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0월에 쓴 글)
수능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어제 밤새 내가 수능을 치르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수능을 치르는데 그동안 공부한 것이 기억나지 않아 내내 고군분투하며 괴로워했다. 아침에 꿈에서 깨고 나서도 잠시 시간을 갖고 나서야 완전히 꿈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싱숭생숭했다.
나는 고3 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고 계속 모의고사 점수가 오르는 중이었다. 수능 직전까지 수능날을 기대했다. 수능날에는 모의고사와 달리 여러 변수가 있었고 많이 긴장했지만 그래도 수학을 제외한 모든 과목은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다 풀 수 있었다. 그래서 내 학생들에게 수능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과거 자신만만했던 고3인 나의 태도로 아이들을 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꿈이긴 하지만 막상 수능을 본 지 십여 년이 흘러 다시 수능을 보니 수능 시험이 너무나 두렵고 어렵게 느껴졌다. 현재 내가 가르치는 고3 학생들이 이런 압박감을 견디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통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는구나 싶었다.
아침에 이런 꿈을 꾸고 나니 출근하는 내내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동안 내 인생에서 거쳐온 무수한 시험들이 생각났다. 고3 때 중간고사를 치르면서 들었던 감정이 떠올랐다. 고3이 되기까지 거쳐온 수십 번의 중간고사, 기말고사 때마다 가슴을 졸이며 받는 스트레스가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가서도 한 번의 시험이 학점을 좌우하고 이것이 나의 교환학생과 취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며 매 고사기간마다 일주일씩 밤을 새우며 도서관에서 공부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교환학생에 지원하기 위해,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나오지 않는 토플과 텝스 점수를 쥐어짜며 영어 공부를 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대학원에 가서 낮에는 임용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대학원 과제와 시험공부를 하며 캠퍼스 안에서만 생활하던 내가 떠올랐다. 기간제 교사를 하며 4시 이후에 퇴근하면 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가서 밤늦게까지 임용 스터디를 하고 집에 돌아가 또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정교사 임용에 합격하고서야 비로소 시험공부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오늘도 열 명 가까이 반 아이들이 결석을 했다. 수능을 앞두고 마음이 불안하거나 체력이 바닥난 아이들이 각자 집에서 공부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운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이렇게 지켜만 보는 것이 최선일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수시 1차 발표가 시작되면서 지난 9월에 했던 수시상담이 최선이었나 돌아보게 되고 미련이 남았다. 조금 더 안정 지향적으로 수시에 지원할 수 있게 내가 강경하게 대처했어야하지 않을까. 아이들과 학부모가 원하는 대로 지원하게 두는 것에 맞았나. 담임인 내가 어디까지 아이들의 대학 입시를 책임질 수 있나. 괜히 지난 시간을 두고 심란했다.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이 유난히 성실하고 순하다. 이 아이들이 올해 대학 입시가 잘 안 되어도 분명 인생을 잘 살아갈 것이라는 확신은 있지만, 입시에 실패하고 당장 마음 고생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속상할 것 같다. 꼭 각자가 바라던 대로 좋은 입시 결과가 따르면 좋겠다.
내가 대학원생일 때 천재적인 교수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이해가 안 된다는 교수님의 태도. 고작 고등학생 때 공부를 잘했다는 기억으로 내가 내 학생들을 그렇게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싶다. 내가 고등학생 때 공부를 열심히 했던 이유는 나처럼 성적이 낮은 사람도 열심히 노력하니 성적이 오르더라는 말을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어서였는데, 그것 또한 많은 학생들에게는 폭력으로 느껴질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해냈는데 너는 왜 못해내냐는 뉘앙스로. 개구리 올챙이 적 기억하면서 항상 겸손한 어른으로 아이들 옆에 있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