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자신의 얼굴을 사랑하나요?

박민규, <죽은 왕녀의 파반느>

by 옥돌의 지혜


여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얼굴을 부끄럽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많은 아이들이 화장하지 않은 민낯으로 거리를 다니는 것은 수치이자 민폐라고 생각한다. 종례 시간이 되면 많이들 입술에 틴트를 바르고 앞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있다. 그저 감수성이 예민하고 한창 이성과 외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의 귀여움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외모가 곧 자신의 정체성이자 자존감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아이들의 위축되어 있는 마음을 볼 때마다 안쓰럽다. 그 마음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여고 시절에 외모에 자신감이 없어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 도수 높은 안경을 써서 눈은 작아 보이고 교정 중이라 입은 튀어나왔었다. 별명이 '붕어'였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외모에 큰 관심이 없었고 워낙 자기애가 높았기에 남자아이들이 짓궂게 놀리는 말들에도 전혀 타격이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이성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신경이 쓰였다. 내가 다니는 여고는 바로 옆에 남고가 있어 학교에 들어가려면 남고 앞을 지나가야 했다. 그때 일부 남고 아이들은 지나가는 여학생들의 외모를 평가하며 점수에 맞는 색깔 분필을 던지곤 했다. 처음엔 그저 유치한 장난이라 여기며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서 남동생이 매일같이 '누나는 정말 못생겼어'라고 하는 말들이 점점 내 마음에 상처가 되기 시작했다. 남동생은 어려서부터 외모가 출중했다. 어른들은 우리 남매를 보면 '누나는 착하게 생기고, 동생은 잘생겼네' 따위의 말을 정말 많이 했다. 머리가 조금 큰 뒤로 그 말의 숨은 뜻을 알 수 있었다. 곧, 나는 '잘생기거나 예쁘지는 않다'는 뜻이다. 잘생긴 동생이 자꾸 내가 못생겼다고 하니 정말 객관적으로 내가 못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위축되던 마음은 결국 남고 앞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가는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 얼굴을 들면 다른 사람이 내 얼굴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것만 같았다. 이후 어떻게 괜찮아졌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다행히 그런 시간은 잠깐이긴 했다. 아무튼 내게도 다른 사람의 평가가 두려워 내 얼굴을 부끄럽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학생들이 느끼는 그 작아지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한 번은 내 담임반에 화장이 아주 진한 학생이 있었다. 화장이 진하다고 표현하기에 어떤 선생님들은 분장에 가깝다고 묘사했다. 그리고 내게 말하셨다.


"선생님 반 Y는 그냥 넘어가기에 화장 수준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선생님이 지도 좀 해야겠어요."


내가 보기에도 Y의 화장은 더 예뻐 보이기 위한 화장보다는 가리기 위한 화장처럼 보였다. 이미 작년부터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타박을 들었을 텐데도 화장을 고치지 않는 Y에게 나까지 잔소리를 보태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 달 정도 지켜보며 그냥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다정하게 대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Y의 상담 차례가 되었을 때 조심히 물어보았다.


"Y야, 우리 학교 교칙에 화장은 안 되는 거 알지? 살짝만 옅게 화장하면 샘도 모른 척 지나가 줄 수 있을 거 같은데 화장이 좀 눈에 띄는 거 같아. 혹시 이렇게 진하게 화장하는 이유가 있어?"


그러자 센 화장 뒤 수줍고 민망한 미소를 띤 Y가 말했다.


"선생님, 저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데요. 할머니가 매일같이 '돼지 같은 게 밥만 많이 처먹네, 못생긴 게 왜 사냐' 이런 말을 해요. 그런 말을 매일 듣다 보니 제 얼굴이 정말 너무 못난 거 같고 최대한 가리고 싶어요."


Y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당장 할머니의 성품을 고칠 수도 없고 Y를 할머니로부터 격리시킬 수도 없었다. 그저 Y에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며 위로하고 고등학교 졸업하면 최대한 빨리 독립해서 할머니와 거리를 두며 자존감을 잘 회복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조언해주었다. (지금 같았더라면 학교 위클래스를 통해 심리상담이라도 받게 도왔을 것 같다.) 그 이후에도 선생님들 사이에서 Y에 대한 지적이 있었지만 최대한 감쌌다. 그리고 Y도 아이라이너의 두께를 조금 더 줄여가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Y의 경우는 극단적인 예시지만 많은 아이들이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평가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기 자신의 얼굴을 그대로 내보이기를 어려워한다. 예쁜 얼굴만이 사랑받는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이런 아이들의 마음을 아이들 탓으로 돌리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나 지독히 외모지상주의라 어른인 내가 다 민망하고 미안하다. 심지어 어른인 나조차도 민낯으로 출근하면 '그래도 화장하고 출근하는 게 예의'라는 핀잔을 듣는다. 나 역시 번화가에 나가 많은 인파와 부딪힐 때 사람들이 내 얼굴을 평가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버스마다 성형외과 광고가 붙어있다. 학생들과 또래이거나 더 어린 미성년자 연예인들이 짙은 화장을 하고 티브이에 나온다. 온 세상이 이토록 '예쁜 게 중요해'라고 말하는데 정작 외모와 관련된 교육과 수업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속상한 마음에 나는 국어 도입 시간에 이 글을 읽어준다.


“아무 일 없이, 아무 일 없는 듯 돌아오던 새벽의 골목길에서
그리고 인간은 실패작과 성공작을 떠나,
다만 <작품>으로서도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박민규, <죽은 왕녀의 파반느> 중에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민규, <죽은 왕녀의 파반느>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소설은 누가 봐도 잘생긴 남자와 누가 봐도 못생긴 여자가 사랑에 빠진 내용을 담고 있어. 두 사람은 서로를 순수하게 사랑하는데 잘생긴 남자와 못생긴 여자의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평가질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헤어지게 돼. 이 소설을 읽으며 선생님은 생각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예쁘고 잘생겼나?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더라고. 물론 외모에 호감을 갖고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기도 해. 그렇지만 정말 사랑하게 되는 연인이나 친구, 가족은 외모가 다가 아니잖아. 그 사람의 성품, 그 사람의 태도, 그 사람의 장점 등을 좋아하게 되잖아.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 또한 외모보다 그런 내적인 것들 아닐까? 그리고 나는 믿어. 생각과 마음의 아름다움이 시간이 지나 얼굴에도 드러난다고. 이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내 얼굴을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우리 힘써 자기 자신의 얼굴을 사랑해보자."


평소 아이들은 내가 조금만 멋을 내고 학교에 가도 "선생님, 오늘 예뻐요~" 수줍게 웃으며 칭찬을 건넨다. 그럼 나도 꼭 이렇게 대답한다. "고마워, 그런데 너도 되게 예뻐."라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여고생들은 정말 예쁘다. 풋사과처럼 싱그럽다. 봄날 흐드러진 꽃처럼 어여쁘다. 본인들이 얼마나 예쁜지 저들만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타인에게 외모와 관련된 칭찬을 삼가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이런 경우가 아니면 특별히 '예쁘다'는 표현을 잘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그러면 어떻게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전해줄 수 있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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