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다시 올리브> 2
<다시, 올리브> 중심 인물은 올리브 키터리지입니다.
인생의 뒤안길, 노년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관계 안에서 깨닫고 성장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저는 그녀가 부부의 관계, 남편이라는 존재, 또 장성해 가정을 꾸린 아들에게 느끼는 감정도 많이 와닿았습니다.
삶의 길목에서 수많은 인연들을 만나고 그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포개며 살다 종국에는 헤어지게 되죠.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요.
소설 후반에 올리브가 자문해요. 그들은 대체 다 누구였는지. 아 모르겠다. 그 이름을 부르다가 토로합니다. 남편들의 이름을요.
난 그들을 알고는 있는 걸까? 하고요.
안다는 것은 참으로 한 줌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나에게 무얼 남기고 갔나 싶은 탄식과도 같은 느낌표 룰 남길 때가 있죠.
제가 읽으며 마음속 밑줄 긋기를 했던 여러 구절들을 옮겨 봤어요.
등장인물 별로 (소설 전개 순대로) 옮겼어요.
케일리 캘러헌
8학년의 여자아이
케일리는 종종 그것이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이따금 케일리는 실제로 아픔이 작은 파도처럼 가슴에 들이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상처를 말하는 거라고. p.87
나무의 우듬지 끝이 빨갛게 변하기 시작했고, 케일리는 그것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햇빛 속애서 반짝이는 돌멩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링 로즈 선생을, 그녀가 어떻게 실버 스퀘어스를 시작했고 필그림 복장으로 시작하는 패션쇼를 열었는지 생각했다. p.109
올리브 키터리지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잭에게 말하지 않기로 한 것은 앤이 아들에게 소리 지르는 걸 봤을 때 느낀 경악스러운 감정이었다. 그리고 식탁 앞에 앉은 이 순간 찾아온 깨달음은 앤이 크리스토퍼에게 그렇게 소리를 지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런 순간은 우연히 어떤 관계의 어둠을 들여다보는 구멍과 같았다. 어두운 헛간에서 문이 바람에 순간적으로 열렸을 때 봐서는 안 될 것을 보는 것처럼.
하지만 그 이상이었다.
그녀도 앤과 같은 행동을 했다. 사람들 앞에서 핸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누구 앞에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러고 싶어질 때마다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래서 이렇게 돼버린 것이다. 아들은 엄마 같은 여자와 결혼했다. 모든 남자가 결국에는- 이런저런 형태로- 그렇게 하듯이.
올리브는 깨달았다.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주지 않은 것은 그녀 자신이었음을. p.459
내게는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진실로 나는 한 가지도 알지 못한다. p.460
수잰
수잰이 말했다. "그거 아세요. 버니? 저는 이 문제를 많이 생각했어요. 정말 많이요. 그리고 제가.... 음, 이런 표현을 생각해냈어요. 그러니까 오로지 저 자신을 위해서요. 제 머릿속을 스틴 표현은 이건 데요, 우리가 할 일은 - 어쩌면 우리의 의무일 수도 있고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한 어른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신비의 무게를 가능한 한 우아하게 견디는 것이다."
버니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말했다. "고맙다, 수잰." p.187
->
저에게 수잰과 버니의 이야기가 각별했습니다.
수잰은 너무나도 힘든 친정 가정사에 괴로운 삶을 한복판에 있어요. 한편 그녀 또한 외도를 벌여 그 어두운 그림자를 스스로 끌어들였다는 죄책감에 이중 고통을 겪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들 가정의 어두운 면을 모두 아는 버니는 수잰에게 진솔한 힘이 돼줍니다.
물론 수잰이 고백한 영적인 노력이나 삶에 대한 투지를 보인 문장이 마음에 콕 박혀 왔습니다. 신비한 일을 우아하게 견디겠노라고.
신디 쿰스
"선생님 나이에도 죽는 게 무서우세요?"
올리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 맙소사. 내가 이미 죽은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어. 하지만 여전히 죽는 건 무서워." 그리고 올리브가 말했다. "알겠지만, 신디, 네가 정말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리고 죽게 된다면, 진실은........ 우리 모두 그저 몇 걸음 뒤에 있다는 거야. 이십 분 뒤, 그게 진실이야."
신디는 그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녀는 톰과 아들들이- 그리고 사람들이- 그녀 없이 영원히 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올리브의 말이 맞았다. 그들 모두 그녀가 가고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 가고 있는 거라면. p.207
신디가 물었다. "결혼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이 년이 거의 다 돼가는 것 같네. 내 나이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걸 한번 상상해봐." 올리브가 수건을 무릎에 올려놓고 아무것도 들지 않은 한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하지만 절대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야. 신디. 계속 이어가는 거지."
"..... 오, 혼자 두기엔 덩치만 큰 아기 같아요. 그래서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요. 하지만 그이가 다른 누군가와 같이 있는 걸 상상하면 마음이 더 아파요."
올리브는 그 말을 이해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신디. 너하고 톰은 같이 자랐어. 헨리하고 나도 그랬고. 우리는 열여덟에 만나서 스물한 살에 결혼했지. 진실은..... 네가 그 사람하고 같이 살았다는 거야. 그 사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 올리브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사라지지 않아." p.212
-> 눈물 한 바가지 쏟은 대목.
신디처럼 중한 병에 걸리는 망상을 가끔 하는 나에겐 이미 너무 이입이 되어버려서...
그렇다. 내가 불치병으로 죽는다면 아이들은, 남편은 어쩐다 싶지만 남편 재혼하는 건 눈감고도 못 봐 이런 생각이 불쑥 머리를 치켜드는 것... (나만 그런가요?) ㅎㅎ
앤드리아 르리외
올리브는 오랫동안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저 유리창을 통해 어두운 들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껏 인간의 경험이 서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제대로 알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
얼마나 재미있는가. 얼마나 흥미로운가. 올리브는 자신이 늘 다른 사람이 모르는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헨리. 창문을 통해 어둠을 내다보면서 그 이름이 올리브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잭. 그들은 누구지? 누구였지? 그리고 그녀는 누구 - 도대체 누구 - 지? p.345
-> 우아함을 잃지 않으려 하는 올리브는 실제로 주변 많은 이웃에게 꼰대 같지 않은 '어른'의 모습으로 위안이 돼줍니다. 위에 언급한 신디에게 그런 것처럼.
그러나 그녀가 끝내 저 윗자락에 앉아 도인처럼 '나 그거 다 해봤어, 내가 잘 알아.'를 설파한 노인네가 되었는데 그 피해자가 앤드리아입니다.
올리브가 한때 학교에서 가르쳤던 평범한 학생 앤드리아는 훗날 계관시인이 됐고 우연히 식당에서 만나 아는 체를 합니다. 그녀와 가까워지길 기대했으나 앤드리아는 올리브가 늘어놓은 말을 이죽거리며 시로 만들기까지 한다. 올리브가 화날 만 하지만 그녀는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인생 나이테가 언제나 옳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살면서 이런 경험이 종종 있죠.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상대가 오해하면 어쩌지, 이러한 노파심은 사실 내 삶의 영역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굳건해지면서, 나이 들어가며 더 짙어지는 듯합니다. 부모가 되고 집을 사고 어떤 경험을 꾸준히 하며 각자의 성체를 지어 살아가기에. 앤드리아가 올리브와 헤어지기 전 담배를 태우며 계급이라는 말을 꺼냅니다.
올리브는 계급이나 인종 문제에 있어서 합리적인 데다 폴리티컬 커렉트니스를 고수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역시 소설 속 앤드리아에겐 (!)) 그녀마저 자신이 이민자 출신에 늘 하찮았던 존재였으나 이젠 유명인사가 됐다는 이유로 관심을 주는 올리브가 역겨웠던 것이죠. 이것을 두고 우린 앤드리아가 자격지심을 지녔다고 일갈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소설에서 '계급'에 대해 꾸준히 지적하는 작가의 의도도 매우 좋았습니다. 내가 미처 몰랐던 캐나다에서 넘어온 프렌치 이민자들, 소말리족들이 나와요.
베티
모든 사랑은, 자신이 의사에 대해 품었던 그 짧은 사랑을 포함해,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베티는 이 사랑을 오래오래 심장 가까이 품고 있었다. 그 사랑이 그만큼 필요했던 것이다.
....
올리브가 마침내 몸을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난 이렇게 생각해. 이 사람아, 넌 아주 잘하고 있어." 그러고는 뒤로 기대앉았다. 사랑이라는 건 참.
이저밸 데이그놀트
"지금은 딸이 당신을 좋아해요?" 올리브가 물었다.
그러자 이저밸의 얼굴이 퍼지며 기쁜 표정이 떠올랐다. "오, 나를 사랑해요. 어떨게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나는 정말로 좋은 엄마가 아니었어요....... " p.441
-> 올리브의 말년에 이저밸이 등장해 좋았습니다. 두 사람이 친구가 되어 자식 이야기를 나누던 대목은 가슴 아프면서 따뜻했어요.
자식이란 늘 주면서도 모자란 듯 하고, 내 부족인 듯해서. 응팔에서 덕선이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미안하다고 하죠. 부모가 뒤돌아보며 되뇌고 곱씹는 시간 속에 아이들은 자랍니다.
풀잎들이 몸을 작게 떨듯 평생 인간은 얼마나 많은 상념과 감정으로 흔들리며 사는지,
그 떨림의 진폭 안애서 마주친 수많은 인연은 모두 우주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세계가 되고 싶은지 <다시, 올리브>를 덮으며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