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담임반 학생이었던 제자에게 문자가 왔다.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J에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 중입니다. 선생님께 받은 도움들이 없었다면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을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하고 취업하고 꼭 찾아뵙고 싶어요.'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문자이기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J는 우리 반 학생 중 형편이 어려운 아이였다. 상담 선생님을 통해 가정에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심리적 어려움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담임인 나에게 알려지기 원하지 않아 심리적 어려움은 상담 선생님께 맡기고 모른 척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서만 도움을 주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장학금을 끌어오려고 노력했다. 교내 장학금과 외부 장학금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학생이 사는 주소지의 주민센터에 연락했다. 고등학교 담임교사로서 이 학생에게 더 해줄 수 있는 지원이 없는지 요청하려고 전화했다고 하자 주민센터에서는 적극적으로 알아봐 주었다. 학생이 고3 때 내가 육아휴직에 들어가서 돌봐주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물론 고3 담임선생님도 최선을 다해 나보다 더 잘 도와주셨을 것이다.
나는 휴직 중이고 학생이 고3이 된 어느 날 내게 혹시 자신의 공부를 도와줄 사람을 알아봐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소극적이고 말이 없던 학생이 내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것은 기억에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고민 끝에 대학생이 된 제자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재학시절 워낙 훌륭한 인성과 태도를 지녔었고 명문대 교육학과에 입학할 정도의 실력을 가졌던 제자라 과외 선생님으로는 어디서 구하기도 힘든 인재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봤다. 절대 선생님 부탁이라고 부담 갖지 말고 혹시 교육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 있으면 도움이 필요한 재학생 한 명이 있어 소개하고 싶다고. 이 기특하고 어여쁜 제자는 자신에게 연락 줘서 너무 감사하다며, 꼭 그런 봉사를 해보고 싶어서 안 그래도 방법을 찾으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을 소개해주었고, 감사하게도 고3이었던 학생은 그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인간적인 마음으로 나는 서운했다. 내 기억에 학생이 내게 별도의 감사 인사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번 담임을 할 때마다 최선을 다해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데, 다섯 명 중 한 명 꼴로 내게 고마움을 표현한다. 담임으로서 적당히 학교에서 안내한 선에서만 도움을 줄 수 있는데 그 이상으로 열심을 내는 내 마음에는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에 더해 학생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컸나 보다. 학생들이 으레 담임은 이렇게 하나보다 생각하는 것이 내가 먼저 수고를 내색하기에는 궁상맞으면서도 좁은 마음에 섭섭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작년 고3 담임을 하면서도 우리 반 학생들의 장학금을 위해 열심을 내었다. 일반적으로 여고생들은 장학금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을 민망해하고 어려운 형편을 내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전과 달리 개인정보보호법과 학생 인권 문제 때문에 먼저 말해주지 않으면 부모님의 직업이나 사는 형편을 교사가 알 수가 없다. 나라에서 지정한 장학금 수혜자 대상자 외에도 갑자기 부모님의 사고나 사망 등의 이유로 극도의 빈곤에 처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본인이 말하지 않으면 교사가 알고 도움을 주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작년에는 처음으로 한 학생이 3월에 내게 찾아와 적극적으로 말했다.
"선생님, 저 장학금 꼭 필요해요! 도와주세요."
실제로 도움이 꼭 필요한 학생이었는데 내가 먼저 나서서 사정을 아는 척하는 것이 아이 마음을 다치게 할까 봐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그런데 학생이 먼저 그렇게 말해주니 나도 힘이 불끈 났다.
"선생님이 우리 Y가 대학 갈 때까지 최선을 다해볼게. 걱정하지 말고 너는 공부만 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만 합격하면 등록금도 학자금 대출되고 생활비도 아르바이트하며 다닐 수 있고, 대학 졸업하고 취업하면 또 다 살아가게 돼. 선생님도 그렇게 살았어. 우리 일 년 힘내보자."
고3 입시 공부를 하며 매달 장학금 신청서와 보고서를 부지런히 써나갔다. 고맙게도 학생은 필요한 서류가 있으면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바로바로 준비해 왔다. 장학금을 주는 재단에 전화해 추가 장학금을 받을 수는 없는지 알아보면 의외로 또 추가로 가능한 경우도 많았다. 여러 개의 장학금으로 일 년 내내 학생이 학원을 다니며 입시 준비를 할 수 있었고, 원하는 대학에 최종합격했다. 그리고 또 내 지인과 전 담임선생님의 지인들을 통해 대학등록금을 모으고, 고3 때 지원해 주신 장학재단 여러 곳에서 학생의 대학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할 의사를 밝혀주셨다. 마지막 장학금 보고서를 작성해 보낸 날, 장학재단 담당자님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올해 선생님께서 학생 챙기는 모습 보며 저를 많이 돌아봤습니다.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장학금 업무를 그저 일로 대했는데, 선생님께서 진심으로 학생을 도우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시는 것 보며 저도 이 일의 보람과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어요. 선생님께서 추천하시는 학생이라면 앞으로 저희 재단에서 최선을 다해 지원할 수 있도록 기록 남겼습니다."
나의 선의와 열심이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이 되었다니 진심으로 격려가 되는 말씀이었다.
겨울 방학 때도 곧 졸업하는 작년 학생의 대학 장학금 추천서를 여러 개 작성하고 챙기면서 곧 졸업하는 학생을 위해 이렇게 애쓰는 게 오버는 아닐까, 학생이 알아는 줄까, 솔직히 조금은 귀찮은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졸업생의 문자를 받고 나니 정신이 퍼뜩 든다.
'나 이거 하려고 교사 되었지.'
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교사가 되었다. 부모 다음으로 아이들을 제일 잘 알고, 부모 다음으로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합법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 그리고 당장 아이들이 몰라줘도 시간이 지나면 나의 노력과 선의를 기억한다는 것을 졸업생의 연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설사 내 진심과 수고를 몰라주더라도, 스쳐가는 인연인 나를 통해 그 학생이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 한 사람의 좋은 어른으로 살아가게 된다면 그것이 내 존재의 기쁨이자 보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마구 도움을 줄 수 있는 내 특권을 마음껏 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