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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지혜 Oct 20. 2021

시험 출제 기간마다 악몽을 꾼다

평생 시험으로 고통받아야 하는가

 누군가 내게 교사로서 가장 힘든 부분이 뭐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단연코 나의 교직 스트레스 1위는 '시험출제'라고 대답한다. 복직하고 첫 시험기간을 다시 맞이한 요즘. 또다시 악몽을 꾸기 시작한다.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악몽을 꾸고 잠꼬대를 한다. 나도 힘들지만 옆에서 함께 자는 가족들도 화들짝 놀라기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육아휴직 때마다 단 한 번도 악몽을 꾼 적이 없는 나는 학교에서 일할 때면 한 번씩 꿈을 꾼다. 우리반 학생이 자해를 했을 때면 그 학생이 죽는 꿈을 꾸며 밤새 괴로워한다. 수업에 들어간 학생이 대든 날이면 꿈에서 그 아이와의 설전이 반복된다. 그리고 시험 출제기간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악몽을 꾼다. 

  악몽의 내용은 모두 시험과 관련되었지만 상황은 가지각색이다. 시험이 끝난 후 내가 가르치지 않은 곳에서 문제가 나왔다며 학생들이 항의하는 상황, 시험이 끝난 후 선생님에게 신뢰를 잃었다며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는 상황, 내가 낸 시험문제 오류로 재시험을 치르게 되어 교사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실력 없는 교사로 평판 나는 상황 등등. 

  국어과와 영어과는 학교에서 가장 먼저 출제회의를 시작해서 가장 마지막에 시험지를 제출한다. 둘 다 언어과목 특성상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많고 문제 오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 출제 기간부터 시험이 완전히 마치고 성적이 마감될 때까지 언어과 선생님들은 신경이 곤두선다. 혹시 시험문제가 다르게 해석될 여지는 없는지,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으로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인지, 동시에 한 반에 절반 이상이 국어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이 문제를 풀었을 때 1등급 4%가 확보되는 난이도의 시험수준인지, 항의 대상이 될 소지는 없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이 시간이 반복되다 보니 정말이지 이제는 시험기간마다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다. 

  시험문제 출제 스트레스는 모든 교사들이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느끼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국어과와 영어과 선생님들은 특히 더 어려움을 느끼니 보편적인 스트레스라는 것을 안다. 

  

  거기에 더해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학군지에 있다보니 시험이 끝난 후에 학생들이 학원 선생님들을 등에 업고 지나치게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경우가 잦은 것도 부담을 가중시킨다. 내 마음 속에 학생들이 다니는 학원의 선생님들보다 학교 선생님으로서 실력이 뒤지지 않아야한다고, 혹은 그렇게 보여야한다는 부담이 큰 것 같다. 일종의 교사로서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시험기간마다 발동되는 나의 지나친 완벽주의이다. 시험문제를 완벽하게 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시험문제가 잘못되었을 때의 상황들을 지나치게 확대해서 상상하고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내 생각과 마음이 문제이다. 나는 시험문제와 관련해 조금이라도 항의가 들어오면 마음이 극도로 긴장되고, 수치감을 느낀다. 마치 시험 문제가 곧 교사인 나 자신의 실력 전부라고 스스로 여기는 듯하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교사 간에 서로의 실력을 미루어 짐작하는 외적인 것들이 시험 문제나 방과후수업 학생 수라서 그런 듯하다. 그러나 교사도 다양한 역량이 있다. 담임반을 잘 지도하는 역량, 대입을 잘 끌고가는 역량, 지식전달을 효과적으로 하는 역량, 학생들이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하도록 돕는 영량, 심리적 위기를 겪는 학생들을 잘 위로하는 역량, 행정업무나 학생들의 여러 수업 외 프로젝트 기획에 뛰어난 역량 등. 출제는 수많은 교사의 역량 중 일부분일 뿐인데 출제가 곧 교사 역량의 전부인듯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은 잘못되었다. 

  학교에서 재시험을 보는 일들이 늘고 있다. 갈수록 평가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모두가 평가에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험 출제 스트레스 때문에 정년까지 교사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선배 선생님들 말씀으로는 경험이 쌓여갈수록 오히려 다양한 변수를 알다보니 출제 스트레스가 더 커져간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내가 교직생활을 계속해나가기 위해서는 감당하고 관리해야하는 스트레스이다. 긴장감을 갖고 시험 출제를 하되 그 과정과 결과에서 적당히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는 훈련을 해나가야겠다. 교사는 참 자기 마음을 잘 닦아나가야하는 직업이라는 것을 이렇게 또 한 번 느낀다. 

  이 십 년간 학생으로 시험 문제를 푸느라 괴로웠는데, 이제 또 삼 십 년간 교사로 시험을 출제하며 괴롭다니. 시험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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