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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지혜 Oct 15. 2021

학교로 복직 한 달, 수업하며 느끼는 것들

아직은 힘들지만 이만하면 괜찮은 걸로

-아침에 출근하면 업무 메신저인 쿨 메시지가 많으면 세 개 정도, 어떤 날은 단 한 개도 없다. 담임일 때는 아침마다 열 개는 족히 넘는 쿨메시지들을 처리하느라 아침 조례 전에 늘 분주했는데, 비담임은 정말 아름답다.


-내 생애 이런 훌륭한 시간표를 만나다니... 주 3일이나 2교시다!!! 매일같이 1교시에 수업이 있었던 지난날들과 비교해 아침 시간이 훨씬 여유 있다. 특히 아침독서반을 맡아서 7시 30분까지 학교에 도착하니 더욱 아침이 길다. 일어나는 건 힘들지만 이 여유는 좋다. 다만 아침에도 출근 시간 이전에 주어진 업무 때문에 일찍 학교에 나온 것은 초과근무로 인정해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나는 왜 돈 안 받고는 일을 안 하겠다는 깡이 없는가.) 과목들도 매번 담임하며 두 학년의 두 과목이 기본이었는데 이번에는 세 과목 중 실제 수업 준비에 공들일 과목은 하나뿐이다. 이런 시간표와 일정, 낯설지만 행복하다(우리 자주 만나자).


-학교에 돌아와 보니 학생들의 생활태도나 수업태도가 이전과 비교해서 많이 무너져있어 매번 놀란다. 점점 더 학생들의 인성 지도가 녹록지 않고 피로한 과정들(학부모의 항의나 학생들의 반감)이 뒤따르다 보니 선생님들도 적당히 눈 감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니 꾸준히 학생들과 라포를 형성하며 생활지도를 하는 것이 더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사회에 나가 한 사람의 성인으로 살아갈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성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고등학교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담임교사의 생활 지도와 각 교과 수업에서 인성 교육을 녹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문학과 글쓰기는 대학에서도 인성 교육의 수단으로 쓰일 만큼 효과적인 도구다. 내 수업에서 시험을 위한 지식 전달만 하지 않도록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리 기도하며 큰 그림을 그려야겠다. 문학은 특히 타인과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하기에 좋고, 글쓰기는 자기 자신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는 데 유익하다. 이번 주 수업에서 내가 적용해 본 예시이다.


  수업 시간에 분단소설을 설명하며 ‘이건 분단의 아픔을 경험한 가족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야’로 시작하는 순간 지루해진다. 분단은 이미 학생들의 삶과 너무나 멀게 느끼는 주제니까. 하지만 내가 '너희가 어느 날 집에서 엄마랑 빨래를 개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무장 강도가 들어와서 엄마를 총으로 쏴 죽였어. 말로 내뱉는 것만으로도 끔찍하지. 그런 일을 겪고 살아가면 어떨까. 엄마를 나서서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때 그 강도를 마주한 공포감, 평생 잊기 힘든 장면에 대한 트라우마를 죽는 순간까지 가져가겠지? 오늘은 눈앞에서 아들이 북한군 총에 맞아 죽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와 그 딸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거야. 이 소설은 감정을 표현한 서술어가 많아. 나라면 어땠을까 인물들의 감정을 들여다보며 읽으면 더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면 학생들은 조금 더 진지한 눈빛이 되어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늘 업무와 수업 준비로 분주하지만, 그래도 항상 잠깐 멈춰 서서 한 번 더 수업의 본질과 목적을 생각해보자.


-나름대로 바뀐 학교에 부지런히 적응하고 있다. 업무 시스템도 거의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할 정도로 새로 아이디를 만들고 사용법을 익혀야 하는 시스템이 많고, 수업을 할 때도 크롬북, 태블릿 피씨, 전자칠판 등 전원 켜는 방법부터 하나씩 익히느라 정신이 없다. 학생들에게도 선생님이 한 달 내에 빠르게 익혀나갈 테니 조금만 양해해달라고 말하며 꽤 빠르게 새로운 방식의 학교 업무와 수업에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수업 필기 중에 갑자기 태블릿 위에 있던 펜이 사라지고 필기가 되지 않았다. 순간 당황해서 다른 학생에게 물어보고 다시 화면에서 사라진 펜을 찾아 필기에 들어가는데 5분 정도를 지체했다. 그 이전에는 출석을 부르고, 진도 계획을 안내하고, 대단원을 살펴보느라 도입 시간을 좀 썼다. 간신히 펜을 찾아 다시 안도하며 수업을 하려는데 맨 앞자리 학생이 내가 들릴 정도로 한숨을 푹 쉬더니 '수업을 시작하는데만 20분이네.'라고 중얼거렸다. 순간 너무나 당황스럽고 서운하고 괘씸한 마음이 확 몰려왔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관리를 하며 "그래, 우리 얼른 수업에 들어가자" 말하고 바로 본문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내내 그 말이 생각났다. 나름 열심히 적응 중인데 작은 실수로 확 위축된 기분이 들었다. 집에 가서 퇴근한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속상한 마음에 울컥해서 눈물을 글썽였다.(요즘 남편 앞에서 자주 눈물을 보인다) 다음 날 생각해보니 나의 실수는 얼마든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고, 소리 내어 말한 아이는 미성숙하게 느껴졌다. 맞다. 나는 아직 미성숙한 미성년자를 가르치는 성인인 교사였지 생각하니 마음이 금세 차분해졌다. 다음번에 같은 상황에서는 학생에게 더 분명하게 "선생님이 얼른 기기 익숙해지도록 노력할게. 그렇지만 그렇게 소리 내서 말하니 선생님이 민망하네."라고 말해줘야겠다. 아이 낳고 더 강단이 생겼을 줄 알았는데 감정만 더 여려진 것 같다.


-한 달 동안 격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했다. 막상 오프 때 만나니 온라인 때보다 훨씬 더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기 편했다. 너무 보고 싶었다며 애정을 마구 표현했다. 그중에는 살가운 학생 몇 명이 수업 전에 내 교무실로 와서 "선생님, 뭐 도와드릴 건 없어요? 같이 교실로 가요."라고 말해주며 수업용 프린트를 나눠 들어준다. 예쁘고 고맙다. 전에는 학생들과 만나면 쉴 새 없이 대화가 끊기지 않았는데 요즘은 아직 어색해서 그런 내가 나이가 든 건지 학생들과 대화할 때 어색하다. 일단 요즘 아이돌을 하나도 모른다. 아이 낳기 전에는 학생들과 소통하려고 일부러 요즘 아이돌들 노래를 찾아 듣고 이름도 외웠는데 이제는 뽀로로와 시크릿 쥬쥬 노래만 (강제로) 듣는 아기 엄마가 다 되어있다. 엄마 선생님이라 그 전보다 아이들과 소통이 조금 멀어졌을 수도 있지만 내 자녀 대하듯 학생을, 학생 대하듯 내 자녀 대하면서 엄마 선생님의 장점을 발휘해보기로. 


-그래도 첫 마음을 다시 생각한다. 교사가 되었을 때 어떤 교사가 되고 싶었나. 학생들 편에 서서 믿어주고 싶었다. 학생 때 내 편이 되어주는 선생님들이 참 고마웠기에. 코로나로 학생들 태도가 무너져있다고 탓하기 전에 학생들을 긍휼 하게 여기자. 한참 여고시절 누리고 친구들과 매일같이 만나 우정을 나누며 공부의 깊이를 알아갈 때에 코로나로 인해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온라인 수업을 하고, 친구들과 급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지도 못한다. 그런 아이들을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고 더 잘해줘야지. 우리 아이들, 코로나에도 잘 커갈 테니 걱정 말라며 마구 격려해줘야겠다. 


-첫째 때는 복직 한 달만에 적응완료했다며 신이 나서 쓴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둘째 복직은 그렇지 않다. 코로나로 학교도 많이 달라졌지만, 이제 하나가 아닌 두 아이를 챙기며 직장생활을 하려니 생각보다 더 녹록지 않다. 양가 어머님의 하원 도움도 없는데 남편도 야근하는 날, 퇴근을 하자마자 부랴부랴 집에 달려가 두 아이를 각각 하원하고 놀이터에서 놀리다가 집에 와서 밥을 차려 먹이고, 셋이 화장실에 들어가 같이 목욜을 하고, 재우고, 내일 등원과 출근할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내 입에서 "아, 개빡세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친구에게 이 말을 하자 네 입에서 그 정도 험한 말 나왔으면 힘든 정도가 알만 하다고 한다. 그래도 차근차근 적응해나가고 있다. 내 마음에 큰 힘이 되었던 상담 선생님의 말을 되새겨본다. "옥돌샘은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게 더 나아질 거예요. 아이들은 커갈 거고, 돈은 더 많이 벌거고, 경력은 쌓여갈 거예요. 그러니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다 생각하고 내가 힘든 건 당연하다 여기세요." 두 번째 복직을 한지 한 달. 이만하면 잘 해내고 있다고 스스로 토닥토닥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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