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은 옮김, 곰 출판

by 미쉘


나에게 다가온 룰루 밀러의 이 신기하고도 충격적인 이야기는 룰루가 그랬던 것처럼, 끈기를 발휘하여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게 했다. 우생학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의 정체가( 변질?) 되기 시작하면서 이 책에 흥미를 가졌다. 거의 막다른 챕터 9부터였다.



그전에는 시작을 했으니 끝맺고 싶은 마음이 절반 이상이었고, 책장을 덮으면 생각의 소용돌이로 몰아가는 이 책이 그저 신기하여 이해도 잘되지 않는 이야기 -과학과 철학, 소설 또는 전문 보고서와 같은 글들 사이를 들락날락하는-이지만 읽고 있었다.



책의 디자인이 한몫한 것도, 책의 감촉이 다른 책과 달리 조금은 더 따뜻했던 것도, 오만가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삽화도 이 책을 끝까지 붙잡고 있게 한 원인이 되었다. 나처럼 독서를 일거리로 하는 사람은 ( 이제는 독서가 재미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눈이 즐거운 책 읽기도 크게 차지한다. 표지 디자인과 삽화, 텍스트의 크기, 페이지의 마진 그리고 소제목들의 센스와 재치가 이 책에 머물게 한 이유가 좀 많이 컸기에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데이비스 스타 조던이 농구선수인지, 룰루 밀러는 가수 이름인지.. 곰 출판은 곰이 만든 출판사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냥 읽어나간 이 책은 생각보다 많은 지식과 정보를 안겨줌과 동시에 조금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했다.



또한 가벼운 지식과 정보만에 (우리가 학교에서 가볍게 배우는) 기대어 어떤 이를 또는 어떤 이론과 사상을 추앙하는 것은 이 세상에 물고기 분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나, 쉬운 일이 되게끔 하게 해주는 책이다.



자신의 사랑에 대한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멘토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야기를 집착적으로 파헤쳐 나가는 룰루 밀러의 집념과 끈기는 역시 그녀가 멘토로 정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한 가지에 대한 끈기와 열정에 뒤지지 않았다. 그러니 이렇게 훌륭한 책을 썼을 수 있었고, 그를 파헤쳐 세상을 뒤집어 놓고, 위대한 과학자로 오랫동안 남을 뻔 했던 그의 이름을 끌어내렸을 수 있었으니까. 그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전문성이, 용기가, 그러면서도 독자를 신비하게 빨려드려가게 하는 문체가 멋지다.



나는 한 가지에 집중해서 끝까지 해내는 사람, 집중력을 발휘하여 결국에는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사람에게 더 매력을 느낀다.) 초반 데이비드 조던의 성장 이야기와 성공 이야기를 읽을 때 나 또한 룰루처럼 그를 지지했고 응원했다. 남들보다 조금 다르더라도 자신의 흥미에 몰두하고, 열정을 다하는 이야기 속의 그의 모습은 정말로 멋졌다. 나도 그처럼 아니 그의 발톱에 때만큼이라도 어떤 일을 끝까지 해야겠다는 다짐도 했던 참. 우생학을 지지하는 그의 모습은 룰루도 나도 충격에 빠트렸다.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는 어쩌면 데이비드 조던 스타의 성공 이야기와 그를 그리고 그의 집념을 꾀많이 지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막무가내식 생각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생각들,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쿨함, 어쩌면 차가운 그의 심장까지도.




그는 자기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가 하는 생각을 붙잡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하려는 일, 그러니까 혼돈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질서를 만들려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았다. p 78 물고기는 없다, 룰루 밀러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신의 장점에 갇힌 사람이었다. 윤리도 도덕도 다양성도 다른 이도 안중에 없다. 오로지 자신만이 맞았고, 자신의 세계만이, '적합자' 만이 맞다고 주장하는 그는 참... 고집쟁이다. 나이 80세가 될 때까지도, 죽을 때까지도 변하지 않았다는 그의 우생학 추종은, 인간의 한계에 정점을 찍었다고 할 만큼 나에겐 그랬다. 그의 뇌 속을 들여다보고 싶을 만큼 그랬다.



나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가...


나는 얼마나 다양성을 존중하는가...


나는 얼마나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가...


내가 만약 그들이 말하는 부적합자로 감옥에 갇힌다면 그들에게 저항할 용기가 있는가.


아니면 불임화에 동참할 것인가.


나는 지식으로 권력으로 오버파워링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맞지 않다고 저항할 지식과 소양과 도덕과 포용력을 갖추고 있는가..



없다.



물고기가 없는 것처럼.



나에게도 사실 누군가를 비판할 자격도, 소양도 다양성도 없다.


그렇지만 나도 하나의 민들레 홀씨이다.


어디선가에서는 가치롭게 쓰이는


어디선가에서는 사랑받고 존중받아 마땅할 민들레 홀씨이다.







민들레 법칙!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에 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 번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래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 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범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p 227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그래서 우리 모두는 소중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소중하고, 서로가 의지되어야 한다.


과거가 상처로 남고 때로는 슬픔에 빠져 절망해야 한다.


부적합한 것이 아니라 우린 원래 그런 것이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 --다정하게 흔들어주는 손, 연필로 그린 스케치, 나일론 실에 꿴 플라스틱 구슬들-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도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 P.226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했던 친구의 부탁을 승낙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행복해졌고 나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완벽한 프로젝트 과정을 위해 모든 내 시간을 오롯이 내 프로젝트에만 열정과 시간을 쏟아내는 내 모습이 꼭 완벽한 적합자를 찾아 헤매는 우생학 지지자처럼 느껴져 방향을 틀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담당 교수의 권력에 대해 항의했고,


그 후 그의 노력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억울함과 그의 괘씸함을 뒤로 하고 ,그도 인간임을 그도 선생이기 이전에 인간임을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을 읽고 나서였기 때문이다. 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처럼 고집 센 늙은이가 되고 싶지 않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보호할 줄 알면서도, 때로는 다른 이의 그물망 역할을 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행복한 일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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