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관계 | 나를 지키는 적당한 거리
누군가 화를 내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이 있다.
평소엔 생각이 많다.
분석적이다.
말도 조리 있게 잘한다.
그런데 막상 상대가 감정을 터뜨리면,
아무것도 안 떠오른다.
뭐라고 해야 할지,
아니 뭘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뇌가 그냥 꺼져버린다.
그러면 상대는 더 화가 난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나 무시하는 거야?"
침묵이 오해를 낳고, 오해가 갈등을 키운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나중에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생각이 떠오른다.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그런데 그 순간엔 정말 아무것도 안 됐다.
이게 뭘까.
심리학에서는 이걸 '동결 반응(Freeze)'이라고 한다.
위험 앞에서 뇌가 선택하는 세 가지 반응이 있다.
싸우거나(Fight),
도망가거나(Flight),
얼어붙거나(Freeze).
감정 폭발을 '위험'으로 인식하면,
뇌는 사고 회로를 차단해 버린다.
생각이 안 나는 게 아니라, 생각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에게만 이런 반응이 나타날까.
대개 어린 시절의 경험이 관련되어 있다.
누군가의 감정 폭발 앞에서 얼어붙어야 했던 기억.
부모님의 다툼,
갑작스러운 화,
예측할 수 없는 분노.
그때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
숨을 죽이는 것.
존재감을 지우는 것.
그게 생존 전략이었다.
문제는,
그 전략이 어른이 된 지금도 작동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다르다.
상대는 어린 시절 그 사람이 아니다.
나도 더 이상 무력한 아이가 아니다.
그런데 몸이 기억한다.
뇌가 자동으로 예전 모드를 켜버린다.
그래서 이 패턴을 바꾸려면,
먼저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아, 지금 내가 얼어붙고 있구나.'
'이건 예전의 보호 반응이구나.'
그걸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달라진다.
뇌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지금은 그때가 아니야. 안전해.'
처음엔 어렵다.
습관처럼 굳어진 반응이니까.
하지만 한 번, 두 번 알아차리다 보면,
얼음이 조금씩 녹는다.
완전히 녹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씩 해동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