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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지혜 Aug 07. 2021

학부모가 되고서야 학부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한때 나는 학부모를 혼내는 교사였다

  오랜만에 예전에 기간제 교사로 함께 일했던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교직을 떠나 개인 과외 수업을 하고 있다. 교직생활과 전업 과외 생활은 어떻게 다른지 흥미진진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 끝에 교직에서도 과외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큰 스트레스가 학부모를 상대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리고 우리를 힘들게 했던 학부모들에 대해 말하며 공감과 위로를 나누었다. 그 끝에 내가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 저는 사실 이번에 둘째 낳고 육아 휴직하면서 내가 만났던 학부모들 생각이 그렇게 많이 나더라고요. 아이 낳기 전에 저는 정말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만 보고 학부모를 쉽게 판단하고 비난했어요. 나보다 스무 살은 더 많은 학부모들을 혼내듯 상담한 적도 있고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그 엄마는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그 마음이 헤아려지더라고요. 복직하면 학부모들에게 더 친절히 대하고 말을 조심하려고요."


  우리 반에 체대를 지망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지각하지 않는 날보다 지각하는 날이 더 많았다. 그 학생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좋고 체육 실기 실력도 우수했다. 하지만 체대 입시는 성실함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무단 지각이 쌓이면 대입에 좋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학생에게 객관적인 대학 입시 자료들을 보여주며 이성적으로 설명도 해보고, 단호하게 혼내기도 하고, 어린아이 달래듯 설득도 해보았지만 무단 지각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매 학부모에게 전화해서 아이 좀 깨워 보내달라고 당부하는 일이 이어졌다. 그러면 어머님은 본인도 아이를 못 이긴다며 전화 너머로 흐느껴 우셨다. 그런 어머님을 나는 답답해하며 "어머님, 그래도 어머님 딸인데 어머님이 깨워서 보내셔야죠."라고 말하며 다그쳤다. 그리고 지금은 그 시간을 후회한다. 나는 다섯 살 딸 고집을 못 이겨 한여름에 긴 바지를 입혀 유치원에 보낸 적도 있다. 하물며 열여덟 살 딸이 학교 가기 싫다고 문닫아걸고 자면 엄마가 업어서 학교에 올 수도 없는 일일 테다. 그때 어머님의 지친 마음에 공감하고 격려해드렸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다시 그런 상황을 만난다면 학부모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어머님, 자식이 참 뜻대로 안 되죠. 누구보다 어머님이 걱정 크실 거 같아요. 그래도 **가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고 실력도 있으니 철들면 잘 살아나갈 거예요. 저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잘 격려하며 가르쳐볼게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어머님께 한 번씩 전화드리는 것 이해해주세요."


  아이공부 욕심보다 엄마의 의욕이 더 앞서는 학부모들에게도 차가운 눈빛을 보내며 매정한 말들을 참 많이 했다. "어머님, 그러다 아이 마음 다쳐서 성적까지 망가지는 경우 여럿 봤어요.", "아이는 연고대만 가도 잘 갔다고 생각한다는데 어머님은 서울대를 꼭 보내셔야겠다고요?", "아이가 자해까지 하는데 꼭 그렇게까지 하셔야겠어요?" 물론 정서적 학대에 가깝게 아이를 괴롭히는 학부모들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상담 선생님과 교감님을 대동해 함께 학부모에게 단호하게 말하곤 한다. 그런데 다섯 살 내 딸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쳐야 하나 영어를 가르쳐야 하나 조바심을 내는 나를 보며 아이들의 의욕보다 더 앞서가는 학부모들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3년 내가 나서서 아이를 이끌어주면 앞으로 평생 더 편안한 삶을 살지 않을까, 악역인 줄 알면서도 악역을 자처해야겠다, 나중에는 아이도 고맙게 생각하겠지.'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다. 전에는 그런 학부모의 마음을 그저 부모 욕심으로 한심하게만 바라봤다. 물론 정도가 있어야겠지만 그 또한 자식에 대한 사랑과 열정임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열성 부모들의 노력이 아이들을 망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못지않게 아이들의 입시 만족도로 이어지는 것도 매년 본다. 그러니 함부로 그들에게 잘못되었다 말하기 어렵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때때로 우리 반 학부모님들께 "어머님, 도대체 어떻게 아이를 키우셨기에 아이가 이렇게 훌륭하게 컸나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이를 키워보니 그때보다 그 부모님들이 더욱 위대하게 느껴진다. 아이 키우기가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그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그토록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돼주었을까. 내가 질문을 드렸던 학부모님들의 대다수가 '어릴 적부터 아이와 대화를 자주 했다'는 말을 하셨다. 특히 그중에는 '아이가 아빠와의 대화 시간이 길다'는 대답이 많았다.


  국어교육을 석사까지 전공하고 직업이 교사인 엄마도 이렇게 흔들리며 아이를 키우는데 내가 만나는 수많은 학부모님들도 고등학생 자녀의 부모는 처음이라는 것을 예전의 나는 왜 몰랐을까. 나는 무조건 학생 편에 서는 교사가 좋은 교사인 줄 착각했다. 물론 집안의 권력관계에서 학생이 약자이기에 나는 학생들을 더욱 살뜰히 돌보아야 한다. 하지만 학부모는 나보다 열 배는 더 내 학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교사에게 학부모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같은 편이 되어 학생을 행복하고 좋은 사람으로 키워내야 하는 관계이다. 앞으로는 그 마음 꼭 기억하고 싶다. 학생을 가르치며 느끼는 기쁨과 보람뿐만이 아니라 많은 고민과 좌절, 어려움들도 학부모들과 공감하고 격려하고 싶다. 부디 이제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선생님으로서 학교에서 새로운 배움과 성장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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