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오랜 이민 생활로 커뮤니티에서 조금 더 발언권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행복한 이민생활의 이유이자 내 진심을 모두 내어준 사람들과의 관계는, 내 장점이라 생각했던 ‘열정과 진심’을 발휘하자 모두 모르는 사람들처럼 차가워졌다. 욕바가지인 자리인 것을 알았지만,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일이었기에 나는 해야만 했다. 내가 받았던 그 든든함과 고마움을 어떤 방식으로는 돌려주고자 하는 마음이 벅차올랐던 것이다. (그 마음을 조절해야 했다.) 생활패턴이 바뀌어 분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쓰고, 무리한 일정과 계획으로 봉사를 했지만, 내가 추진했던 그 일들이라는 것이 너무 앞서 나갔던 모양이었다. 그냥 조용히 존재하기만 하면 되었던 것들을 들춰내고, 해결하려고 드니 모두들 귀찮아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듣기 싫은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보고 있고, 듣고 있는 것들을 외면하고 싶었다. 사면초가 같은 상황에 놓였지만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마지막으로 그 모든 일을 내가 하는 대신 페이를 좀 더 요구했다. 내 시간도 소중했기 때문이다.
새로 시작한 나의 인생에 시간은 ‘금’이었지만, 작은 동기부여가 있다면… 사람들이 믿어 준다면… 기꺼이 내가 해내겠 다하는 마음이 있었다. 가족 같은 사람들이 페이를 올려 달라 하자 대 놓고 나를 조롱했다. 그들은 순수했던 내 진심에 참으로 깊은 상처를 남겼다.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우린 뭐든 함께 힘을 모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런 희망찬 착각 속에 빠져 살았던 나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너는 어쩔 때 보면 어이없이 순진해’
힘이 빠졌고, 절망했다. 진심이 멋모르는 순진함으로, 무식함으로 변해버리는 순간이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이 지옥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없는 살림에 페이를 올려 달라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했다. 나는 우리가 힘을 모으면 잘할 수 있다고 했다.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하는 생각들 때문에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이 ‘이상’ 일 수 있었고, 그것이 현실이었다. 봉사하고 싶었던 마음이 싹 사라지고, 동기부여가 필요했던 마음에서 생겨난 아이디어였기에, 그만하는 것이 옳았다.
일 년이라는 시간을 끝으로 자진 하차했다. 발언권을 포기했고, 사람들도 포기했다.
모든 것은 착각이었고 그 일을 계기로 가족과도 같았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이상한 그 인간관계라는 동굴에서 빠져나왔다. 자진 왕따가 되기로 했고, 어쩌면 정말 왕따인지도 모르겠다. 그 누구도 무슨 일인지 직접 묻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살기 바빴다. 그렇다. 사람들은 원래 자신의 인생을 살기 바쁘다.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손해 볼 것 같은 상황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나도 그랬어야 했다.
순진했고, 무식한 것이 맞았을지 모르겠다.
동굴에서 빠져나온 후 꾀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 외로운 이민 생활을 더 외롭게 만드는 한인에 대한 기피증이 생겼고, 사람들을 믿는 일, 서로 돕고 사는 아름 다운 일들이 아픔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픔은 점점 커져 눈물로 우울증으로 자리를 잡았다. 상담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영어로 하는 상담이 그리 크레 와닿지 않을 것 같았다. 온라인 강의를 닥치는 대로 들었다. 아무 영상이나 틀어놓고, 공감을 받았고, 공감을 했다. 오은영, 김미경, 김창옥 선생님, 법률 스님까지 줄줄이 틀어놓고 하루하루를 버텼다. 밤마다 남편을 붙잡아 두고 주르륵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내어 준 마음만큼, 내어준 진심만큼 모두 다 쏟아 내었다.
같은 민족이라 마음이 더 끌리는 어쩔 수 없는 본능을 뒤로한 채, ‘영어사람’만 공식적으로 대하며 지냈다. 그러니 마음은 편했지만, 외로웠다.
쓸 만큼 쓴 휴직서도 이제는 한계에 달했다. 사직서를 썼다.
남편의 품 안에서 또 한바탕 통곡을 했다. 그 통곡은 사직서에 대한 아쉬움의 통곡은 아니었다.
십이 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며, 나는 마음속으로 이미 사직서를 냈었다. 부여잡고 있었던 그 교육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은 어쩌면 이곳에서 ‘ 아무것도 몰라도 될 핑계’ 였을지 모른다. 또 언젠가는 돌아올지 모를 딸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부모님의 ‘희망의 끈’을 남긴 것 인기도 모르겠다. 임용고시 경쟁률도 잘 알고, 한 사람이라도 더 뽑을 수 있게 내가 사직서를 어서 내야 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죄책감을 갖고 살았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이런저런 사정을 봐주고 직업을 이어가게 해주는 한국의 공무원 혜택이 놀랍기만 하다. 그래서 철밥통이라고 하나보다.
두 개의 사직서를 내고 나니 십이 년 동안 갇혀 있던 깜깜한 동굴에서 빠져나온 느낌이었다. 이민결정과 함께 냈어야 할 공무원 사직서였는데, 욕심과 불안감으로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에 후회가 되었다. 그 시간을 영양가 없는 인간관계와 맞춤형 이민생활을 하느라 진짜인 나를 모두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