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탄력성 | 다시 일어서는 마음의 근육
그 일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어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이 무너지는 일을 겪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체념이 없다.
오히려 담담하다.
상담실에서는 같은 사건을 겪고도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는 삶들을 목격한다.
누군가는 평생 그 상처의 중력에 붙들려 "내 인생은 그때 망가졌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 일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어"라고 말한다.
차이가 뭘까.
나는 그 차이가 '해석'이라고 본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부른다.
힘든 일을 겪고도 다시 일어서는 힘.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회복탄력성이 센 사람은 안 힘든 사람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아니다.
회복탄력성이 센 사람은 힘든 일을 인정한다.
그때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근데 지금 와서 보니 그 일 때문에 할 수 있게 된 것들이 있다고.
다만, 그 고통의 파편들을 모아
자신만의 새로운 의미를 조립해 낼 뿐이다.
그게 해석하는 힘이다.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어떤 이에게 이 사건은 타인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결핍의 근거가 된다.
관계가 어려워지고, 누군가를 믿기 힘들어지고, 늘 불안하다.
그 상처가 현재를 지배한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이 사건이 독립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때는 지옥 같았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결핍 덕분에 남들보다 빨리 나 자신을 책임지는 법을 배웠어요. 부모님의 기대에 갇혀 있었다면 절대 시도하지 못했을 선택들을 할 수 있었거든요."
이것은 결코 정신 승리나 합리화가 아니다.
과거의 고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웠던 과거 안에서 '현재의 나를 지탱하는 단서'를 발견해 내는 과정이다.
"이 일 때문에"라는 피해자의 언어를
"이 일 덕분에"라는 주체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거리가 생기고,
그래서 다시 보니 그 안에 이런 것도 있었더라는 거다.
지금 삶의 한복판에서 이별이나 실패, 상실을 겪고 있는 분들께
나는 가끔 이렇게 묻는다.
10년 뒤의 당신이 지금 힘들어하는 당신을 본다면, 어떤 말을 해줄까요?
지금 당장은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고통과 나 사이에 약간의 거리(Distance)가 생기는 날,
우리는 비로소 보게 된다.
그 무너진 틈 사이로 새로운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덕분에 내가 더 단단해졌어."
"덕분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게 됐어."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그 경험 속에서 의미를 길어 올릴 때,
비로소 고통은 당신의 서사 안에서 새롭게 정의된다.
오랜 시간 상담을 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강인하며,
누구나 자기 삶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이미 수많은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들을 견디고 해석하며 여기까지 걸어왔다.
당신 안에는 이미 그 단단한 회복의 힘이 숨 쉬고 있다.
나는 당신의 그 해석하는 힘을 믿는다.
무너진 자리에서 기어이 의미를 찾아내어,
당신만의 다음 문장을 써 내려갈 당신을 응원한다.