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 <남산, 11월>
첫째 딸 봄이가 내게 오더니 책장 위에서 뭐 좀 꺼내 달라고 한다. 봄이 손을 잡고 따라 가보니 책장 위에 내가 아끼는 마스킹 테이프들을 모아둔 박스가 보였다. "저거 꺼내 달라고?" 그러자 봄이가 힘껏 고개를 끄덕인다. 저 높이 있는 게 어떻게 아이 눈에 띄었을지 모르지만 뭔가 색깔이 알록달록한 것들이 슬쩍 보이니 궁금했나 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예쁜 편지지나 스티커를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어 마스킹 테이프까지 모으고 있었다. 마스킹 테이프를 꺼내 주면 봄이가 여기저기 장난칠 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 엄마가 아끼는 거라 안 된다고 말할까 하다가 아끼는 것을 가장 아끼는 우리 딸에게 내어줘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 순순히 꺼내 주었다. 봄이는 "우와~"하고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더니, 이내 자기 방에서 스케치북을 가져왔다. "엄마, 나 이거 갖고 놀아도 돼요?" 묻는 봄이에게 "그래"하고 선뜻 허락해주었다. 봄이는 신나게 여러 마스킹 테이프를 뜯어 스케치북을 꾸몄다. 봄이가 가지고 노는 여러 마스킹 테이프를 보며 '저건 봄이와 처음 연희동 구경 갔을 때 산 건데, 저건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만들어보려고 산 건데, 그리고 저건...'하고 마스킹 테이프와 관련된 기억들이 하나둘 생각났다. 그리고 봄이가 '강물, 햇살, 달...'과 같은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이 쓰여있는 나의 최애 마스킹 테이프를 꺼내 들었을 때 내 마음에 몽글몽글 행복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재작년 고3 문학을 가르칠 때 일이다. 수업 교재 하나로 수업 준비를 하고 또 여러 반 수업을 돌며 하도 폈다 접었다 했더니 모서리가 해졌다. 책이 너덜너덜하니 왠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아름다운 단어들이 적혀있는 파스텔톤 마스킹 테이프로 책 모서리를 잘 포장했다. 그랬더니 꽤 근사한 책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의미 있는 나의 책이 된 기분이 들었다. 책을 들고 수업을 하러 갔더니 역시나 섬세하고 예쁜 걸 좋아하는 여고생들이 물었다. "어, 선생님, 책이 뭔가 바뀌었어요~ 그게 뭐예요?" 괜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해주고 싶은 말이 떠올라 얘기했다.
"이거 책이 너무 해져서 샘이 갖고 있는 마스킹 테이프로 포장한 거야! 여기에 '강물, 햇살, 달...'이런 단어들이 적혀있어. 예쁘지? 너희도 어떤 과목이 싫어질 때나 어렵다고 느껴지는 책이 있으면 이렇게 꾸며봐. 나는 고3 때 수학이랑 근현대사가 참 어렵게 느껴졌거든. 그래서 정리노트 첫 장에 짧은 편지를 썼어. 예를 들면 '수학아, 나는 너랑 정말 친해지고 싶어. 우리 잘 지내보자. 네가 아무리 나를 밀어내도 나는 어떻게든 너를 알아갈 생각이야. 그러니 마음을 열어줘' 이런. 그리고 근현대사 노트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을 오려 붙여놓기도 하고. 되게 오글거리고 할 일 없어 보이지? 그래도 그렇게 해두고 책을 필 때마다 보다 보니 처음에는 꼴 보기 싫던 과목에도 점점 애정이 생기더라고. 선생님한테 이 마스킹 테이프 남아있으니까 원하는 사람은 수업 마치고 와서 붙여도 좋아."
그렇게 수업을 마쳤을 때 나의 예상과 달리 아이들은 긴 줄을 섰고 그 자리에서 마스킹 테이프가 동이 났다. 그래도 소소한 걸로 헤헤 거리며 좋아하는 아이들 얼굴을 보니 마스킹 테이프가 전혀 아까지 않고 괜한 뿌듯함이 들었다. 그리고 이 시가 떠올랐다.
단풍 든 나무의 겨드랑이에 햇빛이 있다. 왼편, 오른편.
햇빛은 단풍 든 나무의 앞에 있고 뒤에도 있다.
우듬지에 있고 가슴께에 있고 뿌리께에 있다.
단풍 든 나무의 안과 밖, 이파리들, 속이파리,
사이사이, 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가 있다.
단풍 든 나무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다.
단풍 든 나무가 한없이 붉고, 노랗고, 한없이 환하다.
그지없이 맑고 그지없이 순하고 그지없이 따스하다.
단풍 든 나무가 햇빛을 담쑥 안고 있다.
행복에 겨워 찰랑거리며.
싸늘한 바람이 뒤바람이
햇빛을 켠 단풍나무 주위를 쉴 새 없이 서성인다.
이 벤치 저 벤치에서 남자들이
가랑잎처럼 꼬부리고 잠을 자고 있다.
-황인숙, <남산, 11월>
이 시를 읽고 있으면 11월 남산의 노오랗고 빨간 단풍들 사이사이 반짝이는 햇빛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 반짝임이 춤추는 모습이 마치 '찰랑거리는 행복'처럼 느껴진다. 학생들과 있을 때 나는 이 시에서 말하는 '환하고, 맑고, 순하고, 따스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리고 종종 같이 '행복에 겨워 찰랑거리는' 순간을 만난다. 그럴 때 나는 충만해진다. 이 충만함 때문에 그토록 교사라는 직업을 꿈꿔왔구나 싶다. 나는 내 마스킹 테이프 하나로 여럿이 소소한 행복을 누렸으니 그걸로 되었다며 만족했다.
그런데 다음날 출근을 하니 내 책상에 어제 내가 쓴 것과 똑같은 마스킹 테이프와 쪽지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선생님, 어제 저희 때문에 아끼는 마스킹 테이프 전부 다 쓰셨죠? 마침 서점에 갔다가 같은 걸 발견해서 사 왔어요. 다른 반 친구들에게도 이 행복을 나눠주세요. 감사합니다'.
뭐, 이 정도로 사랑스러울 필요까지 있을까. 학교에서 때때로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이 나의 모든 정성과 애씀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아이들도 만난다. 그러나 한 번씩 아이들이 이렇게 예쁜 짓을 하면 그 채워진 기쁨으로 또 아침에 눈을 뜨면 학교에 가고 싶어 진다.
이렇게 맑고 고운 아이들을 매일 만나며 일 할 수 있다니, 얼마나 큰 복인가. 사람은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을 닮아간다는데 나도 매일같이 만나는 이 아이들을 닮아가고 싶다. 부디 우리, 오래오래, 학교에서, 함께, 이렇게 행복에 찰랑거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