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것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나는 현재 고등학교 국어 교사이다.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지만) 나는 내 직업을 사랑한다. 물론 고등학생에게 국어를 가르치며 선생님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마냥 녹록지만은 않다. 나이가 들수록 고등학생들과 세대차도 나는 것 같고, 국어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렵고,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은 하나의 수양처럼 멀고도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주 행복과 충만감을 경험한다. 아직은 아침에 눈을 뜨면 학교에 가고 싶다. 더 잘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국어도 더 잘 가르치고 싶고, 말하기 동아리도 잘 운영해보고 싶고, 치유적 글쓰기나 시 읽기 방과 후 수업을 더 잘 만들어가고 싶고, 학생 상담도 보다 의미 있게 하고 싶고, 학교 행정일도 야무지게 해내고 싶다. 그리고 담임반 아이들에게 스터디 플래너와 동기부여를 통한 자기 주도적인 학습 습관도 만들어주고 싶고, 문학을 읽어주는 수업 5분 도입도 더 알차게 준비하고 싶다. 아직 학교에서 교사로 하고 싶은 일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내가 이 직업을 꽤나 만족스러워하고 있구나 싶다.
어려서부터 어른이 되면 정말이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그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항상 '나는 커서 뭐가 될까'가 나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유심히 관찰하며 살아왔다. 중학생 때 나는 학교에서 주최하는 모든 대회에는 다 나갔다. 내가 잘하든 못하든 혹시나 내가 잘하는 것을 발견할까 싶어서이다. 중학교 때 방송반 동아리 활동을 하며 내가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 편집부 동아리 활동을 하며 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공부를 하면서도 과목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감정을 세심하게 인지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수학과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만 노력에 비해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에 비해 국어와 사회는 재밌기도 하지만 노력 그 이상의 성적이 나왔다. '나는 문과적 재능이 있구나' 생각했다. 성적이 엇비슷하게 나와도 경제보다 근현대사나 윤리 과목을 공부할 때 더 파고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나는 '인문학에 흥미가 있구나' 생각했다. 국어 모의고사를 보다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 시를 읽고 나도 모르게 눈물 흘리는 것을 보며(그 시가 맞는지는 가물가물하다) '내가 문학을 엄청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비행청소년 관련 뉴스를 볼 때 마음이 송곳으로 찌르듯 아프다고 느끼면서 '내가 교육에 관심이 많구나'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의 경험을 종합해 나는 국문학과 교육학을 이중 전공해서 교육자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내가 생각한 교육자는 뭔가 교사보다 훨씬 대단하고 큰 어떤 존재였다. 아마 교육학 교수 정도를 생각했나 보다.
대학에 와서 계획대로 국문학과 교육학을 이중 전공했다. 공부가 힘들어도 달게 느껴졌다. 국문학을 공부할 때 문법은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고, 문학은 편하게 공부해도 좋은 성적이 나왔다. 그러나 문학은 종종 천재들이 있어 문학을 깊이 있게 전공하기에는 주눅 드는 마음이 있었다. 반면 교육학은 내가 노력하는 만큼 성적도 잘 나왔다. 특히 교육심리가 매우 흥미로웠다. '동기 부여'를 주제로 더 공부를 해서 교수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우선 미국 교환학생을 신청해서 한 학기 동안 교육학을 공부했다. 역시나 공부는 재밌었지만 행복하지는 았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미국인 초등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순간은 분명 행복하다고 느껴졌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부터 과외와 교육봉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쉬지 않고 해왔다. 그냥 아이들이 대학생인 나를 잘 따라주니 즐겁다고 느꼈지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교환학생을 가서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고 느끼고 나니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교환학생에서 돌아오자마자 방학 동안 시골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봉사에 지원했다. 그리고 내 마음에 집중했다. 나는 아이들과 있을 때 되게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편안하고 즐겁고 가끔은 충만했다. 그래도 교사의 길을 선택하는 데에 망설임이 있었다. 솔직히, 국어교육으로 대학원 원서를 쓴 날 나는 화장실에서 울었다. 나는 내가 뭔가 더 멋지고 그럴싸한 직업인이 될 줄 알았다. 내가 당시 생각한 교사의 이미지는 박봉에 아침 일찍 출근하고 남들에게 인정도 못 받지만 오직 보람으로 일하는 그런 직업이었다. 그런 내게 용기를 준 것은 내가 애정 하는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이란 책의 문장이었다.
“나는 대체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꼭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도 흥미가 없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만이 내 마음을 잡아끈다. 조금만 지루하거나 힘들어도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가?’는 의문이 솟구치는 일 따위에는 애당초 몰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그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시를 읽는 즐거움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으로 할애하면 내 인생은 약간 고귀해진다.”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중에서
교육학 공부도 재미있기는 했지만 해야 하는 양 그 이상으로 공부하고 싶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달랐다.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조금 더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문학의 무용함을 예찬하는 한 사람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문학을, 더 나아가 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 졌다. 결국 대학교 4학년에 급히 진로를 변경해 국어교육 석사과정을 지원했다. 그리고 대학원생이 되어 교생실습을 여고로 나갔는데 내가 특히 여고생과 잘 맞는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때 교생인 나를 담당한 선생님께서 내 교생 일지 마지막 장에 '선생님이 우리 학교 교사로 꼭 오시면 좋겠습니다'라고 적어주신 문구를 발견했을 때, 나는 마치 내가 교사여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여고의 국어 교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교사 임용 준비를 하기 전에 나는 교사되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교사되기가 어렵다고 해도 어느 정도 공부에 자신 있는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인 줄 알았다. 이 정도면 공부를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던 해 첫 번째 임용시험에서 똑 떨어지고 나서야 어쩌면 내가 원한다고 해서 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서늘하게 깨달았다.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 간절해졌을까. 두 번째 임용시험을 준비하면서는 한 여고의 기간제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왜 그렇게 아이들은 예쁜지, 학교에서의 하루하루는 왜 이렇게 즐거운지, 하루빨리 정교사가 되어 내가 하고 싶은 수많은 일들을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정교사만 된다면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조금 심하게는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는 정교사들에게는 은은한 여유와 후광까지 비치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두 번째 임용 시험을 보며 함께 응시한 사립학교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 담임을 맡았다. 정교사만 되면 200 퍼센트 잘 해낼 것만 같던 나의 의욕과 달리 모든 것에 서툴고 헤매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해 국어시간에 아이들과 벚꽃 나무 아래에서 시 읽는 수업도 하고, 시 읽기 방과 후 수업 학생들과 가을 남산에 가서 시를 짓고 낭송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에게 편지를 써준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답장을 쓰기도 하고, 엉성하지만 말하기 동아리도 만들어 이끌어갔다. 담임반과 수업에 들어가는 아이들에게 대중 앞에서 스피치 하는 경험을 꼭 시켰다. 국어 시간 5분 도입에 내가 그동안 학생들에게 읽어주고 싶어 아껴왔던 문장들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애정하는 문장들 역시 들을 수 있었다. 해보고 싶던 치유적 글쓰기도 수행평가로 시도하며 아이들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방황하는 아이들의 삶에 담임의 권한으로 조금은 참견할 수 있었다. 반 아이들에게 스터디 플래너를 쓰게 하고 매주 코멘트를 적어주었다. 원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학에는 대학 탐방도 함께 다녀왔다. 댄서가 꿈인 학생의 주말 공연에 남편과 함께 가서 응원도 해주었다. 크리스마스엔 작은 학급 파티를 열어 떡볶이를 먹으며 영상회도 하고 아이들의 무대도 보았다. 학년 말에는 담임반 아이들에게 카드를 써주고 포옹을 해주며 다음 학년에 올려 보낼 수 있었다.
이 글을 적으며 '아, 나 학교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해봤구나. 그 순간순간 행복하고 감사했구나' 새삼 깨달았다. 복직을 앞두고 자꾸만 두려운 마음이 들던 차였다. 내게 학생이 복도에서 소리 지르며 대들던 날 교무실 내 자리에 앉아 엉엉 울었던 순간, 처음으로 방과 후 수업 인원이 미달되어 소수로 수업을 열며 자존심 상했던 순간, 시험문제에 오류가 나서 경위서를 쓰며 한없이 자책하던 순간, 매일같이 자살하겠다는 학생의 연락에 편히 잠을 들 수 없었던 순간, 일이 너무 많아 주말에도 학교에 나와 잔업을 하던 순간... 그런 순간들이 자꾸만 떠오르고 마음이 위축되고 있었다. 그런데 나, 그보다 훨씬 많은 순간 학교에서 웃으며 일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한다. 선배 선생님께서 나를 보며 '항상 수업 마치고 나오는 복도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내가 수업에서 나올 때 웃으며 나온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수업에서 아이들과 하하호호 내가 좋아하는 국어와 우리의 삶에 대해 실컷 떠들다 나오면 그렇게 흐뭇하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했던 말이나 표정을 떠올리면 참 귀엽다. 요즘 애들 힘들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예쁘고 사랑스러운 요즘 애들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수업 도입 때 김연수의 위의 문장들을 빠뜨리지 않고 읽어주려 노력한다. 그리고 너희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행운을 누리길 바란다고 말한다. 자기 삶에 애정과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 행운이 따를 거라고 격려한다. 진심으로 내 학생들이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을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해나갈 그 일이 나는 벌써부터 많이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