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국어교사도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낼까

by 옥돌의 지혜

요즘 아이들 하원 후 놀이터만 가면 내년에 여섯 살이 되는 딸아이 친구들 엄마들 간에 '영어유치원'을 주제로 한 대화가 뜨겁다. 정작 내 아이는 다섯 살 현재 사립유치원에 잘 다니고 있고 영어유치원에 보낼 형편도 안 되는데 괜히 마음이 심란하다. 매일같이 엄마들이 말하는 영어유치원에 대한 정보들과 장단점들을 귀 기울여 듣고, 잠자기 전에 영어유치원을 폭풍 검색해보며, 학교에서 나보다 먼저 자녀를 키운 선생님들에게 틈만 나면 영어유치원에 대해 물어본다. 그러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영어유치원 안 가도 된다'는 말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영어유치원을 보내지 않아 내 아이가 나중에 힘들어하는 것'이다.


영어유치원에 대해 남편과 대화를 가장한 논쟁을 하다 보니 결국 이 문제는 단순한 유치원 선택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지에 대한 문제였다. 그러면서 일주일 동안 나는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다른 때보다 더 많이 생각해본 것 같다.


일단 나의 당장의 영어 교육관을 이렇다. 앞으로 내 아이들의 입시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현재 대입을 보면 영어 공부는 필요하다. 어차피 초중고 내신과 대입을 위해 영어를 공부해야 하고, 취업과 여러 기회를 위해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영어를 학습해야 한다면 영어 공부가 너무 힘들지 않도록 부모가 적당한 영어 노출 및 교육 환경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아이가 필요 이상으로 원어민과 같은 영어 수준을 갖출 필요는 없지 않을까. 대입 이상의 영어는 본인이 원할 때 얼마든지 더 공부하면 된다.


반면 남편의 영어 교육에 대한 생각은 이렇다. 아내인 나나 본인이나 양가 부모님들이 자녀의 영어교육에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투자를 하셨다. 그런데 해외에서 20년간 살았던 본인도 현재 한국에서 거의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하고 있으며, 아내인 나는 국어교사로 일하며 일 년에 한 번도 영어 쓸 일이 없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20, 30년 뒤의 사회는 인공지능이 다 통번역을 해내기 때문에 외국어 교육은 필요 없을 것이다. 나중에 쓸모없을 외국어에 지금부터 아이들을 힘들게 하면서 지나친 투자를 하고 싶지 않다.


우리 부부 둘 다 아이들의 교육은 우리 가정의 형편을 고려하여 부담 없는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리고 영어유치원은 현재 우리에게 부담되는 비용이다. 또한 영어유치원에 다니면 영어에 친숙해지고 영어 발음도 좋겠지만, 그만큼 모국어 능력이 떨어질 수 있고 아이의 스트레스도 일반 유치원에 비해 상당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아이들이 커갈수록 교육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할 텐데 미취학 때부터 가정에 무리가 되는 수준으로 교육을 하면 이미 시작부터 기울어지지 않을까. 또 엄마인 내가 국어교사인데 아직 한글도 떼지 못한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밀어 넣어 알파벳부터 가르치는 게 괜히 자존심 상하는 기분도 든다.


그런데도 내가 영어유치원 고민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남편은 외국에서 영어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그리고 영어로 인한 불이익 없이 성장할 수 있었는데 내 아이들은 영어로 인해 큰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사는 동네는 절반 이상이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분위기이다. 내가 자랐던 당시와 현재 내 아이가 자라는 시기는 30년 이상의 차이가 있는데 나를 기준으로 내 아이의 교육을 가늠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이미 월등하게 앞서있는 친구들의 영어 실력을 보며 내 아이가 기죽진 않을까, 이후 영어를 따라갈 때 너무 힘들어하진 않을까 그런 걱정이 앞선다. 차라리 내 문제라면 내가 나를 알기 때문에 더 확신을 갖고 결정할 텐데 내 아이는 내가 아니라서 무엇이 가장 좋은 선택인지 알 수가 없다.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엄마들은 지금 결정적인 시기에 투자해서 이후에 오히려 돈도 아끼고 아이의 고생도 덜 시키는 거라며 지금 이 중요한 시기를 놓치면 아이에게 원망을 듣는다고 한다. 이미 아이들을 대입까지 마친 같은 학교 선생님들은 대체로 아이들을 영어유치원을 보냈다(이미 20년 전에!). 그분들은 나에게 영어유치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지 않고 아이들의 기질에 따라 돈만 쓰다 오는 경우도 많다고 하면서도 영어유치원 덕분에 영어에 대한 큰 거부감 없이 자녀들이 대입까지 마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현재 내가 가르치는 고등학생들과 수다를 떨다가 영어유치원 이야기가 나왔는데, 세 명 모두 영어유치원을 강력 추천했다. 영어유치원을 나온 아이는 본인이 어릴 때 영어를 즐겁게 배우고 나니 이후 학교에서 배울 때도 편안하게 배울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반면 영어유치원을 나오지 않은 아이는 학교에 입학해서 영어를 처음 배우려고 하니 이미 너무 잘하는 친구들을 따라잡기 어려워 영어가 싫어졌다고 했다. 이런 말들을 들으니 더욱 혼란스럽다.


지금 나와 내 남편의 생각으로는 외국에서 잠깐만 생활해봐도 영어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고, 영어 실력 그 자체보다는 외국 생활을 통해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삶에서 큰 힘이 되므로 짧게 해외 경험들을 하는 것이 아이에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고민들로 머리가 아픈데 마침 미국에 사는 남동생 부부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고 내가 마음의 준비가 되면 본인들이 1년 이상 돌보며 미국 학교에 보내주겠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부모 없는 타국살이가 얼마나 서러운지 경험해봐서 잘 아는 사람들이기에 부모 없이 아이들만 외국생활시키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대화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하나의 가능성으로 열어두고 고민해야 하나 싶다.


이제 곧 여섯 살, 세 살인 두 아이를 키우는데 왜 이렇게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은지 나도 내가 싫어지려 한다. 지금은 영어유치원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지만, 앞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얼마나 많은 커다란 고민들을 만나게 될는지. 아직 아이가 없는 내 친구들에게 첫째 영어유치원 고민을 나누니 고등학교 교사인 나는 왠지 뭐든지 다 답을 알고 척척 아이를 키울 것 같았는데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의외라고 한다. 천만의 말씀. 고등학생 대입도 잘 모르겠고 유아교육은 더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내 아이들의 삶에 대한 계획도 갖고 계시겠지? 혼자 머리 싸매지 말고 고민되는 마음이 들 때마다 기도해야겠다. 그런 말을 본 적 있다. 내가 내 힘으로 자식을 키우면 내 자식은 잘 돼야 나만큼 되는 거고, 자식을 신에게 맡기면 신이 허락하는 가능성만큼 큰다고. 아이를 키우는 일에 답은 없지만, 매번 나의 최선이었음을 고백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기도하며 노력하고 싶다.


아무튼 그래서 당장 여섯 살에 영어유치원을 보낼 것인지 영어유치원 입시설명회부터 신청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던 나에게 남편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여보, 근데 우리 가족 꿈은 우리만 잘 사는 게 아니라 남 도우면서 사는 거 아니었어? 우리 애들 남들 다 다니는 영어유치원까지 보내면 언제 남는 돈으로 다른 사람 도우면서 살아?"


깨갱. 할 말이 없다. 그럼 첫째 봄이의 영어유치원 고민은 일곱 살을 앞두고 다시 하는 것으로... 일 보 후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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