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 여의도에서 열린 교사 집회에 다녀왔다.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친한 선생님들과 함께 갔다. 집회 시작 시간인 2시가 채 되기도 전에 이미 모든 구역이 가득 찼다. 마칠 때까지 30만 명으로 추산되는 선생님들이 모였다고 한다. 하지 말라는 거 한 번 안 하고 살았을 수많은 전국의 모범생 선생님들이 전국에서 버스와 기차를 타고 모인 이유가 무엇인가.
처음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을 들었을 때는 2년 차 신규 후배 선생님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컸다. 그러나 한 달의 시간이 지나며 느끼는 것은 그보다 훨씬 큰 분노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이다. 서이초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어제까지 세 분의 선생님이 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사가 죽어나가고 있다. 그런데 학교와 교육부는 선생님을 지키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지키려는 의지도 없다. 심지어 이제 지키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악성 민원 학부모보다 더 집요하게 교사를 몰아붙이고 있다. 너무나 쉽게 징계와 해임을 내뱉는 교육부를 보며 선생님들은 다시 한번 무너졌다.
혹시나 과격하거나 정치적인 현장이 되지나 않을까 지레 걱정하며 갔던 집회에서 나는 희망을 발견하고 왔다. 발언을 하는 선생님들의 말씀은 바르고 따듯했다. 집회에 참여하는 선생님들의 태도는 질서 정연하고 인정이 있었다. 서로 지칠 즈음이면 간식들과 물을 건네며 격려했다. 서이초 선생님의 동료들, 동기들, 교수님, 또 다른 피해자인 선생님, 학부모를 대표하는 선생님의 발언들이 구구절절 공감이 되고 마음이 아팠다. 저런 보물 같은 선생님을 잃었다는 게 한탄스러웠다.
그 모든 발언 중에 내 마음에 가장 깊숙이 박힌 말은 서이초 선생님의 교대 동기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교사가 되었다. 공부를 잘했고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아이들을 좋아하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이 일을 선택했다. 안정적이고, 방학이 있고, 사회적 명예가 있으니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것도 맞다. 그러나 소득이 적고, 폐쇄적이고, 계속해서 공부해 나가며,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을 감수하며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각자 좋은 선생님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학교를 꿈꾸는가. 선생님이 학생이 잘못했을 때 지도할 수 없다. 학부모에게 민원을 들을까 교사로서 최소한의 업무만 한다. 그런 교사를 교육부도 학부모도 학생도 교육서비스직으로 대한다. 급여도 적은데 보람도 없는 직업에 더 이상 사회적 인재들이 지원하지 않는다. 교사의 질이 낮아진다. 교사의 질은 곧 교육의 질인데 사교육과 공교육의 질적 차이는 점점 더 커진다. 공교육이 무너지면 이 사회의 다음 세대에 그 피해가 고스란히 간다. 피해는 이미 시작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매일 마주하고 있는 뉴스들을 보면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내가 살아서 행복해야 이 행복한 세상을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데, 내가 10대 20대 내내 불행했기 때문에 자식에게까지 이 불행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저출산 문제가 공교육 붕괴 문제와 다른 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번 집회를 통해 희망을 보았다. 발언하는 선생님들의 말씀에서 교사로서의 신념을 보았다. 우연히 만난 선배 선생님이 간식을 사주시며 격려하는 모습에서 여전히 모든 세대의 선생님들이 연대하고 있음을 느꼈다. 같이 간 선생님들이 각자 고등학교에서 자기 혼자일 뿐일지라도 집회에 동참하는 모습에서 초등학교 교사들만의 외로운 싸움이 아님을 알았다. 하루 만에 30만 명의 교사가 모여 뜻을 함께하는 것에서 여전히 좋은 선생님으로 존재하며 학교에서 예쁜 아이들을 지켜내고 싶은 선생님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는 서이초 선생님이 돌아가신 이후 각자 집에서 밤마다 잠에 들지 못하고 베개를 적시며 울며 잠들었다. 지난 상처라고 꾹꾹 묻어두었던 교직 생활을 하며 당했던 수많은 부당한 일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아무렇지 않게 출근해서 또다시 반복되는 민원과 갈등을 직접 겪거나 옆에서 목도해야 했다. 그러나 사람이 죽었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 현실에 답답하고 두려워졌다.
하지만 한자리에 모여 '악성민원인 강경 대응'과 '아동복지법 즉각 개정'을 함께 외치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다. 이 외로움과 두려움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교사의 것이며, 이것은 교사라는 직업을 지켜내기 위한 싸움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내 학생들과 내 자식들을 지켜내기 위한 더 큰 전쟁임을 분명하게 자각했다.
억울하고 두렵지만 직업으로서 교사, 그만둘 수 있다. 그러나 내 자식을 무너져가는 학교에 보낼 수는 없다. 어디까지가 교사의 권한과 책임인지 분명하게 명시하고, 상세한 교육 상황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정부에서 책임지며, 악용되고 있는 아동복지법을 개정해야 한다. 미국 교육 좋아하며 고교학점제만 빠른 속도로 도입하지 말고, 미국 교육에서 어떻게 학교 문제를 대처하는지도 확인하고 적용하길 바란다.
그 무엇보다 지금 한 분의 선생님이게라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선생님들! 죽지 마세요!
도망치더라도 죽지 마세요! 제발 죽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