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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지혜 Jan 03. 2021

고등학교 국어교사 어때요?_여학교&학군지편

학군지 여학교에서 근무하며 느낀 점

  나는 학군지의 여고에서만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쳐보았다. 교사가 되기 전 과외활동이나 교육봉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남학생보다는 여학생이 훨씬 편하게 느껴졌다. 중학교 이하의 남학생들은 통제하기가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그리고 남고생들은 수영장에 가자고 조르거나 은근한 스킨십을 시도하는 등 대학생인 나를 이성으로 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불편했다. 학교급에 있어서는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보람이 가장 크게 와 닿았다. 그래서 임용고사 준비를 하면서 만약 사립학교에 지원하게 된다면 여고에서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여고에 적합한 사람인 것을 학교도 아는지 계속해서 여고에서 근무할 기회가 주어졌다. 나 자신이 학군지의 여고를 졸업해서 그런지 여학교의 분위기가 익숙하게 느껴졌고 여고생들의 마음이 잘 이해되었다. 남고나 공립, 그리고 학군지가 아닌 여고에서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없어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몇 곳의 학군지 여고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물론 이는 개인적인 경험과 판단이다.)


-학군지 여고의 분위기


; 학군지 여고에서 가장 크게 체감하는 것은 ‘안전한 분위기’이다. 상대적으로 학교폭력의 정도가 심하지 않고 아이들이 안심하고 학교를 다니는 분위기이다. 목격했던 인상적인 경험은 복도에서 여학생 둘이 싸움이 났는데 한 아이가 ‘우리 아빠 검사거든. 너 고소할 거야.’라고 소리 지르자 다른 아이가 ‘야, 우리 아빠는 유명 로펌 변호사거든. 나도 너 맞고소할 거야!’라며 맞대응하는 것이 아닌가. 충격적이었다. 물론 매번 이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아이들이 능력 있는 부모님의 관심 아래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나 건드리면 우리 부모님이 해결한다는 믿는 구석이랄까. 그래서 대체로 아이들끼리 갈등이 생겨도 말싸움으로 끝났다. 물론 아주 가끔 동급생을 화장실에 끌고 가서 때리거나 벽돌 드는 아이도 있지만 학교 전체적으로 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보니 중학교 때 소위 놀던 아이들도 고등학교에 와서 몸을 사리는 눈치이다. 물론 신체적 폭력 대신 심리적 폭력이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아이들 갈등에 부모님이 개입하는 경우가 많고, 자칫 부모님들 간의 싸움으로 이어지면 법적 공방으로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음으로 특별하다고 느낀 것은 근무하는 ‘교사들의 열정’이다. 물론 어느 지역의 학교들이나 열정적인 선생님들의 노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학군지의 교사들은 기본적으로 사교육 유명 강사들과 비교 대상이 되며 무언의 경쟁상대가 된다. 그들보다 또는 그 못지않은 수준의 수업을 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수업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학군지 교사들은 교과 실력을 기르려고 부단히 노력한다고 느꼈다. 또한 학군지 학교의 교사로서 자부심을 갖는 경우도 많았다. 또 워낙 외국에서 오래 살다 와서 외국어에 능통하거나 뛰어난 수준의 수재들이 매년 입학하다 보니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도 계속 긴장감을 갖고 공부하게 된다. 실제로 학교에서 특출난 강의력으로 소문난 선생님들에게는 꾸준히 외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는 것도 여러 번 보았다.


-학군지 여고의 학업 수준


; 일단 거의 모든 학생들이 학업에 적극적이고 열의가 있다. 수업 중 누가 발표하겠냐고 물으면 학생 전원이 다 손을 들기 때문에 가위바위보를 시켜 한 명을 뽑아야 할 정도이다. 수행평가를 포기하는 학생을 보기 힘들다. 수업시간에 대놓고 자는 학생도 보기 어렵다. 청소년인 만큼 또래 집단의 분위기에 많이 좌우되는 시기라 그런지 주위 친구들 따라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열심이니 교사도 덩달아 열심을 내게 된다.

  또한 아이들이 매우 꼼꼼하고 집요한 면이 있다. 우선 성적을 관리할 때 가장 그러한데, 수행평가 점수를 받으면 어떤 평가 기준에 의해 이런 점수를 받았는지 꼭 확인한다. 시험문제도 아주 작은 여지가 있으면 끝까지 따지는 편이다. 다른 학교에서 온 선생님들이 학군지 여고에 왔을 때 제일 당황하는 시기도 시험 성적 확인 기간일 정도로 성적에 예민하다. 교사로서 그런 면이 힘들 때가 있지만, 가끔 꼼꼼한 학생들 중에는 논문을 찾아봐야 할 정도로 깊이 있는 질문을 갖고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교사도 같이 긴장해서 더 세심하게 연구하게 된다. 

  그리고 학군지 여고는 학생과 학부모 모두 대입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다. 다른 학교들에 비해 대체로 입시 성적이 좋긴 하지만 거의 모든 학생들이 SKY와 인서울을 기대한다. 특히 학부모 본인의 학벌이나 스펙이 좋다 보니 자녀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재수하는 학생이 절반 또는 그 이상이다.

  이렇게 학업에 대한 부담이 크다 보니 학생들이 학업 스트레스를 많이 호소한다. 한 번은 혼자 교무실에 남아 야근하는데 한 학생이 달려와서 자기 친구가 화장실에 갇혀있는데 도와달라는 문자가 왔다고 같이 가달라고 했다. 이미 어둡고 사람도 없는 학교에 외부인이 침입했을까 덜덜 떨면서 화장실로 가보았는데 화장실 문 밖에 다른 학생이 화장실을 다 때려 부수고 있었다. 일단 그 학생을 진정시키고 화장실 칸 안에 갇혀있는 학생을 빼냈다. 칸 안에 있던 학생은 외부인이 침입한 줄 알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알고 보니 부모의 성적 압박에 큰 스트레스를 받던 다른 학생이 학교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화장실에 들어가 기물을 파손하며 화를 풀고 있었던 거였다. 여고 근무 첫 달에 일어난 일이라 많이 놀랐었는데 이후에도 이 정도로 극단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다.

 


-여학생들의 성격


; 여학생들은 정말 낙엽만 굴러도 까르르 웃는다. 쉬는 시간 내내 복도에서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수다 떨며 그렇게 즐겁게 웃는다. 수업 시간에도 작은 농담 하나에 빵빵 터진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학생들의 면모이다. 아이들과 있으면 어느새 나도 사소한 것에도 잘 웃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여학생들끼리 모여 있다 보니 더 여성 주체적인 태도를 많이 지니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페미니즘 또는 성평등 이슈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아이들부터 여성으로서의 제약을 느끼지 않고 큰 포부를 갖는 아이들까지 참 당차고 멋지다. 그래서 아이들의 미래가 기대가 많이 된다.

  또한 여학생들은 끼가 많다. 예전에 비해 판 깔아주면 바로 나가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아이들이 정말 많아졌다. 자신의 끼와 장점을 드러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물론 여전히 친구들 앞에서 국어책 읽는 것만도 얼굴이 빨개지는 내성적인 아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점점 더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끼를 펼치는 것을 즐기는 분위기로 변화하고 있다고 느낀다.

  나아가 여학생들은 표현을 잘한다. 이벤트도 잘 챙겨주고 좋아하는 마음을 말이나 편지로 정성스럽게 표현해서 감동을 준다. 특히 남자 선생님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인기 순위로 보면 ‘젊은 남자 선생님> 나이든 남자 선생님>>>>여자 선생님’인 느낌이랄까. 처음엔 좀 서운했는데 이제 포기했다. 너무 대놓고 차별해서. 흥.

  같은 맥락에서 여학생들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동시에 예민하다. 교사의 한마디 말, 한 번의 눈빛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큰 변화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한 가지가 마음에 안 들면 완전 돌아서서 마음을 닫는다. 그래서 학생들 대하기가  조심스럽다.

  끝으로 여학생들은 교우관계로 엄청 너무 많이 고민을 한다. 거의 모든 상담 요청과 학교 문제가 교우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 년 내내 친했다가 싸웠다가 좋았다가 싫었다가 거의 드라마 한 편을 찍는다. 관계가 너무 많이 바뀌어서 누가 누구의 절친이고 원수인지 헷갈린다. 나 또한 사춘기 때 제일 큰 고민이 친구 문제였기 때문에 이해가 되면서도 부모님들까지 껴서 관계 문제로 갈등이 이어지면 교사로서 너무 지친다.


-학군지 여고의 학부모


; 학군지 여학교에서 제일 놀랐던 점 중에 하나가 학부모이다. 일단 아이들은 ‘엄마에게 전화한다’는 말을 제일 무서워한다. 혼내더라도 엄마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학교에 건의 사항이 있으면 직접 말하지 않고 엄마를 통해 전달하는 아이들이 꽤 있다. 매번 근무하는 학교마다 여름만 되면 그렇게 교무실에 전화가 왔다. ‘몇 학년 몇 반 춥다는데 에어컨 좀 꺼달라, 아니 덥다는데 켜달라’. 심한 학교는 정말 끊이지 않고 매시간 전화가 왔다.

  그리고 시험 때 문제가 생기거나 교사와 학생 간 갈등이 생겼을 때 학부모님들 중에 ‘내가 그 과목 교수인데’로 나오는 분들이 학교마다 있었다. 학부모들의 학력이 워낙 높다 보니 교사를 아래로 보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번은 생기부를 잘 쓰는 법에 대한 책들을 모아 택배로 보낸 학부모가 있었다. 공부해서 제대로 생기부 쓰라는 거였다. 황당했다. 더 나아가 교사를 못 믿고 대치동에서 몇 백만 원짜리 생기부를 써서 이대로 써달라고 요구한 학부모도 있었다. 그 사실을 그대로 생기부에 적고 싶었다. 하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많은 부모님들이 교양 있고 예의를 갖추신다. 또한 자녀에게 애정과 관심을 갖고 좋은 부모가 되고자 부단히 애쓰신다. 한 학부모님은 내가 고2 때 담임을 했는데 학생이 졸업한 이후 찾아오셔서 그때 잘 지도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가셨다. 어떤 학부모님들은 학년이 올라갈 때 정성 어린 긴 편지로 감사인사를 해주셨다. 그런 학부모님들을 만나며 나도 배운다. 그래서 내 아이의 선생님들께 더 감사를 표현하고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하며 따라 하게 된다. 


  글을 쓰다 보니 학군지 여고에서 근무하며 힘들었던 날들에 대한 하소연이 길어졌지만, 사실 나는 학군지에서 여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수업에 열의를 갖고 눈을 빛내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행운이다. 그리고 부모의 기대와 입시 스트레스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아이들을 옆에서 도울 수 있어 다행이다. 좋은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 멈추지 않고 계속 애쓰고 싶다. 그래서 나와 함께 여고시절을 보낸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자기답게 당차게 살아가는 것을, 그리고 여고생 때 본인이 믿고 바라던 그 삶을 살아내는 것을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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