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자랑이어라

김승일, <나의 자랑 이랑>

by 옥돌의 지혜


평소에 아껴뒀다가 스승의 날이면 학생들에게 읽어주는 시가 있다. 바로 김승일의 <나의 자랑 이랑>인데, 내가 늘 내 학생들을 보며 드는 마음이 담겨 있어 읽을 때마다 좋다.


(전략)
노래를 부르는
랑아
너와 나는 여섯 종류로
인간들을 분류했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아
막 박수치면서,
네가 나를
선한 사람에
끼워 주기를 바랐지만
막상 네가 나더러 선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 나는 다른 게 되고 싶었어. 이를테면
너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
나로 인해서,
너는 누군가의 자랑이 되고
어느 날 네가 또 슬피 울 때, 네가 기억하기를
네가 나의 자랑이란 걸
기억력이 좋은 네가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얼쩡거렸지

-김승일, <나의 자랑 이랑> 중에서


누군가의 자랑이라는 것은 언제 들어도 참 기분 좋은 말이면서도 항상 듣고 싶은 말인 것 같다.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고,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고, 학생들에게 자랑스러운 선생님이 되고 싶다. 어버이날 카드에 부모님께 '아빠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려고 노력할게요'라는 말을 어려서부터 종종 적었던 것 같다. 아마 나는 내가 어떤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부모님께 비로소 자랑스러운 딸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학생들을 만나며 생각이 달라졌다. 내 학생들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내게 이미 자랑이기 때문이다. 본인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보배로운지 스스로는 모를지라도 내 눈에는 보인다. 아마 나도 부모님에게 언제나 자랑스러운 딸이었을 것이다. 나만 몰랐을 뿐.


나는 이상하게 여고생들이 그렇게 예쁘다. 다른 학생들도 예쁘지만 여고생들을 볼 때는 하트 콩깍지가 씐다. 물론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제일 예쁘지만 길을 가다가도 여고생들을 보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아마도 나의 인생에서 여고시절이 행복하고 소중한 시기로 기억되기 때문인 것 같다. 여고생들 특유의 낙엽 하나 떨어져도 까르르 웃는 밝고 맑은 기운이 참 좋다. 아무튼 그렇게 예쁜 나의 학생들을 매일 만나면서 나는 자주 감탄한다. 한 반에 서른 명이 넘는데 아무도 지각하지 않은 날 출석체크를 하며 말한다. "와, 나는 학생 때 아침에 일어나기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우리 반은 어떻게 한 명도 늦지 않을 수 있지? 너네 너무 대단해." 수업 시간에 졸지 않으려고 뒤에 나가서 서서 공부하는 학생을 보면 또 말한다. "와, 나는 선생님한테 안 들키는 각도로 어떻게 잠들 수 있을까 고민했었는데 어떻게 스스로 잠을 깨려고 서서 수업을 듣지? 훌륭하다." 이런 사소한 것들 외에도 아이들이 기특하다 못해 자랑스럽기까지 한 순간은 너무 많다.


누가 남으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학급 환경미화 날이면 끝까지 남아서 뒷정리를 하고 가는 아이, 자기가 좋아하는 춤을 전공하고 싶어서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마다 복도 끝에서 매일같이 홀로 춤을 연습하는 아이, 뒤늦게 꿈을 갖고 매일같이 공부 계획을 짜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려고 애쓰는 아이, 운동부에서 힘든 훈련을 받으면서도 수업 시간에 절대 졸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주고 있는 아이, 자기가 정리한 노트필기를 복사해서 다른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들고 오는 아이, 내가 수업 때마다 읽어주는 시가 너무 좋다며 자기가 좋아하는 시를 쪽지에 적어서 내 책상에 두고 가는 아이, 내가 예쁜 옷을 입은 날을 기억했다가 그림으로 그려온 아이, 친구가 다쳤을 때 티 내지도 않고 조용히 집까지 가방을 들어 다 준 아이, 수업 끝나고 따라 나와 오늘 수업 정말 좋았다며 엄지 척 들어주는 아이 등 매일 나에게 기쁨을 주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그냥 수업 시간에 해사하게 웃으며 나를 맞아주기만 해도 '아고 예쁜 것들'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아이들은 정말로 각자 배울만한 장점들이 있다. 물론 아이들에게 자주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때때로 얼굴을 붉혀가며 혼내기도 한다. 어떤 아이는 정말 미운 짓만 골라하는 것 같아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애써 사랑하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기록부를 쓰려고 그 아이에 대한 일 연간의 메모를 찾아보고 돌이켜보면 꼭 하나 이상은 써줄 장점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 아이들인데 일 년간 아주 실컷 칭찬해주지 못했던 것이 내심 후회스럽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앞의 시를 읽어주며 말한다. 이 시를 읽어주는 나를 포함해 세상 다른 사람들이 너희를 평가하는 대로 자신을 규정짓지 않기를 바란다고. 우리는 다른 사람이 정한 내가 되지 말고 우리가 되고 싶은 내가 되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살아가자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스스로를 이미 좋은 사람이라 여기며 쓰담쓰담해주자고. 선생님이 다 표현 못하지만 매일같이 너희는 정말 예쁘고 너희가 내 제자라 참 자랑스럽다고.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학생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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