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9월 모의고사가 끝났다. 3학년에게 9월 모의고사란 1년간 매달 보는 모의고사 중 가장 의미가 크다. 일단 평가원 모의고사인 3,6,9월 모의고사 중 실제 수능에 참여하는 n수생이 가장 많이 참여하고, 시험 내용도 수능에 가장 가깝기 때문에 9월 모의고사 성적을 기준으로 수능 성적을 짐작해 대학 수시 모집에 지원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6월 모의고사를 마치자 마자부터 여름방학 내내 9월 모의고사를 준비해왔다. 그리고 그 결전의 날이 끝난 것이다.
9월 모의고사를 치른 다음 날. 교실은 마치 폭격당한 전쟁터처럼 아이들이 너덜너덜해져 있다. 나름대로 여름방학 때 공부한다고 했는데 예상 등급 컷이 생각보다 낮아서 충격받고 의욕을 상실한 것이다. 반 아이들은 나에게 따로 문자를 보내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방향을 잃었다, 눈물만 난다, 학교에 가기 싫다' 등등 속상함을 호소한다. 실제로 아이가 침대에서 울면서 등교를 거부하는데 어떡하냐고 학부모님한테 전화를 받았다. 그러면 나는 준비한 몇 가지 말을 한다.
" 애들아, 선생님이 9월 모의고사 보기 전에 뭐라고 했어? 샘처럼 9모 대박 나서 수능 망하는 것보다 9모 잘 못 보고 수능 잘 보는 게 훨씬 더 좋은 거라고 했지? 9모 성적이 안 나온 건 하나님이 준 기회야. 공부 아직 다 안 되어있는데 괜히 모의고사 성적 잘 나와서 뭐가 부족한지도 모르고 대충 공부하다가 수능 때 왕창 깨지면 어떡해? 깨질 거면 9월 모의고사 때 깨져서 '아 내가 이 부분이 부족했구나. 남은 세 달 동안 이 부분을 채워야 하겠구나' 파악하고 잘 대비해서 수능 잘 보는 게 훨씬 낫지. 그렇지? 그러니까 이번 9월 모의고사 잘 본 친구들은 '나 옥돌 샘 꼴 안 나게 잘 봤다고 긴장 풀지 말고 더 바짝 공부해서 수능까지 이 점수 가져가야겠다' 생각하고, 잘 못 본 친구들은 '오히려 잘 됐구나. 이참에 부족한 부분들 잘 채워서 수능 때 점수 올리면 되겠다'라고 생각하는 거야. 평생 살아가면서 모의고사 점수 몇 점 나왔는지 사람들이 물어본다 안 본다? 안 본다! 우리는 이 모의고사를 잘 활용해서 수능을 잘 치르면 되는 거야.
"아니 지금 수능 100일 남짓 남았는데 울고 짜고 좌절할 시간이 어딨어? 이미 많이 왔고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울고 싶은 거 어제 실컷 울었으면 이제 꾹 참고 다 끝나고 울자. 내가 우는 시간에 다른 친구는 한 글자 더 공부한다."
"성적 더 안 오르면 어쩔 건데? 공부 안 할 거야? 어차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남은 기간 후회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거야. 우울한 거 딱 오늘까지. 저녁에 독서실 가는 길에 맛있는 초코우유 사 먹고, 이번 주말 내로 모의고사 오답노트 꼭 작성하고, 수능 100일 공부 계획 세워서 딱 세 달 달리는 거야. 할 수 있지?"
아이들은 평소처럼 '아고, 우리 누구 힘들지~'하면서 달래줄 것 같던 선생님이 전화로 당장 학교 안 나오고 뭐하냐고 다그치며 이런 말들을 하니 당황한다. 그리고 마음을 다시 동여맨다. 지금 자기 연민과 우울감에 빠진 아이들을 공감해주고 같이 약한 소리를 해버리면 애들은 당분간 이런 상태를 유지해도 되는 줄 알고 며칠을 공부를 놓는다. 길게는 이번 수능은 망쳤다며 본인은 재수할 거라고 노래를 부르고 수능까지 공부를 놓는 아이도 있다. 이때 강하게 마음을 다잡아 줘야 한다. 지금 수능이 코앞인데 자기 연민에 빠져 슬퍼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몰아붙이면 애들은 또 '어어..' 하면서 지금 이럴 때가 아닌가 보다 하고 공부를 한다. 교실 분위기가 그렇게 다 잡혀야 다 같이 다시 공부를 하고, 이 흐름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나의 고3 때 경험 때문이다. 고3 초반에 의욕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아 고민일 때 공부의 신으로 이름을 날린 '강성태'님이 만든 공부 멘토링 사이트에 들렀다. 거기에 내가 '3학년인데 열심히 해도 성적이 안 올라요. 어떻게 하죠?'라는 징징대는 글을 올렸다. 나는 당연히 위로와 격려의 답장이 올 줄 알았는데 그 멘토는 이렇게 답했다. '뭘 어떻게 해요? 그럼 성적 안 나온다고 공부 그만둘 건가요? 할 수 있는 건 성적이 오를 때까지 공부하는 방법밖에 없죠.' 머리를 한 대 띵 맞은 기분이었다. 그 이후 3학년 수험 생활 동안 힘들고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그 말을 되새겼다. '힘들면 어쩔 거야. 대학 가기로 작정했으니까 공부를 해야지.'
강하게 나오는 교사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 학생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반 아이들은 대체로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더 금방 마음을 다잡고 본래 공부 루틴을 되찾았다. 단체로는 세게 말해놓고 수시 상담하며 개별적으로 만날 때는 마음을 달래준다. 열심히 했기 때문에 9월 모의고사 때 등급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거라고. n수생들이 들어오면 등급이 밀리는 게 자연스러운데 노력한 결과가 이렇게 남는다고.
아이들한테 힘을 주려면 나부터 힘을 내야지. 고3 담임 옥돌 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