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방학이다. 아니, 방학식을 하고 벌써 이틀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방학이 실감 나지 않는다. 원래의 나라면 매번 방학 한 달 전부터 마음이 들뜨고 즐거워야 할 텐데, 학기말의 어떤 몰려오는 업무도 방학을 생각하면 거뜬해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았다. 방학식을 하는 날까지 하루하루가 고비였다. 아침에는 도저히 출근하지 못할 것 같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나가고, 오후에는 병 조퇴를 고민하다가 결국 5분도 쉬지 못하고 종례까지 마치고, 칼퇴근만 바라보며 하루를 버텼으면서 결국 오늘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라 교무실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다가 퇴근을 한다. 방학식 날도 할 일이 너무 많아 결국 서류들을 잔뜩 챙겨 차에 옮겨 실어 집에 왔다. 앉아있을 힘도 누워있을 힘도 어떤 생각을 할 힘도 없다.
방학 때 상반기에 미룬 약속들도 만나고, 읽고 싶어 사뒀던 책들도 읽고, 고3 담임하며 느낀 것들 글로도 정리해야 하고, 운동도 하고, 아이들 놀이와 학습도 챙겨주고, 엉망인 집안도 조금 정돈하고, 결제해둔 투자 강의도 들어야 하는데...
시부모님이 최근 내 얼굴이 너무 야위었다며 보약을 지어먹으라고 용돈을 주셨다. 한의원에 갈 틈도 없어서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한의원에 갔다. 이런저런 건강 검사를 받아보니 에너지나 면역 수치가 정상보다 낮게 나왔다. 몸이 안 좋아서 온다 해도 젊은 사람들에게 잘 나오지 않는 수치라고 했다. 아마 앉아있는 것도 힘들게 느껴질 거라 했다. 그리고 작은 일에도 화가 울컥울컥 치밀어 오를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그 순간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너무 지쳤다. 이런 식으로 내 몸과 마음을 학교에서 계속 소진하면 오래 교직에서 일하기 힘들 것 같은 위기감도 느껴졌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때까지 하기 위해서라도 나 자신을 최우선으로 돌보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청 긴장하고 두려움을 갖고 시작한 첫 고3 담임. 어찌어찌 하루씩 성실히 해내다 보니 수업과 진학지도에서 큰 구멍 없이 잘 따라가는 것 같았다. 처음인 것들도 하나씩 하다 보니 금방 흉내 낼 수 있었다. 많이 스트레스받을 수 있는 상황들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나 보다'하는 긍정적인 생각이 뒤따라와 다행이라 여겼다. 스트레스받고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은 맞지만 최악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국어과에서 막내라 제일 많은 수업 시수에 첫 고3 담임에 아직 미취학 자녀 둘을 키우는데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티는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다. 그런데 학기말에 스물여덟 명의 반 아이들 수시를 고강도의 긴장감을 가지고 진행하면서 완전히 지쳐버린 것 같다.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너무나 소진되는 기분이 들었다.
방학 때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순수한 갈망보다 또다시 내가 하기로 한 것을 해내야만 한다는 이상한 의무감이 또다시 나를 짓누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3주 남짓한 방학. 그중 2주는 내 아이들 유치원과 어린이집 방학이고 1주는 고3 생기부를 완성해야 한다. 여유가 없다. 가을 이후로 모든 것을 미루자.
1. 체력 회복하기. 2학기 버티려면 지금의 지친 몸과 마음으로는 어렵다. 한약 잘 챙겨 먹고, 많이 자고, 가벼운 스트레칭과 걷기 하다가 체력 붙으면 조금씩 근력 운동하자.
2. 그 순간에 집중하기. 아이들과 있을 때는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혼자 있을 때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학교일 할 때는 학교일에 집중하며 그 순간을 누리기.
3. 유료 결제해둔 강의 틀어놓는 것만으로도 일단 만족하기. 추가 과제나 공부 못하는 것에 죄책감 느끼지 말기.
4. 그 외에 모든 만남, 브런치 북 쓰기, 집안일 다 가을 이후로 미루기.
나 같은 파워 J형이 처음으로 여름휴가 계획을 미리 짜지 못하고 멍 때리고 있다. 그냥 전날 반짝 세일하는 곳을 갈까 그런 생각도 든다. 못 가면 못가는대로 큰 일 있을까 싶기도 하고. 부디 재충전하는 소중한 방학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