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관계 | 나를 지키는 적당한 거리
"왜 안 왔어요?"
이 한 마디가 두려워서 아예 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상담실에서 자주 보는 패턴이다.
한 번 빠지면 다음에 가기가 더 어려워진다.
설명해야 할 것 같아서다.
'그때 왜 못 왔는지',
'그동안 뭘 했는지',
'이제 와서 왜 나타났는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다 보면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그래서 또 미룬다.
미루면 설명해야 할 게 더 많아진다.
악순환이다.
이 부담감의 정체가 뭘까.
심리학에서는 '조명 효과(spotlight effect)'라고 부른다.
무대 위에 조명이 나만 비추고 있다고 느끼는 거다.
모든 사람이 나를 주목하고,
내 행동을 기억하고,
내 상황을 궁금해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내가 지난주에 모임에 안 간 이유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억한다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들 자기 일에 바쁘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청문회라도 열릴 것처럼 준비한다.
완벽한 설명을, 납득 가능한 이유를.
그 준비가 너무 버거워서 아예 상황을 피해버린다.
"그렇게 됐어요."
이 한 마디를 연습해보면 어떨까.
왜 못 왔냐고 물으면, "그렇게 됐어요."
그동안 뭐 했냐고 물으면, "이것저것요."
더 묻지 않으면 더 말하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은 더 묻지 않는다.
이게 무례한 걸까?
나는 다르게 본다.
모든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나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내 에너지를, 내 시간을, 내 마음을 설명에 다 쏟아붓는 것이다.
받는 사람은 사실 그 긴 설명을 원하지도 않는다.
적당한 뻔뻔함은 무례가 아니다.
경계다.
나와 타인 사이에 필요한 거리다.
한 가지 더.
사람들이 내 일을 오래 기억할 거라는 생각도 착각인 경우가 많다.
내가 실수한 그 순간,
어색했던 그 장면,
변명이 궁했던 그 대화.
나는 몇 년이 지나도 기억한다.
그런데 상대방은?
일주일도 안 돼서 잊는다.
자기 일이 더 중요하니까.
자기 고민이 더 크니까.
우리는 남의 영화에서 조연도 아니다.
엑스트라에 가깝다.
그런데 주연인 줄 알고 대사를 외우고 있었던 거다.
오래 이 일을 하다 보면 알게 된다.
오히려 적당히 선을 긋는 사람이 관계를 오래 유지한다.
모든 걸 다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모든 걸 다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됐어요."
이 한 마디가 나를 지킨다.
그게 뻔뻔함이라면,
나는 그 뻔뻔함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