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28에 작성한 글입니다.
며칠 째 자꾸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이 마음을 추스르고 글을 써야지 싶은데 매일 미루게 되었다.
서이초에서 작년에 임용된 신규 후배 선생님이 목숨을 잃었다.
참담하다.
참담하다..
참담하다...
근래 학교에서 교사들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시니컬하게 내뱉곤 했다. "누가 죽어야 바뀌지."
어쩌면 나는 이 죽음을 방관한 사람이다. 머지않은 시일 내에 이런 비극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매일 학교 현장에서 나 하나 살아남는 것에 안도하며 이 현실을 외면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기껏 현장에서 힘들어하고 그만두려는 선생님들을 위로한다는 글이나 쓰는 것이었다. 나는 실은 고통받는 선생님들의 무게를 전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다들 나 정도로만 힘들다고 생각했다. 내 학교에서 내가 막내니 선배 선생님들만 쳐다보고 있을 뿐 내 뒤를 따라 후배 선생님들이 학교에 세워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때 나는 임용고사를 준비하며 대학 도서관에 있었다. 그 참담하고 믿기지 않는 죽음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며 말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 이후 내가 다시 교사 임용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마음 때문이었다.
'교사가 된다는 것은 아이들을 대신해 죽을 수 있는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는 거구나.'
세월호에서 담임 선생님들 전원이 돌아가신 것을 보고 그렇게 마음먹고서야 내 공부의 이유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험한 세상 가운데서 좋은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것이 교사가 되기 전과 교사가 된 후 변함없는 내 마음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침몰하는 학교에서 교사도 학생도 죽어나가고 있는데 같이 가라앉으면서 발만 동동 구르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다.
서이초 선생님의 분향소에 다녀왔다. 분향소로 오가는 좁은 골목길에서 눈물을 훔치는 선생님들과 마주치며 그저 나는 서로를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좋아서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서 선생님이 되었다. 대부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어렵게 교사가 되어 성실하게 일한다. 나는 이 작은 대한민국이 오늘날 이만한 선진국이 된 데에는 오랫동안 사회적 인재들이 공교육의 교사로 헌신하고 그로 인한 양질의 교육이 다음 세대에게 이어진 영향도 크다고 믿는다. 그래서 대학 동기들 중 가장 박봉이지만 내 역할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선한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믿기에 자부심을 갖고 교사로 살아왔다. 많은 선생님들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교직을 지켜오다가 근래 무너지는 학교 현장에서 좌절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이 교대나 사범대를 지원하면 응원했다. 당장 지난주 우리 반 1등인 학생이 교대 지원에 대해 내게 의논하자 나는 이렇게 말했다. "교사로 살아야만 행복할 거 같아? 그런 절실한 마음이 아니면 추천하고 싶지 않아. 네가 선생님 되면 너를 선생님으로 만나는 학생들에게는 정말 큰 복이지. 너 명석하고 인품 훌륭한 거 샘이 아는데. 그런데 그냥 한 번 지원하는 마음으로 걷기에는 앞으로 더 험난한 직업 같아서 말리고 싶어."
빠르게 교사들이 퇴직하고, 교대와 사범대 입결이 낮아지고 있다. 내 자녀들이 만날 학교 선생님들이 행복하고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면 좋겠는데 이대로는 어려운 일이다.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면 무죄 판결이 나와도 직위해제 당할 수 있다는 기사를 보고 나 역시 심하게 위축되는 마음이 들었다. 공교육 교사로서 당당하게 가르치지 못할 바에야 몇 배로 돈 받고 가르치는 사교육 강사보다 나을 게 무엇인가 하는 회의감도 몰려왔다.
나를 위해서, 내 학생을 위해서, 내 자녀를 위해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혼자라는 절망감과 외로움에 삶을 포기하는 선생님이 생기지 않도록 내가 낼 수 있는 작은 용기들을 내고 또 낼 것이다. 학교가 학교답고, 교사가 교사답고, 학생이 학생다울 수 있도록 삶을 던질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부서지고 사랑하는 일을 오래도록 할 수 없을지라도 나 자신과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있은 힘을 다할 것이다.
슬프다. 잠들다 자꾸 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믿는 소중한 가치들을 지켜내기 위해 주저앉지 않고 조금 더 힘을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