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학교에서 교원평가 업무를 담당해보니 고3은 2학기 교원평가에 참여율이 매우 낮았다. 당장 수능을 앞두고 교원평가를 정성 들여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올해 나는 코로나에 패드로 고3 문학을 처음으로 가르쳐봤기 때문에 학생들의 반응이 매우 궁금했다. 예전에 고3 문학 수업을 할 때는 칠판에 판서를 하면서 했었고, 그때는 아이들이 마스크도 하지 않고 표현도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만족도를 수업을 하면서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마스크를 하고 있어 아이들 표정도 보이지 않고, 칠판 판서와 달리 패드 판서는 패드에 내 눈이 고정되어 있어 아이들의 반응을 바로 알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평소 내 수업에 대해 나서서 피드백해주는 학생도 없었다. 그래서 과연 내가 잘 가르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2학기 때 수능 전까지 수능완성으로 문학 수업을 한다면 과연 열심히 듣는 학생이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자체적인 수업 평가를 받기로 했다. 구글 설문지로 익명을 보장하는 수업 평가를 받았다. 애들과 래포가 형성되었다는 확신이 없어서 혹시 내가 너무 상처받을까 봐 안내 문구에 이렇게 썼다. '선생님이 여러분 생기부를 쓸 때의 마음으로 다정한 언어로 개선할 점을 말해주세요.'라고.
곧바로 열어볼 용기가 없어 한참을 미루다가 개학을 일주일 앞두고 평가 결과를 열어보았다.
'와아. 선물이다.'
제일 기분 좋았던 피드백은 '선생님, 예뻐요'였다(!). 그냥 치마만 입고 와도 예쁘다고 칭찬을 남발하는 여고에 있으면서 예쁘다는 칭찬 못 들어본 해는 올해가 처음이라 시무룩했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 3년 동안 지내며 여러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지만 나를 만나고 고3 때 좋은 선생님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깨달았다는 말, 12년간 국어가 싫었는데 내 수업 덕분에 국어가 좋아지고 국어 성적이 오르고 있다는 말 등이 큰 힘이 되었다. 또한 매번 평가받을 때 깨닫는 것처럼 아이들이 내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점이 위로가 되었다. 선생님이 작은 부분 하나도 꼼꼼하게 다 수업 준비해오셔서 따로 찾아볼 필요 없이 수업 자료만으로도 혼자 공부하기 편했다는 말, 작가에 대한 배경 설명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었다는 말, 학생들이 힘들어할 때 혼내지 않고 내 수험생활 때의 경험담이나 재미있는 연애 썰로 힘을 주고 잠을 깨우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졌다는 말, 수업 도입 때 읽어주는 시 하나하나가 그 시기의 학생들에게 필요한 말을 고심한 흔적이 담겨있다는 말 등. 아이들이 내 진심과 노력을 흘리지 않고 다 느끼고 있었다는 게 참 고맙고 새로운 힘이 되었다. 2학기 때도 열심히 수업 들을 테니 마지막까지 꼭 수업 진도 나가 달라는 말도 2학기를 맞이하는데 큰 용기가 되었다.
걱정했던 패드 수업에 대한 반응도 의외로 엄청 호의적이었다. 칠판 판서 수업보다 수업 자료를 화면에 띄어놓고 선생님이 그 위에 판서해주는 것이 본인들이 똑같이 정리하기에 도움이 되고, 눈으로 따라가기에도 훨씬 편하다고 계속 이 방식을 고수해달라고 했다. 다만 내가 염려했던 대로 마스크를 쓰고 패드를 보며 수업하면서 발음이 잘 전달 안될 때가 있고, 패드 글씨가 너무 작아서 가끔 뒷자리에서 보이지 않는데 미처 말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때가 있다고 했다. 2학기 때는 수업할 때 패드를 보는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 맨 뒷자리까지 내 말이 꽂히도록 노력하고, 패드에 필기 자리가 좁은 자료는 재편집해서 조금 더 필기 공간을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교원평가와 달리 내가 준비한 자체평가라 익명성 보장의 안전도가 낮아서 아이들도 마음껏 신랄하게 쓰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속마음을 알기 어려웠던 학생들의 많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보니 '어머, 나 아직 꽤 괜찮은 교사인가 봐'하는 자아도취가 다시 시작된다. 이 힘으로 2학기 버티는 거지! 그래서 내년에 또 무표정으로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사실 너네 속으로 내 수업 되게 좋아하는 거 나 다 알아'라고 정신 무장하고 수업해야지.
학생들의 수업 평가에 상처받아서 교원평가를 안 읽어보는 선생님들도 있다. 나도 학생의 평가가 이토록 두려운데 천 번 만 번 이해되는 심정이다. 그래도 조금 더 오랫동안 학생들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씩 더 나아지는 교사가 되기를. 부디 내가 그 용기 잃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