거진 6년 만에 부모님이 오시는 것이었다. 나와 그는 서로 다른 이유로 바짝 긴장을 했다. 좋은 차, 좋은 집 그리고 예쁜 아이들과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부모님의 방문에 많은 긴장을 했다. 변해버린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당당하지 않은 내 모습에 스스로 구겨지며, 시부모님의 방문 때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고 눈치가 보였다.


엄마는 잔디밭을 맨발로 다니는 나를 보며 많이 변했다고 했다. 신발을 신지 않고는 한 발짝도 밖을 안 다니던 내가, 맨발로 밖을 다녀서 변했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못된 아내와 며느리 역을 맡아 연극을 하는 내 모습을 다 눈치챈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빠는 우리가 사는 것을 보아하니 시 어르신들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고 했다. 살만큼 살았으면 사직하지 말고, 한국으로 들어가서 맞벌이를 하며 우리 힘으로 살라고 담담히 말씀하셨다.


모든 걸 들켜버린 것 같았다. 변해버린 내 모습도, 납득되지 않는 도움을 받는 결혼 생활도…

대학 졸업 후, 내 앞으로 받은 학자금 대출을 스스로 갚아 나가라고 할 정도로 자식들의 독립을 강조했던 아빠의 입장에서는 우리 사는 모습이 어른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이 당연했다.


난 아빠에게서 그를 본능적으로 방어했다.


“ 아빠, 우리 돈을 엄청 많이 벌고도 남아요. 한국에서 맞벌이하는 것보다 뉴질랜드에서 그가 외벌이 하는 게 훨씬 더 많이 벌어요. 여긴 한국이 아니에요. 아빠는 내가 고생하며 워킹맘으로 찌들어 살길 바래요? 잘살고 있는데 왜 그런 말을 해요? 왜 내 인생을 여유롭게 내버려 두지 않는 거예요? 나는 고생하면서 사는 게 지긋지긋해요. 이 집과 차를 봐요. 나의 행복한 생활이 안 보이세요?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란 소리 하지 마세요.”


마치 뉴질랜드의 삶을 너무너무 만족하는 사람처럼. 이제 여기에 살 것을 결정한 사람처럼. 그렇게 말했다. 내 불편한 진심을 모두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해 버린 아빠가 미웠고, 아빠의 말이 모두 옳았으나 맞장구를 치기에는 너무 많이 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자꾸 이 생활을 접고 들어오라고 하니, 썩은 동아줄을 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마음이 요동쳤다.




아빠 말씀이 다 맞아요. 사실 나는 지금의 삶이 불안하고, 두려워요. 행복한 이 순간이 순식간에 없어질 것 같아요. 모든것이 거짓같아요. 누군가에게 많은 것들을 대가 없이 받고 두 발 뻗고 잠이 오지 않아요. 나중에 내 아이들에게 열심히 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어요. 결혼으로 인해 인생 역전하는 그런 사람들도 많은데, 저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는 것 같아요. 아마도 저는 평생 몸을 쓰며 스스로를 먹여 살려야 마음이 편한 사람인 것 같아요.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은거죠? 이런 까탈스런 제 자신이 아주 힘들어요.


못되고 싶어요. 이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 이 모든것들이 나의 몸과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요. 욕심이 생겨요. 아이들이 생기니까 더 욕심이 생겨요. 아이들에게 풍족한 생활을 누리게 해주고 싶어요. 나처럼 고생하며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뿌리치기 힘든 이 많은 것들은 나를 점점 더 초라하고, 약하게 만들고 있어요.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내 삶을 꾀 뚫어 보는 아빠의 말에 모든 것 들켜버린 것 같아 부끄러워요. 부끄러워서 화가 나요. 한국으로 돌아가기엔 내가 짊어 지을 짐이 너무 많게 되어버렸어요. 이곳의 평화로운 삶을 뿌리치고 돌아간다면, 시댁 어른들의 질책도 견디기 힘들 것 같고, 이민생활을 적응 못하고 다시 돌아온 방랑자와 같은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비치는 것도 싫어요. 그와 아이들이 나 때문에 고생하는 것도 보기 힘든 일이에요. 나는 약해졌어요. 스스로 일어날 힘이 없어졌어요.


아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내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취했던 그 행복감을 느끼며, 수화기를 사이에 두고 아빠와 함께 펑펑 울었던 그때의 내가 아니에요. 나에게 주어진 삶이 이제는 조금 달라졌어요. 나는 어쩌면 이대로 쭉 여기서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이렇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무것도 모르고 이곳으로 와서는 바보가 되어버렸어요.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내 삶이 좋아 보이니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고 말해주세요.




부모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그는 모든 것을 다 해치웠다며, 이제는 두 다리 뻗고 잘 살 수 있겠다고 했다. 사진으로 영상으로 그렇게 보여드려도 화려한 집과 내 생활을 쉬이 믿으시질 않았길 때문에 그는 늘 답답해 했었다. 이제 증거를 직접 보여드렸으니 그도 마음이 편해질만도 했다. 한편 나의 불편한 마음은 극에 달했다. 부모님의 방문으로 인해 나의 양심과 인성에 뭔가 부끄러운 일이 생겼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기 시작했기때문이였다. 나는 나를 되돌려 놓아야 했지만, 그런 마음에 집중하지 않고 몇 년을 더 그렇게 살아가야했다.. 자존심, 양심을 따지고 살기엔 나와 그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누구의 도움 없이 벌어야 했고,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했나? 아이를 낳고 사는 삶을 택한 후로는 부모의 삶을 택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인간답게, 여류롭게’ 살 수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 치고는 고생스런 삶을 살았고,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치고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