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후배 교사 옥돌이에요. 근래 '안녕하다'는 말이 참 소중하게 느껴지는 나날들이죠. 교직을 그만두고 싶다는 선생님의 편지를 읽고 여러 마음과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 저도 사실 작년부터 '의원면직'이라는 단어를 자주 검색했어요. 교사를 그만둔 사람들은 뭘 하고 사나 찾아보기도 하고요. 교사를 그만둔 사람들 또는 교사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글과 말을 접할수록 교사를 그만둬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치더라고요. 하나하나 다 제가 공감하는 이유들이고요.
우선 교사로 먹고사는 게 너무 빠듯해요. 맞벌이지만 월급 2~300 받아서 네 식구 먹고살기 참 쉽지 않네요. 저는 고3 담임하며 매일같이 야근하느라 하원 이모님께 제 월급의 절반을 드려요. 그러면 정말 100만 원대 돈을 벌기 위해 이 한 달을 이토록 애쓰나 힘이 쭉 빠집니다.
그래요. 처음부터 돈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닌 것 알고 지원했죠. 그래도 다른 직업보다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아주 크니까요. 쉽게 잘리지 않고, 연금으로 노후가 보장되고, 방학이 있고,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는 대신 얻는 남들보다 이른 퇴근 시간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언제 아동학대와 학부모의 고소로 이 일을 그만두게 될지 모르는 불안에 살아요. 연금 삭감으로 교사 연금이 국민 연금보다 못할 거란 이야기도 있어요. 방학에도 생기부를 쓰느라 새로운 연수 들을 시간적 여유도 빠듯하고요. 퇴근 시간... 선택과목과 고교학점제로 점점 더 교사 1인당 맡는 수업 개수는 늘어나고 생기부의 전문성과 책임은 갈수록 더 크게 요구돼요. 학생들은 밖에서 사교육 강사와 교사의 수업 수준을 비교하고, 양질의 생기부를 위해 끊임없이 의미 있는 수행평가와 프로젝트 활동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평가해야 해요. 점점 더 몸이 열 개여도 부족한 기분이 들어요.
그래도 말이죠. 대부분의 교직을 선택한 선생님들은 유능하고(현재 교사들 진학 당시 교대, 사범대 입결과 임용고사 경쟁률을 보세요) 사명감이 있어서(세월호 때 담임선생님 전원이 아이들 지키시느라 돌아가셨던 것을 떠올립니다) 월급 적고 일이 힘들어도 보람 하나 있으면 견딜 분들이세요. 그런데 저희 현장에서 보람 어디서 찾나요? 사회적으로 교사는 교육 서비스직이래요. 서비스직의 마인드로 학부모와 교사가 까라는 대로 까래요. 그렇지만 스승이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흠이 없어야 한대요. 동시에 사교육이 과열된 것은 공교육 교사의 무능함 때문이기에 교사의 몇 배의 수입으로 아래 조교들을 거느리며 수업 준비에 올인하는 사교육 강사들에 뒤지지 않는 수업 실력을 갖추어야 한대요. 사회와 학부모와 학생의 교사에 대한 요구사항은 경계가 없이 무한정 늘어나는데 교사에 대한 보상과 존중은 점차 희미해져 가는 현실. 그게 요즘 저희가 학교에서 겪는 무기력과 절망감의 큰 이유겠죠.
선생님께서 요즘 젊은 교사들의 의원면직률이 높은 것을 보고 '교직 탈출은 지능순'이라고 말씀하셨죠? 저는 선생님의 그 말씀을 듣고 마음이 아팠어요. 그 말속에 담긴 자조 섞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선생님, 우리가 무능하고 멍청해서 지금 교직에 남아있나요?
최근 일 년 동안 저는 대기업에 다니거나 전문직인 대학 친구들을 만나면서 입버릇처럼 '나 교사 그만둘까 봐' 이야기했어요. 그때마다 친구들은 '너처럼 교직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라는 말로 다시 마음을 다잡게 해 주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교직을 떠난 교사였던 친구가 제 말을 듣더니 '그럼 언제쯤 그만두고 뭐 해볼 생각이야?'라고 구체적인 계획을 묻더라고요. 그 순간 가슴이 철렁하대요. 그동안 저의 말들은 하소연이었을 뿐 진심은 아니었나 봐요. 교사가 아닌 저, 교직을 떠난 제 삶이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거든요.
지난달 제 첫 제자가 교생이 되어 학교에 왔어요. 학생 때도 제게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했던 제자인데 7년이 지나 스물다섯의 정말 멋진 어른이 되었더라고요. 대학생이 되어 몇 백 시간의 교육봉사를 하고 교육학을 배우며 자신이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대요. 이십 대의 저를 보는 듯했어요. 두 마음이 들더라고요. '교직에 있기에 너무 아까울 정도로 똑똑하고 마음 따듯하며 유능한 인재다'는 마음과 '이런 인재가 교직에 있기에 교육계에 희망이 있다'는 마음이요. 제가 대학교 4학년 때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중학교 은사님이신 국어선생님께 편지를 했을 때 선생님께서 답장에 써주신 그 마음 그대로였어요. 그래서 그 교생인 제자를 보는 마음으로 저를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시대가 변질될수록 선생님 같은 분이 교직에 있어야 우리 미래에 희망이 있어요. 교육은 다음 세대에게 올바른 안목을 가르쳐서 다가올 미래를 긍정과 희망으로 만드는 과정이잖아요. 그래서 역사적으로 훌륭한 인재들이 선생님의 역할을 해왔고 이 나라를 변화시켜 왔잖아요. 청소년 자살률 1위, 20대 고독사가 급증하고 있으며, 청년들이 아이 낳기를 두려워하고 거부하고 있는 2023년의 우리나라. 위기의 사회와 가정 가운데서도 학생들이 학교에서만큼은 있는 자기 모습 그대로 존중받고 올바른 가치를 배우며 옳고 그름을 배워나가야 하는 하는 거잖아요.
나에게는 그런 역할을 해낼만한 대단한 사명감과 능력이 없다고 말씀하셨죠. 아뇨. 세상이 아무리 교사를 한낱 저연봉의 교육서비스직으로 얕잡아보더라도 우리는 알고 있어요. 교사의 역할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을요. 우리가 갖고 있는 교육 전문성과 역량이 결코 얕지 않다는 것을요. 우리가 얼마나 유능한 사람들인지는 같이 일하는 서로가 더 잘 알잖아요.
선생님 한 분이 교직에서 수 천명의 학생에게 흘려보낼 선한 영향력을 고작 일부 진상 학부모와 개념 없는 학생들이 망치고 빼앗을 수는 없어요. 일 년에 한 명의 제자가 깊은 감사를 표현했나요? 일 년에 한 명의 제자가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줬나요? 남은 수 십 명에서 수 백 명을 위해 흘린 선생님의 피 땀 눈물이 다 땅으로 헛되이 떨어진 것 같으시나요? 한 명이 표현했다면 열 명이 마음으로 느낀 거예요. 한 명이 변했다면 열 명이 영향을 받은 거예요. 지금 당장 아이들이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인생을 살아가며 만난 좋은 어른인 선생님을 자신도 모르게 조금은 닮고 배워갔을 거예요.
선생님. 지금은 이렇게 애타게 떠나려는 선생님을 붙잡지만 사실 저도 언제까지 제가 교직에서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대단한 자신도 없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교사들이 떠난 학교에 남겨질 아이들을 생각하면 조금 더 용기와 힘을 내보고 싶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눈에 보이고 돈으로 환산되는 것만이 가치로 여겨지는 물질만능주의와 능력주의 사회지요. 그런데 왜 이렇게 아이들과 청년들이 아플까요. 저는 이 나라의 희망이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현재 열악한 현장 속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선생님들께서 지켜나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선생님, 제가 많이 존경합니다. 선생님이 선생님이 돼주셔서 감사해요. 제 딸과 아들이 앞으로 학교에서 선생님과 같은 선생님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놓입니다. 저는 한 번씩 이 무겁고 고단한 교사의 자리에서 내려와 훨훨 자유로워지고 싶을 때 이렇게 생각해 보곤 합니다. 이 자리가 이토록 무겁고 고단한 이유는 그만큼 큰 영향력이 있는 자리이기 때문일 거라고. 아무나 견딜 수 없기에 아이들에 대한 진심과 뛰어난 역량을 지닌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인 거라고.
선생님께서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교사와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에 우리가 오래오래 함께하기를 기도하며 이만 편지 마칩니다.
-애정을 담아 옥돌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